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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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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태규 명리학 <300>

도(道)의 운행에 대해 ①

저번 글에서 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고, 도를 알아서 익히고 나면 다섯 가지 공용(功用)이 있다고 했다.
  
  '도'란 것이 계절의 순환임을 알았지만 그 과정을 투철하게 익혀야만 다섯 가지 공용을 얻을 수 있음이니 '도'의 운행(運行)하는 모습에 대해 얘기하겠다.
  
  그리 어렵지도 않다. 다만 지극한 경지까지 알게 된다는 것은 세상만사가 그렇듯 쉬운 일이 아니며 필자 역시 여전히 공부 중이다.
  
  노자는 '도'를 말했다. 그림 속에서 노자는 소를 타고 길을 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소 등에 올라타면 두 가지 이점이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걷는 수고를 덜 수 있다는 점이요, 다음으로 천천히 자연과 사물의 경계를 구경하면서 느린 행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를 타고 길을 가는 것, 우보(牛步)하는 것은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길을 가라는 뜻이다.
  
  그러자 장자는 '도'를 통해 소 등에서 '노니는' 경지가 무엇인가를 노래했다.
  
  장자(莊子)는 천장지구(天長地久), 하늘과 땅의 크고 영원함, 그리고 끝 모를 순환 앞에서 우리의 도모(圖謀)함이 그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통렬하게 비웃었다. '도토리 키재기' 하지 말고 한 번 얻은 귀한 생명이니 유연하게 살다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황진이의 노래를 보라.
  
  청산을 흘러가는 푸른 계곡 물이여 수이 감을 자랑 마시게나, 한 번 바다에 가면 돌아오지 못하나니.
  
  황진이는 청산의 '푸를' 청(靑)과 계곡 물의 '푸를' 벽(碧)과 바다의 넓고 '푸를' 창(滄)을 연이어 나열함으로써 젊음을 강조하고, 그 젊음이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일거불래(一去不來)함을 들어 사모하는 사람에게 유혹의 필살기(必殺技)를 던지고 있다.
  
  황진이의 연인인 화담 서경덕이 진실로 '도'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놀았어야 했건만 전해지는 얘기인 즉 그 유혹에 굴하지 않았다 하니 천고에 아쉬운 대목이다.
  
  서화담은 결국 '도'를 모르는 자였으니 평생 헛공부만 했던 꽁생원이었다. 진실인 즉, 두 사람은 적어도 몇 번 좋은 시간을 가졌을 것으로 믿는다.
  
  이제 군소리 그만 하고 '도'의 운행하는 모습에 대해 얘기하겠다.
  
  도의 운행이란 문자 그대로 계절의 순환이다. 해마다 사계절을 겪으며 사는 우리들은 도의 운행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
  
  지나간 여름에 썼던 "생각과 현실의 시차"라는 글에서 얘기한 바, 우리의 바람과 현실 간에는 일정한 시간의 간격이 있다고 했다.
  
  또 그런 시간차는 여름 6월 23일경의 하지(夏至)에 광량이 가장 많지만 열량이 가장 많은 때, 가장 더운 때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7월 23일경인 대서(大暑)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밝혔다. 우리가 느끼는 열은 빛이 땅을 데운 뒤 그로부터 반사되는 복사열(輻射熱)인 것이다.
  
  머리가 명석하고 배움이 많아도 현실에서 종종 사리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바로 그런 시간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명석한 자는 빛을 보았기에 이제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행동에 나섰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열이기에 한 템포 빠른 것이 탈이 되어 실패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자가 사업가 형이 아닐 수 있는 이유이다.
  
  아둔한 자는 가장 뜨거울 때 일을 시작한다. 준비를 마치고 시작하는 순간부터 열기가 빠져나가니 이른바 뒷북을 치는 것이다.
  
  빛과 열의 관계에 대해 해마다 겪는 하지(夏至)이고 대서(大暑)이건만 이런 단순한 이치를 잘 모르고 있기에 일에 실패하는 자가 속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얘기할 것은 계절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둘씩 짝을 지어보라 하면 대개 봄과 여름을 하나로, 가을과 겨울을 하나로 묶을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
  
  눈을 돌려 산과 들을 보고,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라.
  
  여름과 가을이 풍요롭다는 면에서 하나이고, 겨울과 봄이 궁핍하다는 면에서 하나이다. 이렇게 짝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뭐니 해도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인 법이기에.
  
  궁핍하다는 점에서 겨울과 봄은 동일하지만, 다른 점도 있어서 계절을 나눈다.
  
  겨울은 가을에 실컷 영양을 비축했거나 먹을 것을 쌓아둔 자라면 그리 궁핍하지 않다. 다만 점차로 궁핍해지니 별 희망이 없는 계절이다.
  
  봄은 해가 점차로 길어지기에 희망은 더욱 강해져가지만 먹을 것이 없어 가장 궁핍한 계절이다.
  
  젊은이는 인생의 순환 중에서 봄이라 할 수 있다. 청춘(靑春)이란 말이 그것이다.
  
  젊은이는 가진 것도 없고 늘 배고픈 것이 기본이다. 그래서 젊음은 꿈과 희망이 주식(主食)이다.
  
  물질이 풍요로운 젊은이는 기백과 박력이 결여된 것이다. 그러니 자녀를 귀하게 키우겠다는 것은 나약하게 키우겠다는 것이니 자칫 해가 될까 두렵다.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1960-1970년대의 우리나라는 배고팠지만 꿈에 부풀어있었다. 젊음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늦가을이다. 도처에 물질이 풍요롭지만 뭔가 마음은 빈곤하다. 모두들 희망을 얘기하자고 하지만 그 희망은 저마다의 색깔이어서 혼색하면 잿빛이다.
  
  봄의 배고픔, 그것은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근원적인 힘이다. 그렇기에 어렵게 자란 이가 훗날 성공을 해도 세게 한다.
  
  그리고 여름과 가을을 하나로 묶는다.
  
  두 계절 모두 풍요롭지만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여름은 문자 그대로 치열, 열이 치성을 부리는 계절이다. 양력 5월 5일부터 8월 초까지의 기간이다.
  
  마음껏 욕망을 펼쳐보는 때인 것이다. 한껏 뻗어가고 마음껏 약동한다. 갖은 악을 써가며 경쟁하는 때이기도 하다.
  
  사람으로 치면 우리나이로 20세에서 38세까지의 기간이다.
  
  저마다 앞을 다투며 남이 앞서가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특히 계절로 치면 여름의 하지(夏至) 무렵부터는 늦여름이니 경쟁은 절정에 달한다. 사람의 나이로는 29세부터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다소 불리하거나 옳지 않다 싶으면 과감하게 항의한다. 사랑도 열심히, 일도 열심히, 주장도 열심히, 모든 것이 열심이고 치열하다.
  
  이에 비해 가을은 서서히 열기가 빠지고 시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며, 여름에 경영했던 것이 결실을 거두는 계절이다. 따라서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여름 경영이 부실했던 자는 상대적으로 가장 결핍을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바로 이런 현상이다. 모두들 밥은 먹고 살지만, 그 질적인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사계절을 정리해보자.
  
  겨울은 덜 궁핍하지만 희망이 적은 계절이고, 봄은 가장 궁핍하지만 희망이 많은 계절이다.
  
  여름은 덜 풍요롭긴 하지만 한껏 욕망하는 계절이며 가을은 희망은 줄어들지만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다.
  
  그리고 크게 보아 궁핍하다는 점에서 겨울과 봄이 하나이고, 풍요롭다는 점에서 여름과 가을이 하나이다.
  
  이는 '도'의 운행을 계절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다.
  
  다 알고 있는 계절의 운행인 데 무엇에 쓸 수 있느냐고 묻는 분이 계실 것이다. 어떻게 써먹느냐 하는 실용(實用)의 문제는 다음 글에서 잇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되었다. 올 해의 일을 한 번 쯤은 성찰하고 반성할 때가 왔다.
  
  (알리는 말씀:
  
  제 18 기 음양오행과 명리학 강좌 기초 클라스를 시작합니다.
  시기는 2007 년 11월 3일 오후 5시부터 시작하며 장소는 양재역 근처입니다. 기간은 매주 3시간씩 15 주 동안 진행됩니다. 정원은 15명을 기준으로 합니다.
  
  운명의 이치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세상사가 어떤 원리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입니다.
  
  음양오행에 대해 눈을 뜨면 어떤 분야든지 그 이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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