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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서 계를 맺다

막시무스 - 동양의 지혜를 묻다 <49>

어느 명절날
송도(개성)에서 꽤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 몇이
송악산 아래 만월대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그 중 하나가 계를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모인 사람의 대부분이 수도인 한양(서울) 출신으로
멀리 송도에서 벼슬을 같이 하는 인연이 있으니
계를 맺어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며
서로 돕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이성계가 왕에 오르기 전 지내던
송도 경덕궁(敬德宮)의 궁지기도 함께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자기도 그 계에 끼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벼슬아치들은
자신들처럼 귀한 사람들끼리의 모임에
어떻게 그런 낮은 자리에 있는 자를 끼워주겠느냐고 비웃으며
궁지기를 빼고 자기들끼리만 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시하며 빼놓았던 그 궁지기는
그 후 네 명의 왕을 거치며
두 번이나 영의정을 지낸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그 궁지기가 바로 한명회(韓明澮)였던 것입니다.

송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 바로 다음 해에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꾸민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났고
한명회는 그 과정에서 공이 뛰어난 37명 중 하나인
정난공신(靖難功臣)이 되어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송도의 만월대에서 계를 맺을 때
한명회를 무시했던 사람들은
그 날의 일을 후회했지만
한명회로부터 결코 좋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지요.
이 이야기로부터
별 것 아닌 지위나 권력을 믿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송도계원(松都契員)'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그로부터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쥐꼬리만 한 권력에 기대
어리석고 오만한 일을 저지르는
'송도계원'의 자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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