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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지방선거권 인정한 한국'을 넘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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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국인에 지방선거권 인정한 한국'을 넘어서자

[동아시아 NOW] 이민의 시대, 이주민과 참정권

21세기는 이민의 시대라 불린 지 오래이다. 주된 요인으로 경제의 세계화를 꼽을 수 있으며 이것이 상품, 자본, 정보, 이미지 등과 함께 주로 노동자들의 전 지구적인 이주를 촉진시켰다.

유엔에 따르면 1960년부터 2005년까지 전 세계 이민은 배가했다. 2000년에는 약 1억7500만 명이 출생국가와 다른 국가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였고, 2005년에는 1억91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를 자치하는 규모이다. 게다가 그 중 약 4분의3인 1억1500만 명이 선진 28개국에 몰려있다.

미등록 이주자의 경우 1100~1200만으로 미국에 가장 많으며, 일본에 22만1000명, 한국에 14만 명, 호주에 6만 명, 뉴질랜드에 2만 명으로 이어진다. 또한 선진국 인구의 10명 중 1명은 거주 국가와 다른 국가에서 태어난 이민이라 보고되었다.
▲ 전 세계 이민 인구는 계속 늘고 있으며 2005년에는 1억 9,100만 명에 도달했다. ⓒ 영국 경제사회연구위원회(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 UK)

세계화와 저출산 고령화로 촉진되는 이민

오늘날 선진 국가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숙련·비숙련 이주노동자의 국내 도입은 국가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회피할 수 없는 길이 되고 있다. 유럽은 1995년 6600만 명이었던 65세 이상 인구가 현재 7500만 명이 되었으며, 2050년까지는 1억300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듯 고령화가 사회보장을 압박하게 되자 개발도상국에서 온 젊은 이주노동자들이 연금을 짊어질 새로운 층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유럽 국가에서 이민자들의 납세 총액은 수용국가가 이들에게 베푸는 복지, 교육, 인프라 부담 총액보다 크다고 한다.

세계 성장의 중심지인 동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다. 현재 60세 이상 인구가 약 6억 명에 이르고 있으며, 2050년까지에는 전체의 20%가 60세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앞으로 동아시아는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의 3분의 2를 자치하는 지역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현재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는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세계 1위의 장수국 일본이다. 2000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일본 인구는 1억 2750만 명으로 최고점에 도달하고 2050년에는 1억 900만 명까지 감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경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년 31만 명의 이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되었다.

국적과 분리된 새로운 시민권 담론 등장

저출산 고령화 시대로 인해 이제 어느 선진 국가도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 이민 수용을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 등으로 생산력이 향상되면 이민정책에도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어느 선진국도 이민 혹은 이주노동자 정책마련을 간과할 수 없다.

이민 수용의 이유가 노동력 부족 해소에 있다 해도 기계가 아닌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면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이민자의 권리를 고려한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국제적 인권 보장 추세에 있어서도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민의 사회적 권리나 경제적 권리 등 보다 포괄적인 권리를 담은 시민권 논리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즉 국적과 결합된 개념으로의 전통적 시민권에서 전 지구적 이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민권 개념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어디까지 시민권을 인정할 것인가는 여러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고민 중 하나이다.

1980년대부터 유럽 국가들은 일정기간 거주한 외국인에게 영주자로서의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을 '데니즌(denizen)' 이라고 부른다. '데니즌'에는 정주 외국인에게도 국민에 준한 권리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시민권의 개념이 담겨 있으며, 이는 현대 영주자의 권리향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학자 토마스 함마(Tomas Hammar)는 시민권의 형식적 의미와 실질적 의미를 설명하고, 전자가 "국가의 구성원인 것"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국가에서의 일련의 권리 및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즉 국민만이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제한이 있더라도 외국적의 주민도 국민이 누리는 것과 거의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데니즌'의 경우 시민권의 세 가지 권리인 시민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 그리고 정치적 권리의 일부(지방참정권만)가 부여되어 왔다. 게다가 1993년에는 유럽연함(EU시민 일련의 권리를 총칭하는 EU시민권이 제정되었다. 국민만이 시민권을 누리고 외국인은 시민권으로부터 배제된다는 전통적 이분법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이 된 것이다.

외국인 사이에 발생하는 시민권의 차이, 인권으로 접근해야

이제 외국인과 국민이라는 이분법으로 그 권리와 의무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외국인 중에도 '데니즌'처럼 합법적인 영주자로서의 자격을 가진 외국인과 일정 기간만의 체류자격이 부여된 외국인, 그리고 아예 합법적 체류자격이 부여되지 않는 미등록 외국인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누릴 수 있는 권리상황이 달라지는데 있다.

예를 들면 유럽 각국에서는 영주자인 '데니즌'은 시민적 권리로서의 안정된 거주 권리의 보장을 받는다. 하지만 기타 장단기 거주 외국인은 일정기간 후 체류기간 갱신 여부가 행정기관의 재량에 달려 있고, 미등록 외국인은 거주의 권리가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아 강제출국 대상이 된다. 또한 '데니즌'은 특정 공직 외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기타 장단기 거주 외국인은 체류자격에 따라 경제활동이 제한 받고, 미등록 외국인은 경제활동 자체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외국인 사이에도 격차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시민적 권리나 사회적 권리 등 시민권의 많은 부분으로부터 배제되어 살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의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을 미등록 상태로 두고 있는 것이 사회 불공정을 심화시키고 하층계급을 영속시킬 뿐 아니라, 오랜 거주 기간 동안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사람들을 강제추방 시키는 것은 인도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국가가 인권보호 차원에서 미등록 외국인의 정규화를 요구하는 엠네스티와 씨름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서는 미등록 외국인의 정규화가 이루어졌으며, 어떤 체류자격을 가지고 입국하느냐 보다도 거주 기간의 실적이나 기타 사항이 넓은 의미에서의 시민권 획득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제기한 바 있다.

이민 또는 이주노동자의 시민권 문제는 비단 이민의 역사가 긴 서구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지구적 이민의 약 3분의 1을 수용하는 동아시아 국가도 현재 이주노동자나 이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새로운 시민권 형성을 위한 한국의 시도

한국에서도 주로 한국인과의 결혼 등을 통해 정주하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그러므로 귀화한 외국인을 제외하면, 재한 외국인은 영주권을 가진 '데니즌'과 고용허가제 등으로 입국하고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그리고 미등록 외국인으로 크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국적으로부터 분리된 새로운 시민권 담론 형성을 위한 시도들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에 새로운 시민권 담론에 영향을 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산업연수생제도 하에서 유입된 연수생을 근로자로서 인정하고 이들에게 부여된 평등권, 행복추구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초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중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원칙적으로 3회밖에 안 된다는 것은 근로의 권리, 직업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2개월 이상 실직자의 모국으로 강제추방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임금체계 등도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미등록 외국인의 시민권을 확대시키려는 시도는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더욱 본질적인 문제제기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가 1990년 비준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9조에는 어느 누구도 법률로 정한 이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않아도 그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낮과 밤을 불문하고 갑자기 연행하거나 공장에 무단 침입해 폭력적인 단속을 실시하는 것은 국제규약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국제규약을 비준한 국가는 그것을 준수할 의무를 갖는다.
▲ 2006년 5월 31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마련된 투표소에 외국인 참관인들이 방문해 투표과정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아 최초로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 부여한 한국

또 한 가지 시민권 담론에 중요한 계기를 주는 일은 2005년 한국 국회가 영주권 자격을 가진 외국인에 한해 지방선거권을 인정했던 것이다.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권을 부여한 것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최초다.

이는 앞으로 시민권의 개념을 국적을 불문하고 전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며, 여전히 혈통과 국적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동아시아 국가에 새로운 시민권 형성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다. 더 나아가 외국인의 시민권 범위는 확대 가능한 열린 개념이며, 외국인의 사회적 지위가 유럽 국가처럼 영원한 미등록 외국인 혹은 단기 체류자로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전 세계 시민권에 대해서 비교연구하고 있는 법학자 곤도 아츠시(近藤敦)는 그의 저서에서 귀화, 영주권 취득, 정규화에 따라서 보장될 권리 내용이 달라지는 현실에서 오히려 단계적 시민권을 생각하는 것이 실용적이라고 주장한다. 시민권의 배타성과 인권의 보편성을 조정할 법리와 정책이 현대 국제사회의 공통 과제라고도 덧붙였다.

영주권자나 정규 외국인뿐 아니라, 미등록 외국인의 권리까지도 담은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비준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한국의 선진적인 외국인 시민권 실현 성과는 주변 국가에 공유되어야 할 모범 사례이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 한국에서 지방선거권도 갖지 못한 수많은 외국인들과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생각하며, 국민주권의 원리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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