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국과 이라크 정부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터키군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 PKK 근거지가 있는 이라크 북부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중동 사태 악화를 우려한 미국의 강력한 제지가 먹혀들지 않을 정도로 미국과 터키의 외교관계는 전례없이 악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터키와 쿠르드의 뿌리깊은 악연(☞관련기사: 터키-쿠르드의 악연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조명한 <아시아타임스>의 '슈펭글러 칼럼'은 후속편으로 터키와 미국의 갈등을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한 글을 실어 주목된다.
슈펭글러는 미국과 터키의 갈등이 흔히 지적되듯 최근 미 하원 외교위원회가 통과시킨 '아르메니안인 결의안'보다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큰 문제는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이 터키를 '온건 이슬람 국가'의 모델로 삼으려는 정책이 터키의 국가 정체성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서 탈출하려면 쿠르드족을 독립국가로 만들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는 터키의 분열을 의미하므로 터키의 반미감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Why does Turkey hate America?'라는 '슈펭글러 칼럼'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터키군이 미국 정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쿠르드 지역을 침공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전세계에서 어느 민족보다 터키가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60년 역사를 지닌 군사동맹 관계이며, 터키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민주적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충격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터키인 83%가 "미국 싫어"
2007년 6월 미국의 퓨 리서치가 47개국 시민들을 상대로 미국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더니, 터키인 응답자 83%가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반미감정이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대해 호감을 보인 터키인은 9%에 불과했다. 이는 이집트가 21%, 인도네시아가 29%인 것과 비교된다.
2000년 조사에서 터키인들이 미국에 대해 호감을 보인 비율은 52%였다. 하지만 그 이후 모든 나라에서 이처럼 반미감정이 악화된 것이 아니다. 나이지리아인들의 경우 2000년에 미국에 대해 호감을 보인 비율이 46%였으나 2007년 조사에서는 70%로 나타났다.
터키인들이 미국에 대해 기분 나빠하게 된 여러가지 명백한 이유들이 있다. 하지만 터키인들이 보여주는 증오의 강도는 나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 2005년 오마르 타스피나르가 쓴 글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터키 전문가인 그는 "미국이 터키를 '온건 이슬람'의 모델로 만들려는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터키 출신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터키 전문가로 알려진 타스피나르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의 글을 이제서야 읽은 게 원망스러울 정도다. 그의 글을 읽어보자.
"냉전이 끝나면서 이데올로기 시대도 끝났다. 터키에서는 갑자기 1920~1930년대 근대 터키공화국 초기로 다시 돌아간 듯한 상황이 빚어졌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국시인 세속주의와 민족주의에 쿠르드 이슬람 반군의 도전이 거셌던 때로 돌아간 것이다.
터키의 국가정체성 흔든 미국의 '온건 이슬람 국가' 만들기
반미감정의 뿌리에는 터키 케말리스트의 정체성 문제가 있다. 미국이 터키를 '온건 이슬람'의 모델국가로 만들려고 하면서 케말 아타튀르크가 세운 세속주의 국가를 흔들어 놓은 것이다. 세속적인 터키의 민족주의자들이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증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과격 이슬람'에 대항해 '온건 이슬람'을 옹호하는 정책은 터키에게 가장 골칫덩어리다. 미국의 정책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터키 내의 온건 이슬람을 지지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터키의 세속적 케말리스트의 정체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이슬람 성향의) 정의개발당(AAKP)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사건에 놀란 터키공화국의 세속주의자들은 온건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지해온 미국의 입장에 대해 극도로 우려했다.
총리로 선출되기도 전에 미국은 AKP 총재 타입 에르도간을 워싱턴으로 불렀다. 터키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미국의 태도를 터키의 세속주의 전통을 미국이 약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았다.
근대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아타튀르크는 이슬람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슬람 전통복장을 금지시키고, 여성을 해방시켰으며, 세속주의적 교육을 권장하고, 자신의 개혁정책에 반기를 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저항을 분쇄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실패했다. 이슬람 이전의 아나톨리아 시대의 세속적 터키문화를 되살리려고 했으나 새로운 이슬람 문화가 그 공백을 채운 것이다.
이에 따라 터키는 국가 정체성 문제로 극심한 혼란애 빠져들었다. 세속주의 정당도 이슬람 정당도 '온건 이슬람'을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온건파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케말리스트들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온건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은 이런 전략으로 터키의 양 진영을 모두 분노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나는 '온건 이슬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은 적이 없다. '온건 기독교'가 있다고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가 이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죽었든 아니든, 만일 예수가 그저 또 하나의 선지자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즉시 기독교인이 아니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터키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온건파가 아니다. 그들은 그냥 이슬람주의자이며, 종교와 문화적 차이로 미국을 혐오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터키의 민족주의자들은 터키를 종교개혁을 위한 실험실 쥐로 만든 미국을 혐호한다.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이라크 분할방안'은 터키 최악의 악몽
이제 쿠르드 문제로 넘어가 보자. 케말리즘은 터키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쿠르드족을 터키 국민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쿠르드족의 언어와 관습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또한 아타튀르크는 1915년에 시작된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데, 당시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 땅이었던 터키 동부를 주겠다면서 쿠르드족에게 아르메니아인 학살의 실제 행위를 맡겼다.
쿠르드족이 터키의 동부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된 범죄가 바로 이것이며, 쿠르드족이 터키의 영토 통합을 위협하게 된 역사적 사건이다.
또한 오늘날 터키인들의 반미감정이 고조된 이유도 쿠르드족 문제와 관련이 있다. 거의 모든 터키인들은 미국이 이라크에 쿠르드 독립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이 일부러 그런 정책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미국의 정책이 그런 시나리오를 낳게 될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지난주 칼럼에서 지적했듯, 이라크를 3등분하는 방안이 미국 상원에서 지난달 75대 23으로 통과된 것은 터키가 가장 큰 두려움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민주당 상원의원과 절반에 달하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미국의 이라크 탈출전략으로 분할방안을 승인한 것이다. 이 방안은 터키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태가 현실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쿠르드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수도로 하는 가칭 쿠르드 독립국가가 수립되는 것이다.
터키 케말리스트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정치적인 이슬람의 침투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가 세속주의 헌법에 기초한 통합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터키의 내전 가능성에 대해 우려가 나오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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