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상임의장은 이날 오후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민화협 주최로 열린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공동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북한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에 미칠 타격을 막기 위해 북한을 관리할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고분고분하지 않는 北 고깝게 생각 말아야"
김대중·노무현 양대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 의장은 "1977년 통일원에 들어가 지금까지 북한을 분석하고 대북 협상의 일선에 섰던 사람으로 보자면 이제 북한과의 협상에서 '일대일 시대'는 지난지 오래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남한은 1인당 GDP가 2만 불에 가까워져 가는데, 북한은 금년 국가 예산이 39억 불에 불과하다. 39억 불은 남쪽 웬만한 기업 한 곳의 수출량밖에 안 된다. 석유 1억 톤을 쓰는 남과 100만 톤도 못 쓰는 북이 어떻게 군사적으로 대결하겠나. 이런 남과 북이 어떻게 일대일의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겠나. 다만 그런 북이 고분고분하지 않아 불편한 분들이 있나 본데, 약자가 그러는 걸 가지고 고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정 의장은 이어 "생각을 그런 방향으로 정리하면서 향후 5년간의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면 우리는 1인당 GDP 2만 불에서 3만 불로 넘어갈 것"이라며 "그러나 북을 일대일로 상대하면서 '이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지원 못한다'는 식으로 하면 한반도 상황도 어려워지고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공동회의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유기홍 의원,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 민주노동당 이용대 정책위 의장, 민주당 이상열 의원이 나와 남북관계에 대한 각 당의 기조와 대선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정당들이 구름 잡는 얘기만 해서는 앞으로 5년간 험난한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데 애로가 많다고 본다"고 비판하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지난 10년의 대북정책을 좀 더 계승·발전하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수 인사들도 "차기 정부, 대북정책 계승해야"
한편, 이날 공동회의에서는 남북문제와 관련된 시민사회단체의 대표 100인을 대상으로 정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자신의 성향을 진보로 규정한 78명(67.8%)과 중도라고 한 15명(13.0%), 보수라고 밝힌 20명(17.4%) 등 단체대표 113명은 현장에서 ARS 방식의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에서 가장 성공한 분야를 인도적 지원(28.3%), 당국간 대화(26.5%), 경제협력(22.1%) 순으로 꼽고 가장 미흡한 분야로는 단연 군사안보(67.3%)를 꼽았다.
2007 남북정상선언의 국회 비준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82%('매우 필요함' 50.5%, '다소 필요함' 31.5%)를 차지해 선언 자체에 대한 비준은 필요 없다는 정부의 입장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또한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보수 성향 응답자가 17.4%였음에도 불구하고 적극 계승 67.6%, 가급적 계승 22.5%, 일부 계승 9.9%를 기록해 계승할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새로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조정하는 문제에 대해 80.7%는 '협의할 수 있다'고 응답한 반면 협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은 13.8%에 불과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50.5%가 '환경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에, 43.1%가 '즉시 철폐'에, 5.5%가 '안보위협이 존재하므로 고수해야 한다'에 답했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백승주 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비해 차이가 크다"며 "시민단체 대표들이 국민들의 생각을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는 방향으로 가는 시점에서 실시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하고 고무적"이라며 "남북관계를 주로 담당하는 단체들의 견해이기 때문에, 의식과 실천이 결합될 때 확고한 여론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퍼주기론이 없어지고 있다는 점, 북한을 지원하되 평화·군사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 미국을 보는 눈이 냉정하지만 미국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식 등의 의미가 포함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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