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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IT기술을 개발하는 이유

[과학기술로 북한읽기] 북한의 IT기술 발전은 생산의 자동화, 정보화를 위한 것

지난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평양의 3대혁명전시관에서 '제23차 전국 프로그람 경연 및 전시회'가 열렸다. 이 경연은 1990년 12월에 처음 시작되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된 컴퓨터 프로그램 분야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행사이다. 경연은 '조작체계, 인공지능, 과학기술 설계 및 계산분과' 등 18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고, '영-조, 중-조 기계번역 프로그람 경연, 콤퓨터 비루스 왁찐 프로그람경연'도 별도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모두 1300여건의 프로그람이 출품되었다. 제1회 경연 당시 출품 건수가 440건 가량이었는데 경제가 급격히 무너지던 1990년대 중반에는 150건까지 줄었다. 출품건수가 제1회 경연 당시보다 많아진 것은 북한 경제가 회복기로 접어든 이후인 2002년부터였다.

북한 언론에서 '제23차 전국 프로그람 경연 및 전시회'에 출품된 프로그램 목록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특등) 김일성 종합대학의 조선어문자인식프로그람 <룡남산>
김일성 종합대학의 영상회의체계 <락원>
국가과학원 공업정보연구중심의 순천화학련합기업소 통합자동화체계
국가과학원의 직결조선어련속필기인식프로그람
인민대학습당의 번역공정지원체계
김책공업종합대학의 사료종합분석프로그람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의 5차원피복설계프로그람
전자공업성 전자자동화설계연구소의 발전소콤퓨터화조종프로그람
평양광명정보기술사와 국가과학원 수학연구소의 금융IC카드결제체계
강계고려약가공공장의 엑스생산공정콤퓨터조종체계
열린형 CNC체계 프로그람
범용수학계산도구 <풀이샘>
금속공업성과 전력공업성 등의 공작기계론리조종장치, 전기설비온도측정장치

이번 출품 목록을 잘 살펴보면 단순히 컴퓨터를 활용하여 가동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출품된 것이 아니라 생산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즉 생산 자동화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이들 프로그램 중 3분의 1 이상은 생산현장의 여러 부문에서 이미 이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 언론에서도 경제의 자동화에 도움이 되는 요소와 장치가 이전보다 2배 이상 출품되었다고 소개하였다.

북한의 IT기술은 '생산 자동화, 정보화'를 위한 것

북한의 IT수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석은 경제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이 소프트웨어뿐이기 때문에 북한이 IT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그래서 당시 주목했던 프로그램도 바둑이나 음성인식, VR(가상현실) 정도였다. 이는 소프트웨어가 원료나 연료 등 물질적 투입물이 필요 없고 프로그램을 작성할 사람(인력)과 성능 낮은 컴퓨터 한 두 대만 있으면 언제든 개발 가능하다는 측면에 착안한 단순한 분석이었다.

물론 이런 측면도 있었겠지만 실제 북한의 IT기술 발전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상품 생산을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실제 목표는 생산의 자동화, 정보화를 위한 것이었다. 생산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을 빠르게 처리하여 인간의 인식능력, 판단능력을 뛰어넘는 생산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추구가 최근에 와서 성과를 내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CNC공작기계 생산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각이나 조작 및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밀한 측정 센서와 구동 장치, 그리고 이들을 제어하는 컴퓨터 시스템(콘트롤러)으로 공업활동의 핵심인 기계를 생산하는 기술이 바로 CNC공작기계 생산기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렇게 개발된 정보처리기술과 제어기술을 다른 작업에 적용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CNC기술은 생산 활동의 자동화, 정보화를 위한 필수기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생산활 동의 변화를 'CNC화(化)'라고 부른다.(생산설비를 새것으로 바꾸고 특히 컨베이어벨트 장치를 도입하는 것을 일컫는 '현대화'와는 다른 것이다.)

1961년 북한 최초의 컴퓨터 제작

북한에서 IT기술이 단순한 소프트웨어 생산기술이 아니라 생산 자동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북한 IT역사의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났다.

▲ 북한이 지난 2011년 공개한 컴퓨터. 조선중앙TV는 북한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100% 자체 기술로 노트북컴퓨터 3종을 개발했다며 해당 컴퓨터를 공개했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북한에서 컴퓨터를 처음으로 생산한 것은 1961년이었다. 당시 과학원 물리수학연구소 계산수학연구실은 1961년 9월에 열린 4차 당대회 개최시기에 맞추어 북 최초의 컴퓨터,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만들었다. 당시 제작된 컴퓨터는 1세대에서 2세대 컴퓨터로 넘어가는 단계에 해당한 것으로 <입출구 장치> <연산정치> <조종장치> <기억장치> <전원장치>라는 5개의 장치로 구성되었다. 500여 개의 진공관과 반도체를 함께 사용하여 1024개의 숫자를 기억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서양에서도 1950년대 말부터 컴퓨터에 반도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북한의 컴퓨터연구 역사는 상당히 빠른 편이라 할 수 있다.

만일 1961년에 첫 컴퓨터를 조립하고 말았다면 이는 4차 당대회를 위한 쇼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회가 끝난 1962년부터 전국 10여 곳에서 4~5일 길이의 '수리운영학 강습회'가 열렸고 이 강습회에서는 생산 활동에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넘어 프로그램 제작 방법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었다.

1961년부터 기술혁명을 핵심 목표로 내 건 1차 7개년계획이 시행되고 있었기에 경제발전 속도를 빠르게 만들고 빨라진 경제발전 속도에 맞추어 정보처리 능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컴퓨터(당시에는 전자계산기) 관련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맥락에서 강조되었다. 당시 북한 지도부는 이를 '인민 경제의 부분적 자동화를 거쳐 종합적 자동화'를 실행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제작 과정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를 제작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 것은 1959년부터였다. 이는 1957년부터 시행된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1957-1966)'을 전면 수정하면서 확정된 것이었다. 생산현장에 대한 과학기술 지원활동이 더 필요했지만 당시 북 지도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자노선을 추구하겠다고 결정하였기 때문에 1957년 후반부터 1958년까지 이전의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였던 것이다. 특히 1958년부터는 현지 연구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원 성원들이 생산현장으로 투입되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기 때문에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발전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높아진 상태에서 새로운 계획이 마련되었다. 기술혁신, 기술혁명은 1차 5개년계획에 뒤이어 1961년부터 시작된 1차 7개년계획의 핵심 목표로 제기되었는데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단순한 선전, 선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처럼 실질적인 차원의 일이었다.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기술혁신, 기술혁명을 위한 여러 가지 계획들이 상당히 구체적인 수준에서 진행되었고 일부는 실제 생산에 도입되어 성과를 내고 있었음을 많은 북한 연구자들이 간과하고 있다.

1959년 새롭게 개정된 '과학발전 10개년 전망계획'에 전자계산기 제작 계획이 포함되었고 이를 위해 과학원 산하 물리수학연구소에서는 '계산수학 그루빠[그룹]'(이후 '계산수학연구실'로 정규 조직화되었다)라는 특별 연구 집단을 꾸리고 1959년 8월까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웠다. 실행 계획에는 전자계산기의 제작 및 운영에 대한 계획뿐만 아니라 이 부문의 기성 간부가 없는 실정을 고려하여 필요한 수의 조수와 부수들을 배치하여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전자계산기에 들어갈 반도체의 연구와 생산을 위한 '반도체 연구실'도 새롭게 꾸려졌다. 이와 동시에 과학원 산하 공학연구소에 생산자동화 사업을 위한 '자동화 연구실'(이후 '자동화 및 기계화 연구소'로 분리되었다)이 꾸려졌고 이곳에 우수한 실력의 대학졸업생들을 우선적으로 보냈다. 전자계산기 제작이 생산의 자동화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한 최초의 전자계산기를 실제로 조립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6월부터였다. 4개월만인 1961년 9월에 조립이 완료되고 연말까지 약 3개월 간 시운전이 진행되었다. 이 기간 동안 계산수학연구실에서는 운영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관련 지식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지식보급사업을 전개하였다. 11월에는 '과학적 사업 조직방법으로서의 수리운영학'이라는 책도 출판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이후 교통성, 평양 전기공장, 대안 전기공장, 희천 기계공장, 청산리 농업협동조합 등 생산현장에 직접 나가 실지 도입하면서 현실 적응력 및 대응력도 키워나갔다.

'9.11형 만능 전자계산기' 제작 경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승, 발전되어 1969년에는 수자형 만능전자계산기 '전진-5500'이 제작, 완성되었다. 또한 관련 연구자들은 1970년대 들어 프랑스로 유학까지 보내졌다. 유학 갔다 돌아온 관련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1980년대 초에 북은 중국으로부터 어렵게 구한 유닉스 컴퓨터를 역설계방식으로 자체적으로 제작, 생산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곧바로 유행하기 시작한 PC로 인해 이는 상품화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만일 PC가 조금만 더 늦게 유행했더라면 북에서 제작한 유닉스가 전 세계로 수출될 수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CNC공작기계의 원형, '구성-105호', '구성-10호'

오늘날 경제발전 원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IT기술이나 CNC기술의 출발은 1988년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북한 지도부는 1988년 11월에 '제6기 제14차 전원회의'를 개최하고 "공작기계공업과 전자, 자동화 공업발전에서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결정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이러한 사업을 전담할 '전자 자동화 공업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분야 기술개발을 담당할 과학원 산하 '전자, 자동화과학 분원'을 설치하였다. 1986년 시제품으로 생산된 북한 최초의 NC공작기계인 '구성-105호'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회의였다. '구성기계공장'이 포함된 '4월3일공장'에 '구성-105호'를 계열생산하기 위한 분공장이 설치되었다. 1995년 김정일이 처음 보았다고 한 CNC공작기계는 '구성-105호'를 토대로 발전시킨 '구성-10호 만능선반(4축)'이었다.

북한 과학기술 전문가이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강호제 박사의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일반적으로 북한 연구나 북한에 대한 보도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내용은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의 움직임과 그 의도를 좀 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로 북한 읽기' 에서는 간과하기 쉬운 북한 과학기술에 대한 이슈를 제대로 짚어보고, 이를 통해 북한의 움직임을 새롭게 해석해보려 합니다.

강호제 박사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북한 과학기술정책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석사학위논문으로 현대북한연구 제1회 논문상, 박사학위논문으로 북한연구학회 신진학자 학술상을 받았습니다.

이밖에 강 박사는 월간 <민족 21>에서 '에피소드로 본 북한 과학 기술사'를 연재했고,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주간 웹진 칼럼을 3년가량 연재했습니다. 강호제 박사는 현재 북한 과학기술을 통한 북한 역사 해석,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 강호제 박사가 운영하는 북한 과학기술사 관련 홈페이지 바로가기
* 북한과학기술네트워크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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