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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이 결심 못하십니까?'

한반도브리핑<69> '장사되는 게임'마저 주저하는 미국

부시 대통령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가 합의되고, 남북 정상은 그 다음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하는 등 '북핵문제'와 한반도 전쟁상태의 해결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은 전에 보기 힘든 과감한 양보를 하면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동시발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반면, 미국은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미국은 북핵과 관계개선을 맞바꾸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정치상황에 따라 '면피용' 조치로 대응하고 있는 것인가?

북의 전략적 결단?

최근 북의 행보는 심상치 않다. 내친 김에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외교와 협상으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최대한 풀어보자는 것이다.

우선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 문제를 보자. 통상적으로 BDA에 묶여 있던 북의 돈이 미국과 러시아를 거쳐 북의 수중에 들어감으로써 이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북은 미국의 '행동'에 대응해 핵시설 동결이라는 '행동'을 취했고, 이것이 6자회담 이행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BDA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BDA에 묶여 있던 돈이 북의 수중에 돌아가기는 했지만, 북은 이 돈을 다른 은행에 넣거나 국제금융기구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미국의 금융제재 조치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당초 애국법을 발동하여 BDA를 돈세탁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했다. 북한 및 북한의 기업들과 금융거래를 하며, 미국 달러화 위조지폐를 통용시키는 등 돈세탁을 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 재무부의 조치에 따라 미국 금융기관은 BDA와의 금융거래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제재조치는 아직도 유효하다.

미국은 재무부의 금융제재 조치는 건드리지 않은 채 상업용 금융기관이 아니라 이 조치의 대상 밖에 있는 미 연방준비은행으로 BDA의 자금이 입출금되는 것을 허용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허용'이 아니라 금융제재 조치를 '적용'한 조치였다. 재무부는 금융제재 조치에 따라서 BDA와 미 은행의 거래를 금지한 채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북의 자금이 이전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BDA는 여전히 돈세탁 우려대상으로 남아있고, BDA와 돈세탁을 했다는 북 예금주에 대한 혐의는 여전히 살아 있으며, 이들이 해외은행에 입금할 경우 그 은행을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정치적 제재조치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이 조치는 미국이 북을 테러지원국 목록에서 제외하고 적성국 교역법의 적용을 중단하더라도 남는다. 애국법에 근거한 별도의 제재 조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BDA에 대한 조치를 철회하거나, 북 예금주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북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시설을 동결하는 등 1단계 이행조치의 의무를 이행하기 시작한 것은 주목할 만한 양보였다.

애당초 북은 미국이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 따라서 대북 적대관계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면 BDA조치를 철회하라는 것이었고, 이를 대북적대정책 전환의지의 시금석으로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제재조치 해제라는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고, 재무부의 금융제재에 따라 북의 자금을 이동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않고 핵시설 동결이라는 '행동'으로 들어갔다. 중대한 정치적 결단이었다.

남북관계의 전략적 대결단
▲ 2007 남북정상선언의 내용 대부분이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던 사안으로 채워진 것은 북한의 전략적인 결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북의 결단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다. 우선 선언의 제목 자체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다. 북이 항상 강조하는 반면 한국이 주저하는 안건인 통일은 '남북관계 발전'으로 물타기가 되었다. 반면 노무현 정권 대북정책의 기조인 평화와 번영이 그대로 제목에 반영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용의 대부분도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던 사안들이었다.

특히 '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문제이며, 6자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남북 간에는 논의하는 것조차 거부하던 북이 정상회담 선언문에서 9.19공동성명과 2.13합의를 언급하고, 이의 이행의지를 다시 확인한 것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 정치적 양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정전체제에 관한 문제도 한국이 정전협정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과는 논의 자체를 거부하던 북이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을 협력해 추진하기로 합의, 한국을 종전선언의 한 주체로 인정한 것도 커다란 변화다.

북의 입장에서 전략적 해군기지인 해주항을 경제특구 건설에 활용하고,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함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기로 한 것도 과감한 타협이라고 보인다. 구체적인 사항은 국방장관회담 등에서 정해지겠지만, 북이 이전에 제안했던 해상경계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그 이북 해역이라도 '특별지대'로 설치하는데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주항을 개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중 국방위원회 참모들과 상의한 후에야 수용을 밝힐 정도로 군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다.

북은 한국과의 관계에서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의 요구를 과감하게 받아들이며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적 대결단을 내린 듯한 모습이다.

조심스러운 미국

북한이 보여주는 이러한 '통 큰 정치'의 모습에 비해 미국의 행보는 아직까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물론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이라는 큰 그림을 하노이와 시드니에서 제시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미국이 취한 조치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남북교류와 대화를 지지한다고 하면서도 '북핵문제의 선결'이라는 전제조건은 빠뜨리지 않는다.

미국은 테러지원국 및 적성국교역법 해제라는 행정부의 정치적 권한을 행사하는 대신 상징적인 조치들을 취하는 편법을 구사하고 있다. 즉 6자회담이 진행 중이던 9월 28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2500만 달러 상당의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것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하는 방안과 미국 내 민간단체들을 통해 병원용 발전기와 배전기 등 다른 인도적 품목도 지원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규모는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2.13합의와 10.3합의에 따라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긍정적이다.

또 미국은 북의 태권도 시범단이 미국을 방문해 수차례 공연하는 것을 허용했고, 뉴욕 필하모니가 북한을 방문해 공연하는 것도 추진 중이다. 북미간 오래된 적대관계를 생각할 때 이러한 문화적 교류사업도 적대상태를 눈 녹듯 하는데 기여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문화적 조치들에 비해 정치적 조치를 취하는 데는 훨씬 더 조심스럽다. 이번 10.3합의문 중 미국의 상응조치 부분은 미국의 조심성을 잘 보여준다.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또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시키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나간다는 공약을 상기하면서 미국은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통해 도달한 컨센서스에 기초해 북한의 조치들과 병렬적으로 북한에 대한 공약을 완수할 것이다."

꼬이고 꼬인 조문의 복잡성은 북한의 의무를 규정한 조문과 엄청난 대비를 이룬다.

"영변의 5㎿ 실험용 원자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및 핵 연료봉 제조시설의 불능화는 2007년 12월 31일까지 완료될 것이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요리조리 빠져나갈 수 있는 장치들을 갖춘 복잡한 조문을 삽입하고도 워싱턴에 와서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 등이 배석한 회의에 직접 회의결과를 설명하고서야 재가를 받을 수 있었다.
▲ 부시 대통령은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인가 아니면 그저 '면피용' 조치에만 그칠 것인가 ⓒ로이터=뉴시스

물론 테러지원국 제외는 일본을 배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견 이해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외교적 고려가 필요 없는 적성국 교역법 문제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 조치들은 의회의 동의나 비준이 필요없다는 점에서 입법부에 대한 고려도 큰 이유가 될 수 없다.

북의 불능화 조치와 미국의 정치적 조치 간의 비대칭성을 볼 때도 그렇다. 북은 물리적인 조치를 취해서 핵시설을 불능화해야 하고, 불능화 이후에는 설사 마음이 바뀌어서 핵시설을 재가동하려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려야 원상복귀가 가능하다. 합의를 위반하고 몰래 재가동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미국의 조치는 대통령이 문서에 서명하는 상징적 조치에 불과하다. 북이 합의를 위반한다면, 혹은 다른 정치적 조건이 형성된다면 다시 대통령이 북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원상복귀가 가능하다.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장사가 되는'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주저하고 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과 북의 불능화 이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이라도 한다면 이렇게 물어 볼만도 하다.

"부시 대통령이 결심 못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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