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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인 디자인이란?

[지상현의 Homo designans·14] 디자인 스타일과 심미안

열정이 없는 한국 디자인

몇 해 전 영국 BBC TV의 'Top Gear'라는 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한국산 자동차를 조롱해 국내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대상이건 조롱거리가 된다고 한다. 그래놓고 정작 마지막 멘트에서는 한국차가 우수하다고 칭찬했다니 "별난 프로도 다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성싶다.

그런데 사회자가 사용한 단어 하나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바로 '열정(passion)'이다. 그는 한국자동차의 디자인을 보고 "영혼이 없고 열정도 없다(There is no soul, there is no passion)"고 평했다. 필자가 관심이 간 것은 실제로 우리 디자인에 열정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보다는 디자인을 평가하며 그런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였다. 이를 그 사회자의 언어습관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간에도 많은 외국 디자이너들, 때로는 일반인들조차 자주 이 단어로 디자인을 평가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디자인을 '세련', '현대적', '도시적' 등의 단어로는 평가해도 열정이라는 단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 영국 BBC의 "Top Gear"라는 프로에서 한국자동차가 등장하는 장면

한국에서 디자인에 '열정적'이란 단어가 쓰였다면 그것은 눈에 잘 띄고 강하며 화려한 스타일을 일컫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탑 기어'의 사회자가 사용한 의미는 이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강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뜻했다면 그게 조롱거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화려한 것을 좋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것은 취향의 문제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런 용례가 그들과 우리가 디자인에서 중시하는 요소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만약 중시하는 것이 다르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곳에서도 우리의 디자인이 팔려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연주나 무용, 혹은 운동경기를 보고 "열정이 없다"고 한다면 연주가나 선수가 집중력이 부족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을 보고 집중력이나 성실도를 논한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디자인 과정은 관객의 눈앞에서 시연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중력과 일관성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음악 연주가나 운동선수의 열정을 디자인 맥락에 대입해보자. 만약 디자이너가 집중력을 몇날며칠, 심지어 몇 달이 될 수도 있는 제작기간 동안 유지한다면 무엇보다도 제품 각 부위의 디자인 스타일이 일관될 것이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 측면, 후면, 정면의 디자인 진행과정 동안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느낌이 안정되게 유지된다는 말이다.

디자인 과정은 계속되는 문제해결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 속에 그린 느낌을 자동차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일관되게 적용하기 어려운 여러 구조적 문제들과 부닥치게 된다는 말이다. 예컨대 디자인과 내부의 기계장치의 충돌, 차체 강도의 약화, 실내 공간 확보 등의 문제를 만나고 이를 해결해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디자인 과정을 예술적 창작의 과정이 아닌 논리적 문제해결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디자이너가 집중력을 잃거나 지쳐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문제해결을 위해 최초의 느낌을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문제점과 타협하게 되면 부분적으로는 세련됐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느낌을 잃게 된다. 반면 집중력이 강하고 뚝심이 있는 디자이너는 열정적이고 집요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져 문제해결방법과 의도한 느낌 사이에서 최적의 타협점을 찾아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열정(passion)'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개개의 디자인 사례를 들 수는 없지만 우리 디자인에서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런 열정을 읽기가 쉽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느낌이다.

세계적 경쟁품목인 휴대폰과 자동차 디자인에서도 그렇다. 우리 디자인은 마치 자신감 없이 조심스럽게 여기저기에서 예쁜 부분들을 따와 모아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런 점에서 외국 브랜드지만 '빛(light)'이라는 모티브가 디자인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모토로라의 레이저 시리즈나 '뱀(serpent)'의 느낌을 살린 일본의 수공 자동차업체 미츠오카의 스포츠카 '오로치'의 디자인은 단연 돋보인다. 특히 오로치는 주목할 만하다. 미츠오카는 차체 디자인에만 주력하고 부품은 생산하지 않는 조립차 생산업체다. 이 회사는 실제 생산할 계획이 없는 실험적인 디자인 '오로치'를 2001년 재팬 모터쇼에 출품하고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 이에 고무되어 조립차로 생산하게 되는데 무려 6년의 시간을 들여 차체 디자인과 내부 부품과의 충돌을 조율했다. 자칫하면 애초의 디자인을 거의 잃을 뻔 하기도 했지만 경영주와 디자이너의 뚝심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렇게 해서 시장에 나온 것이 2007년 1월이다. 국내 디자인으로는 최근에 출시된 LG전자의 홈시어터 '샴페인'에서 단일하고 일관된 느낌을 읽을 수 있었다.
▲ 수공 자동차 조립업체 미츠오카에서 6년여의 개발을 통해 올 초 출시한 '오로치(뱀)'. 엔진, 프레임 등을 생산하지 않는 미츠오카에서는 2001년 재팬 모터쇼에서 예상 밖의 인기를 얻자 조립생산을 결정하고 외양 디자인과 내부 기계장치를 조율하는 6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친다.

▲ LG전자에서 출시한 홈 씨어터 '샴페인'에서도 샴페인의 병과 잔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곡선이 제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가 아닌 소비자들도 이런 열정을 읽어낼 수 있을까? 물론이다. 디자인 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소비자들일수록 더 잘 읽어낸다. 우리의 심미적 감상과정에는 무의식적 추론과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 추론과정은 일종의 확률게임과 유사하며 심미적 경험이 많을수록 정교해진다. 아침에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고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 당신 친구의 옷장에 그림에서 보는 것과 같은 6종의 넥타이가 있다고 하자. 좌측과 같은 슈트와 셔츠에 맬 넥타이를 어느 정도의 확률로 예측할 수 있을까?

양복과 셔츠의 색으로 짐작하건데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우측 하단에 있는 두 넥타이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넥타이는 각기 양복과 셔츠의 색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 두 넥타이를 맨다면 양복색과 동일해 단조롭거나 셔츠의 색과 넥타이를 구별하기 힘들게 된다. 상단에 있는 넥타이들은 이 양복과 셔츠에 일반적으로 맬 수 있는 넥타이 디자인 몇 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만약 옷장 속에 이 여섯 종류의 넥타이만 있다면 하단의 두 넥타이를 제외시켜 1/4의 확률로 어떤 넥타이를 맬지 알아맞힐 수 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단의 두 넥타이를 제외할 수 있었던 것은 양복과 셔츠의 디자인에 어떤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정보는 양복이나 셔츠와 동일한 색과 패턴의 넥타이를 매지는 않는다는 일종의 옷 입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나온다. 만약 이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면 선택될 넥타이의 디자인을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법칙을 안다는 것은 특정한 디자인 스타일의 특징이나 구성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디자인 스타일은 옷 입는 스타일처럼 소비자 스스로 만든 것일 수도 있고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 속에 반영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간 어떤 가구 디자인이 유럽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유럽식 스타일의 특징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이고 "너답지 않게 입었다"는 말은 너라는 사람의 옷 입는(옷을 구성하는) 스타일을 안다는 뜻이다.
▲ 미켈 칼라타유드의 "움직이는 나무"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매우 독특한 스타일이지만 그만큼 움직이는 나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지식은 미술작품이나 디자인을 접한 경험이 많을수록 높아진다. 예컨대 디자인을 접한 경험이 전무 하다시피 한 유아들은 위의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이 무슨 뜻인지 조차 이해 못할 수 있다. 동화책 일러스트레이션, 특히 독특한 이 일러스트레이션의 스타일을 충분히 접해야 그 스타일의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 나무의 팔과 다리를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딸아이도 일러스트레이션의 구성원칙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다. 아이가 3~4살 때인 것 같은데 "팥죽 할멈과 호랑이"를 읽다가 펼쳐진 책의 양쪽 페이지 모두에 호랑이가 등장하자 왜 호랑이가 갑자기 두 마리가 되었는지 의아해했다. 아직 책의 구성방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자인 스타일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이 있는가

슈미드후버와 같은 정보미학자는 이런 감상 과정을 저명한 통계학자 베이즈(Bayes)의 수리모형을 이용해 개념화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려운 수리 모형을 빌리지 않아도 다양한 미술 혹은 디자인 감상경험을 통해 각 스타일의 구성법칙을 내면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지식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은 다양한 디자인 스타일에 대한 변별력, 예측력을 갖게 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심미적으로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디자인 스타일은 크게 보면 시대나 국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작게 보면 브랜드마다 다르다. 우리가 어떤 제품을 보고 "어느 브랜드 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 브랜드의 디자인 문법, 즉 디자인 스타일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브랜드보다 작은 제품단위로 내려가도 같은 이야기가 반복될 수 있다.

다시 자동차로 생각해보자. 자동차 전체를 관통하는 단일한 스타일 혹은 디자인 문법이 있다면 안목 있는 소비자는 이것을 눈치 챌 것이다.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할지라도 대충 어떤 것이라고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의 앞부분을 보고 뒷부분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식한 스타일을 토대로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어울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차의 후면을 보면 좌측의 차는 아래 그림에서 보즛이 우측 것에 비해 좀 더 직선적이고 정사각형에 가깝다. 반면 우측 것은 더 곡선적이고 변화가 많다. 자동차 전면의 전조등에도 이런 특징들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초두에 이야기한 탑 기어라는 프로그램의 사회자가 "한국의 디자인에 열정이 없다"고 한 것이 이 경우가 아닌가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디자인 전문가도 아닌 TV쇼 프로의 사회자가 디자인을 보고 '열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을 꿰뚫는 안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기반이 디자인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반면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는 그런 토대가 약해 보인다.

디자인은 미술이 아니다

우리는 디자인 교육에서 미술을 중시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심미적 감수성이나 미술 양식(스타일)에 대한 감식안은 계발하지도 평가하지도 않는다. 디자인 대학 신입생을 선발할 때에는 엉뚱하게 데생이나 정밀묘사와 같은 그림실력을 평가한다. 아마 이런 경우는 세계에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인지 막상 디자이너들은 작은 제품 하나를 관통하는 예술적 스타일 개발도 힘들어하고 심지어 그런 일관된 스타일을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을 학생들은 입시 중요과목이 아니라 하여 감식안 계발을 경시한다. 미술전시회는 초등학교 이후 거의 가지 않고 미술숙제를 위한 전시회 팸플릿 수집은 엄마가 대신 해준다. 중고생의 유일한 심미안 계발기회는 연예인들의 패션 따라 하기다.

디자인 발전을 위해서는 미래의 디자이너와 소비자들이 어릴 때부터 좋은 심미적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심미적 교양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훌륭한 디자이너가 나오고 안목 있는 소비자가 된다. 흔히 소득수준이 높아져야 디자인수준이 발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디자인 발전의 충분조건은 우리 모두의 심미적 교양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런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뒤틀리고 꼬인 우리의 교육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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