2007 수다공방 패션쇼 <바람나다>. 동대문에서 미싱을 돌리던 아줌마들이 자신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당당한 워킹을 선보입니다. 여성 봉제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세워진 수다공방 교육생들입니다. 탤런트 고두심씨, 가수 양희은씨도 함께 했습니다.
성남에서부터 교육을 받으러 다녔던 유재숙씨. 그녀는 봉제를 그만둘까 고민을 하다가 수다공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난생 처음 오르는 무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는 이제 야무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유재숙 / 수다공방 4기 교육생, 봉제경력 20년]
"우리뿐만 아니라 수다공방이 전 세계 무대를 주름잡았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옷을) 만들었거든요. (제 꿈이) 너무 거대한가요?"
딸과 함께 무대에 오른 이희정씨는 16살 때부터 시작한 봉제일이 올해로 21년째입니다. 그녀는 수다공방을 통해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희정 / 수다공방 5기 교육생, 봉제경력 21년]
"(16살) 때는 이제 할 수 없이 한 거죠.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자신감을 갖고 해요. 앞으로 더 기술 가진 사람으로서, 봉제기술 가진 사람으로서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유명선 / 이희정씨 딸, 초등학교 6학년]
"처음에는 (엄마가) 조금 지저분한 환경에서 일하셨으니까 조금 약간 창피하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패션쇼도 하고, 이런 데 인터뷰도 하고 그러니까, 많이 자랑하고 다녀요."
수다공방이 자리 잡고 있는 창신동 골목은 우리나라 봉제가 시작된 곳입니다. 7~80년대 화려한 섬유 산업을 뒷받침해 준 봉제 노동자들. 그렇지만 현재는 인건비가 싼 중국에 밀려 단순히 박기만 하는 싸구려 일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봉제일은 디자인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도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수다공방에서는 봉제 노동자들에게 고급 봉제 기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혜정 / 수다공방 기술교육팀장]
"(봉제사가) 단순히 시키는 거 박아대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계가 아니라, 그리고 부품이 아니고. 나도 사람들이 입는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먹는 쌀을 농사짓는 것처럼 그런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결국은 궁극적으로는 내 아이한테 아유, (봉제사는) 좋은 직업이야, 라고 권할 수 있는 그런 산업이 되길 바라요."
35년 동안 봉제일을 해 온 최기열씨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아직까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최기열 / 수다공방 4기 교육생, 봉제경력 35년]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분신한)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당시에)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너무너무 가슴 아팠죠.."
최기열씨는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봉제 노동자들의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최기열 / 수다공방 4기 교육생, 봉제경력 35년]
"(그 당시를)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까.. 기계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여전히 아직도, 아직도 그래요. 어두운 곳에서 아직도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앞으로는 좀 노동자가 대우받는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37년 전, '근로기준법을 보장하라'며 청계천에서 분신자살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전순옥 / 수다공방 설립,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일) 오빠가 벌써 한 68년 말에 일기에 보면 모범공장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 모범공장의 내용은 옷을, 정말 그 제품의 질을 살리고, 우리 제품을 좋은 걸 사 입게 하고, 또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그래서 그런 정신에 따라서 우리가 하고 있는 거죠."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전태일 열사의 이루지 못한 꿈은 수다공방 패션쇼 <바람나다>를 통해 하나 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획: 박사야
영상취재: 김하얀, 박사야
편집: 김하얀
제작: 인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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