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는 팔레스타인의 지위를 옵서버 국가로 격상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총 193개 회원국 가운데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기존의 팔레스타인 지위가 표결권이 없는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국가(state)'로 격상된 것이다. 이날은 1947년 유엔이 당시 영국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과 아랍 영토로 분리 결정한 날이기도 하다. 표결에서 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을 낸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은 표결에 앞서 옵서버 국가 지위로의 격상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 평화를 구축할 기회라며 지지를 호소 했다. 그는 "유엔이 팔레스타인에 '출생증명서'를 발급해 달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고 덧붙였다.
▲ 29일(현지시간)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 지위 격상 결의안이 통과되자 기뻐하고 있는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수반(가운데)와 팔레스타인 대표단 ⓒAP=연합뉴스 |
이날 팔레스타인의 지위가 격상된 것은 국제사회가 곧 팔레스타인을 하나의 국가로 간접적인 승인을 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팔레스타인은 앞으로 유엔의 국제기구 회의에 참여할 수 있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할 권리를 확보할 수도 있어 국제사회에서 그 입지를 더욱 넓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인 전쟁과 2008년에 일어났던 가자지구 공습.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 등을 ICC에 제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지난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전의 국경을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인정받으려고 국제사회에 호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사회 여론 악화에도 불구, 미·이스라엘 극렬 반발
유엔 총회에서의 이번 결의는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가 가능한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이 3분의 2 통과 기준인 129개국 찬성을 훌쩍 넘은 138개국 찬성을 얻으며 유엔 회원국들의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여론이 악화하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교전으로 가자지구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총 160명 이상 사망한 것이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국제 여론이 조성된 주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은 표결에 앞서 일찌감치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프랑스는 2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의 유엔 지위 격상에 찬성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 노르웨이, 스위스, 덴마크도 유엔에서 팔레스타인 지위 격상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우호적인 국제여론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문제는 유엔이 아닌 양자 간의 협상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며 심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역시 표결 직후 이번 투표가 평화에 걸림돌이 된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유엔 지위 승격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팔 간 평화협상 재개에 도움이 되지 않고 이스라엘과 협상을 통해 독립국이 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의 희망도 지연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간) "(승격 신청은) 팔레스타인이 잘못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론 프로서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 역시 "결의안이 너무 일방적이어서 평화를 후퇴시킬 것"이라며 "특히 유엔 지위가 승격된다고 해서 '국가 지위'(statehood)를 갖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은 이미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독립국 자격인 정회원국으로의 승격을 신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거부로 무산됐었다. 정회원국이 되려면 안보리에서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9개국의 찬성을 거친 후 유엔 총회에서 전체 회원국의 3분의 2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상임이사국인 미국이 거부하면 유엔 총회에 안건으로 상정되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팔레스타인은 옵서버 국가 지위를 신청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로 이번 팔레스타인 옵서버 국가로의 지위 격상이 총회 통과와는 별개로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팔레스타인이 지난해 10월 유엔 산하기관인 유네스코 정회원국의 지지를 얻었지만 미국이 유네스코 예산의 22%를 담당하는 자국 재정지원을 중단하면서 자금난을 심화시켰고 이스라엘은 새로운 정착촌 건설을 통한 보복조치에 나서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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