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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눈으로 보지만 온몸으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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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눈으로 보지만 온몸으로 느낀다

[지상현의 Homo designans·12] 디자인과 공감각(共感覺)

'공감각(共感覺)'

미국의 신경정신과의사 치토윅은 옆집에 이사 온 화가 마이클의 초대를 받았다. 조금 일찍 도착한 치토윅은 부엌에서 닭요리를 준비 중인 마이클에게 다가가는 순간 "이 닭은 점(點)과 각(角)이 너무 많아"라는 희한한 독백을 듣게 된다.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묻는 치토윅에게 마이클은 병리적 현상이라고 생각해 감추어 온 비밀을 고백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특정한 맛을 느낄 때 동시에 특정한 형태를 보고, 반대로 특정한 형태에서 맛을 느끼곤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짠 맛을 느끼면 갑자기 검은 점을 보게 되는 식이다.

이런 현상을 '공감각(共感覺)'이라고 한다. 치토윅은 이때부터 10여년에 걸쳐 공감각 연구를 시작한다. 결론은 마이클이 결코 병자가 아니며 누구나 경험하는 내용을 남보다 더 강하고 선명하게 느낀다는 것뿐이었다.

미국에만 100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마이클과 같은 강한 공감각자라고 하니 인구대비 비율로 치면 우리나라에도 약 15만 명 정도의 강한 공감각자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공감각은 한 감각기를 통해 다른 감각기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컨대 시각을 통해 미각이나 청각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붉은 색 방에 들어가면 파란 색 방보다 더 덥게 느낀다거나 검은 가방이 흰 가방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약한 공감각적 경험이다. 마이클은 이보다 더 강렬한 공감각적 경험을 하는 것뿐이다. 공감각적 경험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약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마이클과 같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다.

공감각 현상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괴테같은 문호는 음의 높이에 따라 색감을 경험하게 하는 컬러 하프시코드를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고 알려진다. 그가 개발했다는 하프시코드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볼 수가 없지만, 20세기 초 러시아의 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가 개발한 컬러 하프시코드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아래 그림이 그것으로 건반을 누르면 그 음에 따라 특정한 색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식이다.
▲ '프로메테우스'로 유명한 러시아의 작곡가 스트라빈스키가 만든 칼라 하프시코드. 건반의 음 높이에 따라 특정색의 전구에 불이 들어 온다.

인간은 왜 이런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되는 걸까? 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과거에는 학습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했었다. 예컨대 뜨거운 불과 태양의 색이 붉다는 경험 때문에 사람들은 붉은 색을 보면 온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뇌의 정보처리에 혼선을 가져오는 어떤 신경학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뇌의 시상이라는 부위에는 눈, 귀, 혀 등의 감각기에서 오는 각종 정보들이 모이는데, 이곳에서 신경 통로 간의 혼선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과거의 학습이론과 신경생리학적 이론이 결합된 설명도 있다. 예컨대 우리가 본 대상의 색채나 형태와 같은 특징들은 독립된 시각 통로로 전달되지만 질감, 리듬감과 같은 다른 특징들은 다른 감각통로와 함께 통합되어 처리된다는 것이다.

이를 쉽게 설명해주는 사례가 아래 그림이다. 두 그림 각각에 '키키', '부부'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측그림에 '키키'를, 우측에 부부를 붙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왜 그런지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위 이론의 설명에 따르면 시각은 삐죽삐죽하고 둥그스런 형태에 대한 정보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이 꺾여진 모양에서 어떤 리듬감에 대한 정보도 추출하는데 이 정보는 다른 감각기들과 함께 사용되는 통합 통로에서 처리된다. 그리고 이 통합통로에서는 '키키' 같은 파열음을 발음할 때의 빠른 리듬감, '부부'를 발음 할 때의 조금 느리고 부드러운 리듬감도 동시에 처리된다. 그래서 통합된 통로에서 처리되는 정보의 성질이 동일하므로 이를 매개로 서로 상관없던 좌측형태와 '키키', 우측 형태와 '부부'라는 이름이 대응하게 된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런 공감각적 정보처리 특성이 언어의 출발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어느 관점이 옳은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아마 모두 어느 정도의 진실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이런 사실을 통해 디자이너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디자이너가 결코 사물의 시각적 속성에만 관심을 두어서는 제대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눈으로 느끼는 맛

우리는 눈을 통해 맛을 느끼기도 하고 소리를 듣기도 한다. 좀 멋을 부려 말한다면 '온몸으로 느낀다고 할 수 있다. 온몸으로 느낀 감각경험들은 생각 외로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예컨대 미국의 색채심리학자 파브르의 연구결과는 색채의 공감각적 효과가 구체적인 제품군으로 연결될 수 있을 정도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에서 보는 색채구성들은 각기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맛, 단맛, 씁쓸한 맛, 약한 알콜 맛, 짭짜름한 맛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아래 자료는 더 구체적으로 특정 제품군과 연결되어 있다. 같은 시계방향으로 일반세제, 코코아, 강력세제, 치약, 유기농산물, 오렌지제품, 화장품, 쥐약의 이미지를 주고 있다. 이런 공감각적 효과에 대한 지식은 식음료의 포장디자인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의 기초적인 범주를 알려 주는 데에만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다. 커피에서도 카페인이 많은 진한 맛, 약한 맛 등과 같이 등급을 표현하는 등 여러 가지로 활용될 수 있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신맛, 단맛, 씁쓸한 맛, 약한 알콜 맛, 짭짜름한 맛(J. P., Fabre)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일반세제, 코코아, 강력세제, 치약, 유기농산물, 오렌지제품, 화장품, 쥐약

아래 그림은 필자의 강의 시간에 만든 학생의 작품이다. 기존의 식품 포장디자인을 아무거나 고른 뒤 그 디자인을 수정해 임의의 등급을 표현하라는 것이 과제였다. 한 학생이 딸기쨈의 당도를 세 등급으로 나눈 뒤 기존의 것보다 덜 단맛과 더 단맛의 디자인을 만들었다. 좌측이 덜 단맛이고 우측이 매우 단 맛이다. 물론 어떤 경험적 데이터도 없이 직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공감각이라는 것을 의식한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당도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색채나 형태의 공감각적 효과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보는 이의 마음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쉽게 말해 서로 다른 공감각적 효과를 갖고 있는 색채나 형태가 한 디자인 속에 모두 있다고 하자.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그 해답의 일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유명한 사이나 음료의 사례다.
▲ 좌측 그림이 최초의 사이나 광고 디자인이다. 맨 우측 것은 필자가 음료의 색상이 달랐다면 어땠을 까 하는 생각으로 만들어 본 것이다.

10여년 전 독일에서 발매됐던 '사이나'라는 음료의 론칭 광고는 처음 왼쪽에 보이는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었다. 처음 의도한 것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덥고 건조한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색채의 공감각적 효과에 주목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사전 조사를 통해 이 광고가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전혀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단순히 덥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전달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료의 색상이 더운 느낌을 주는 고동색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이다. 시원한 것을 마시고 싶다는 욕구는 덥고 건조한 느낌과 시원한 느낌이 동시에 제시되어 둘 사이에 대비가 이루어질 때, 전문적으로 말하면 두 느낌 사이의 긴장이 형성될 때 생겨나는 것이다.

음료광고에서 더워 땀을 흘리는 모델이 시원한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은 이런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다. 덥다는 느낌과 마실 때의 시원한 느낌 간의 강한 대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 시원한 액체의 느낌을 주기 위해 수정된 디자인이 중앙의 것이다. 음료컵 좌측 하단에 시원한 느낌을 주는 녹색 과일을 배치했다. 건조함과 더운 느낌을 주는 황색과 시원함과 액체의 느낌을 주는 녹색의 대비를 통해 두 공감각적 효과간의 긴장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수정된 광고는 사전조사를 통해 마시고 싶다는 욕구를 만족할 만하게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대로 광고되었다고 한다.

맨 우측 그림은 만약 음료의 색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녹색이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의 산물인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시각과 청각

지금까지 시각을 통한 미각적 경험만 논의했지만 앞서 스트라빈스키의 컬러 하프시코드에서 보듯 시각과 청각 사이에도 깊은 연관이 있으며 심지어 시각을 통해 촉각을 경험하고 색채지각을 통해 운동감을 경험할 수도 있다. 예컨대 영국의 디자이너 로이스 로리는 촉감을 이용해 색채점자를 개발했는데 선천적인 맹인들조차 빨강의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 청색의 차가우면서 이지적인 느낌 등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자의 요철이 주는 촉감과 색채 사이에 공감각적 공통점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림의 좌측에 있는 것이 새로 개발된 점자인데 검은 부분이 튀어나온 부분이다. 맨 위에 있는 청색을 보면 작은 사각형들이 볼록한 큰 직사각형 안에 파여 있는 셈이다. 청색의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위해 사각형을 사용했고 뒤로 물러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작은 음각 사각형을 사용 한 것으로 보인다.
▲ 영국의 로이스 로리(Lois Lawrie)가 영국 정보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한 촉각을 이용한 색채점자.

색채와 운동감

이것뿐이 아니다. 형태라면 몰라도 색채는 운동감과 별 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컨대 아래 그림에서처럼 상하의를 동일한 색상으로 입은 것보다 밝기 차이를 준 콤비로 입는 경우 캐주얼해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캐주얼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활동적이고 그래서 편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같은 사람도 콤비로 입으면 더 활동적으로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활동적이라는 말과 의미론적으로 서로 통하는 말 가운데에는 '경쾌하다', "젊어 보인다", '동적이다' 등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밝기대비의 정도에 따라 '역동적이다', '경쾌하다', "활달해 보인다", "젊어 보인다" 등의 다양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고 그 바탕에는 운동감이라는 공감각적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같은 시각적 경험이지만 운동감과 색감은 서로 다른 정보처리 통로를 통해 처리된다. 그래서 이것 역시 색채의 밝기가 주는 공감각적 효과라 할 수 있다. 이 효과는 다시 돌아 청각적 리듬감으로 연결된다. 그레이브스라는 색채학자는 밝기대비가 큰 배색은 '장조 배색'이라 하고 밝기대비가 작은 배색은 '단조 배색'이라 부르는데 이는 밝기대비가 크면 장조 음악처럼 경쾌하고 신나는 느낌을 주고 작으면 느리고 처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 신선한 느낌을 주어야할 식당에서 스넥류 음식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구수한 닭 튀김 냄새 대신 화장품 냄새가 날 것 같은 디자인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시각을 통해 미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 경험을 한다. 만약 디자이너가 이 점을 소홀히 할 경우 우리는 매우 불편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얼마 전 필자는 모 브랜드의 고춧가루를 샀다가 되바꾸는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 보통 맛인 줄 알았는데 매운 맛을 들고 온 것이다. 치킨집을 팬시용품이나 화장품 점으로 오인해 엉뚱한 곳을 헤맨 기억도 있다. 이런 불편함은 업체의 입장에서 보면 더 심각하다. 신선한 음식을 파는 곳의 디자인이 라면이나 튀김음식집 같은 느낌을 준다면 판매액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만 온몸으로 느낀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만 온몸으로 느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디자이너들에게는 감각을 총체적으로 보는 시각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색감, 형태, 구도 등은 세련되었지만 전하려는 메시지와 유리된 디자인, 상품이나 업종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해주지 못하는 디자인이 가득해지는 것 같다. 지난번에 벤치 이야기를 했지만 공감각이라는 맥락에서 보아도 역시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다.

그간 우리 디자인계가 추구해온 것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그저 세련미뿐이었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편안한 안식을 주어야 할 공간을 고급스럽고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주눅 드는 장소로 만들고 신선한 맛이나 구수한 냄새를 느껴야할 디자인에서 화장품 냄새가 나게 하는 일이 많았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워야할 대학에 경쾌하고 딱딱한 디자인의 심볼마크를 사용하는 것도 같은 경우다. 한국의 디자인이 이런 '멋부림'에만 치중해 제대로 된 감각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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