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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vs 포스트 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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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vs 포스트 모더니즘

[지상현의 Homo designans·13] 디자인의 변화

디자인의 역사는 아직 일천하다. 디자인사(史)라 부를 만한 것도 별로 없다. 디자인의 역사를 미술사처럼 선사시대부터 보는 이들도 있지만 정직하게 보자면 100년이 채 안 된다. 이 짧은 동안의 디자인적 사실에 관한 연대기가 디자인사의 전부인 것이다. 부르크하르트와 같은 역사가들이 미술사를 일반 문화사에서 독립시켰듯, 디자인사가 독립된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디자인적 사실을 보는 독특한 관점의 개발이 필요하다.

무엇이 디자인을 변화시키는가: 디자인 역사와 디지인 유행

당장의 실용성이 중시되는 디자인에서 역사를 논하는 것은 한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디자인에서는 유행의 예측이 매우 중요하다. 디자인 선진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디자인 유행의 예측력에서 갈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 유행의 예측은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변수들이 너무 많아 매우 어렵다.

사실 예측의 어려움은 디자인 유행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주가의 예측, 기상 예측, 정치적 변화의 예측 등 모든 예측에는 불확실성과 가변성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분야의 예측 기술은 꾸준히 발전해와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디자인 유행에서도 마찬가지 원리는 있을 터다.

여기서 디자인 유행을 예측하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과거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내는 디자인사다. 이렇게 보자면 디자인사는 매우 실용성이 큰 분야라 말할 수 있다.

현재 디자인 유행에 영향을 주는 2대 요인으로 꼽는 것이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다.

신기술에 의해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면 가전제품, 가구, 패션의 유행이 확 변한다. 컬러 TV가 나오면서 환경의 색채가 다채로워졌고 표면가공기술 덕분에 하이-그로시라는 광택 나는 재질의 가구가 유행했던 것이 그런 사례다.

최근에는 "크로스 오버(Cross Over)"가 유행의 핵심어라고 한다. 이 말은 제품군 간(間) 표면 소재가 서로 넘나든다는 말이다. 예컨대 가구의 소재가 전자제품의 표면을 장식하고 전자제품의 질감이 가구에 적용되는 식인데, 이는 표면처리 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

근무 형태가 다양해지고 주 5일 근무를 하면서 출근복과 일상복 디자인의 차이가 줄어든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 변하면서 생겨난 유행이다.

그러나 이 두 요인만으로 유행을 제대로 예측하기는 힘들다. 더 많은 지식과 방법론이 필요하다. 디자인사는 그런 지식과 관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예컨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 스타일의 등장과 명멸을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더니즘" 혹은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사(史)적 관점에서 정리해 볼 수 있다.
▲ 모더니즘 작가인 말레비치(좌)와 로드첸코(우)의 작품. 극도로 단순한 구도와 직선, 장방형과 같은 기본적인 조형요소로만 구성되어 있다. ⓒ프레시안

바우하우스: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

바우하우스는 그로피우스라는 건축가가 1919도에 설립한 건축조형학교 이름이다. 나치의 박해를 받고 폐교와 복교를 거듭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현대디자인의 초석을 다진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학교에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미술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칸딘스키, 클레, 모홀리 나기, 파이닝거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바우하우스는 학교 이름을 넘어서는 일종의 디자인 문화운동을 지칭할 정도가 되었다.

바우하우스에 참여한 교수들은 대부분 모더니즘 작가들이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조형의 아름다움을 지배하는 단일한 원리가 있다고 믿고 그 원칙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기본적인 원리 혹은 형태소를 찾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 보니 직선이나 원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이 넘쳐나는 추상화를 그리게 된다.

이런 모더니즘 미술의 정신과 중요한 양식적(style) 특징들이 바우하우스를 통해 디자인으로 넘어오게 된다. '기능적인 것이 아름답다'는 기능주의, 전통적 조형 원리의 중시, 기하학적 단순성과 추상성, 양식적 통일성, 싫증나지 않도록 구체적인 비유나 상징을 가급적 억제하는 것 등이 디자인판(版)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쉽게 말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고 쉽게 싫증을 느끼지 않도록 단순하면서도 조형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디자인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에 임하는 작가들의 자세도 매우 진지했고 디자인 기간도 상대적으로 매우 길었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탄생한 바우하우스 디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모홀리 나기가 디자인한 파커 51 만년필이다.
▲ 모홀리 나기가 디자인한 파커 51만년필의 6가지 시리즈들. 1941~1948 ⓒ프레시안

1941년에 처음 생산된 이 파커 만년필은 1980년대에도 팔릴 정도로 수명이 길었다. 조형원칙에 충실하고 오랜 시간 다듬어진 이런 디자인은 열광적인 선풍을 일으키기는 힘들어도 꾸준히 사랑받는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이 바로 이런 것이었기에 형식주의가 강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바이블 노릇을 하고 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또 다른 사례로는 1920년대에 디자인된 브러이어의 의자 디자인을 들 수 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인 이 디자인은 지금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 바우하우스 참여작가인 브러이어의 철제의자(1925). 현재도 이와 같은 디자인이 생산되고 있다. ⓒ프레시안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 포스트 모던 디자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아름다움의 원칙이나 조형원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통적 배색법이나 조형기법을 중시하지 않고 탈기능주의가 강하다. 당연히 조화로움보다는 강렬한 느낌이 강해진다. 주(主)와 종(從)의 구분도 적어 정돈된 맛이 없지만 대신 다채롭다. 스타일의 일관성이 없어 서로 다른 두 개의 양식(style)이 한 디자인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를 어렵게 말하면 '이중 코드(dual code)'라고 한다. 형태가 해체된 듯한 모습인 경우도 적지 않다. 구체적인 비유나 상징도 많다. 쉽게 말해 포스트 모던 디자인은 부담없이 경쾌하게 유희하듯 하는 디자인이다.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같은 진지함이나 무게감은 부족한 대신 튀고 감칠맛이 난다. 감각적이어서 눈에 띄지만 싫증나기 쉽다.

포스트 모던한 문화 전반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적어도 디자인에서는 그렇다.

디자인스타일의 변화가 미술사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이 가는 부분은 주로 양식(스타일)에 한정된다. 마케팅의 맥락에서 움직이는 디자인에는 미술양식 변화의 관념적 배경들이 들어설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하여간 아래 사진처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들은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던 디자인"이라는 양극(兩極)척도 위에 포지셔닝 해볼 수 있다. 이렇게 해보면 스타일의 다양성이나 변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이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속에 암암리에 스며든 두 개념의 작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독일 연방미술관(좌).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기능성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전형이다. 우측의 두 건물은 해체된 형태, 두 양식의 공존, 탈 기능주의 등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다. ⓒ프레시안

▲ 절제, 단순성, 기능성, 수평수직의 단정한 형태를 보여주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의자, 편집디자인, 찻주전자 (좌). 구체적인 사물이나 스토리의 등장, 과장되거나 해체된 형태 등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의 의자, 포스터 디자인, 시계, 신발, 소파(우). ⓒ프레시안

바우하우스와 포스트 모던한 디자인이 주는 심미적 효과를 생각해보면 기업의 심벌마크처럼 장기간 사용해야 하는 디자인 분야에서는 모더니즘의 성격이 강하고 과자나 스낵류 포장 디자인에서는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을 해볼 수 있다. 크게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도 나름의 바우하우스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70년째 같은 디자인으로 팔리고 있는 '리츠' 크래커는 기존의 조형원리에 충실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 이상 같은 디자인으로 팔리고 있는 일본 '에비센(새우깡)'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우측의 어린이용 스낵 포장은 좌측 디자인보다는 자유롭고 파격적이면서 상품명도 길고 서술적이다.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 70년째 변하지 않고 판매되는 리즈 크래커는 주와 종이 분명하고 전통적 구도와 배색기법에 충실하다. 반면 우측의 과자는 여러 요소들이 서로 경쟁하며 주와 종이 분명하지 않은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강하다. 글자체도 손으로 자유롭게 쓴 듯 한 격식파괴가 있다. 중앙 좌측의 새우깡은 바우하우스 스타일에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 약간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시안

기업의 심벌마크에서도 같은 양상을 볼 수 있다. 아래 그림의 좌측 끝은 바우하우스 성격이 극단적으로 강한 경우이고 우측 끝은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강한 심벌마크다. 그 둘 사이에 여러 기업의 심벌마크를 놓아볼 수 있다. 가장 우측에 있는 동화은행 마크는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해체형(포스트 모던 스타일의 한 특징) 양식이 적용된 디자인이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
▲ 대우나 KBS의 디자인은 기하학적 단순성, 대칭, 중앙집중 등 형식주의적인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갖고 있다. LG나 프르덴셜 보험사의 마크에는 얼굴이나 산과 같은 구체적인 대상들이 등장하고 있어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고 국민은행의 별모양이나 동화은행의 수렵도는 선의 자유로움과 해체된 윤곽으로 보건데 포스트 모던한 성격이 매우 강하다. 타오르는 불을 형상화한 서울예대의 마크 역시 포스트 모던한 스타일이다. ⓒ프레시안

이처럼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유행의 변화 그리고 기업, 국가, 분야별 선호 디자인의 차이에는 나름의 흐름이 있다.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이라는 두 힘의 줄다리기가 다양한 스타일의 차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식의 흐름 말이다. 나와 상관없는 난해한 관념인 줄 알았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렇게 생활환경에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분류해 놓은 사례들은 엄격한 검증을 거친 것이 아니다. 필자가 임의로 분류해본 것일 뿐이다. 그래서 다소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바우하우스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설명도 도식적으로 단순화한 감이 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디자인사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유행 예측과 같은 실용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건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면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새로운 접근은 기초연구에서 공급된다. 앞에서 길게 설명한 바우하우스-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도 디자인 양식 변화측정과 분류를 위한 기초연구의 실용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될 수 있다. 우리 디자인계도 이런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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