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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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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변화

[버마이야기] ③ 버마 군부의 이중플레이

버마 스님들이 중심이 된 평화적인 시위가 군부에 의해 폭력적으로 탄압당한 날로부터 벌써 35일이 지났다.

이브라힘 감바리 유엔 특사는 11월에 버마를 다시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 13년째 가택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지난 10월 25일 버마 군부의 연락창구인 아웅 치(Aung Kyi) 대화조정담당장관과 회담했지만, 그 순간에도 버마 군부는 계속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다.

시위 진압을 위해 양곤에 배치됐던 병력도 조금씩 철수하고 있다. 국제적인 압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병들이 일반 시민들과 장기간 접촉하면서 동요될 수 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이기도 하다.

9월에 발발한 스님들의 비폭력 시위 전까지는 정치범 수감자가 약 1300여명이 있는데, 9월 26일부터 지금까지 체포된 사람만 국영방송 보도로 3000명, 민주화운동가들의 예상치로는 6000명 가량 된다.

시위 때 체포된 일부 사람들이 석방됐지만, 그들은 시위를 구경만 했거나 혹은 시위대와 함께 체포된 군부의 끄나풀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활동가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짜 시위대 중 풀려나온 사람들은 "이번 시위는 실패하지 않았다"라며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며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16일에 석방된 여성활동가 지지 뉸트(Kyi Kyi Nyunt)는 조사를 받던 기간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으면서도 "몸은 너무나 아프지만, 아픈 만큼 마음이 튼튼하다"라고 말했다.
▲ 지난 9월 버마 양곤 시내에서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도열한 경찰들 ⓒ로이터=뉴시스

전국승려회연합과 학생조직들은 군부에 대해 체포를 중단하고, 체포된 사람들을 석방할 것이며 앞으로 의미있는 대화를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체포된 사람들은 누구이며 현재 어디에 갇혀 있는지를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군부는 9월 말부터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를 최근 해제했다. 그래도 시민들은 해가 떨어지면 외출하기를 겁낸다. 사전 신고 없이는 부모님 집에서도 잘 수 없게 하는 법이 1962년 군부 쿠데타의 지도자인 네윈(Nay Win)이 만든 버마식 사회주의(군부독재의 다른 이름)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동마다 있는 동사무소 관할 하에 10가구마다 관리자 한 명이 배치되어 있다. 주민들은 국가나 동사무소와 관계된 일을 해야 할 때는 먼저 그 관리자로부터의 신원보증 서류를 받아야 한다. 구멍가게를 하고 싶어도 그 사람들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 결과 자유를 잃어버렸고 뇌물이 만연한데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서로를 믿지 않고 겁내는 '병'에 걸려 있다.

풍비박산된 가족…그러나 변화는 시작됐다

전국승려회연합과 학생 조직들, 그리고 시민들은 군부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버마 군부가 반군부 활동가들을 계속 체포하는데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투쟁하고 있다.

이에 군부는 활동가를 체포하려고 갔다가 실패하면 대신 부인이나 부모를 잡아가며 탄압을 하고 있다. 그 중에 유명한 사건은 전국승려회연합의 대표 스님 아신 간비라(Ashin, Gan Bi Ra)의 친척들이 체포된 사건이었다.

아신 간비라의 어머니와 동생 두 명은 현재 체포된 상태고, 아버지는 피신중이다. 지난 10월 17일 큰형 아웅 쬬쬬(Aung Kyaw Kyaw)도 체포되었다. 아웅 쬬쬬는 AIDS/HIV 병자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이자 NLD(버마민족민주동맹) 지역 지부의 총무이다. NLD 활동과 병자들에 대한 치료 때문에 옛 수도 양곤에 자주 다니던 아웅 쬬쬬는 지난 17일에 병자 한 사람과 함께 양곤 시내에 체포당했다. 병자는 다음 날에 석방됐지만 아웅 쬬쬬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아웅 쬬쬬에게는 각각 10살, 6살, 4살 나이의 아이 3명과 부인이 있다. 부인 딴다(Than Da)씨는 남편까지 체포되자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방치된 상태다. 딴다 씨는 <자유아시아방송<(RFA)와의 인터뷰에서 "버마에 법이 있습니까? 있다면 법적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요구로 아웅산 수지와 대화를 준비한 군부는 뒤돌아서는 비폭력적으로 시위하는 승려들과 활동가들을 체포하고 폭행을 가하는 등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자유를 억압했다.

지지를 점점 잃고 있는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군부는 1962년 쿠데타 이후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마지막 몸부림에 불과하다. 그들이 변화를 막으려 마지막 힘을 쏟아 붓고 있지만 시민들의 마음 속에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2007년이 가기 전에 버마 시민들의 변화가 군인들에게까지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이 버마인들의 믿음이다.

* 필자 마웅저(Maung Zaw) 씨는 버마 8888 항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한 후 버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왔다. 1994년 군부의 탄압을 피해 버마를 탈출, 한국에 왔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중이다. 버마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결성에 참여했고, 현재는 한국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고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인턴으로 활동 중이다. 블로그 <마웅저와 함께(http://withzaw.net)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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