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반해 이제까지 세계 질서를 이끌어온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약화는 점점 표면화되고 있다. 주택주식시장 폭락을 시작점으로 그 여파는 전 세계로 전파될 위험성이 크다고 외국 주요 언론들은 경고하고 있다.
미국 수출을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아 온 동아시아에게 미 달러 하락은 미국의 소비능력 저하를 의미하고, 이어지는 수출 격감은 동아시아 지역에도 심각한 불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세계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인도나 중국이 현재 수준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면 지역 내에 불황이 닥치더라도 경기는 회복될 수 있다는 측면도 제기된다. 하지만 인도나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소비시장으로 성장하기까지 수십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과도한 달러 의존상태에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역금융협력 구상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문제이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세계 경제 여건 속에서 현재 이 구상의 구체적인 실행은 매우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시아지역 금융협력을 위한 구상들과 그 한계
올해 2007년은 아시아 금융위기 10년째이고, 동시에 동아시아 아세안(ASEAN)+3(한.중.일)협력 구도가 형성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동아시아지역의 금융 협력 구도가 없어 발생한 데 따른 사건으로 공감하면서, 아세안+3은 주로 금융부문 협력을 염두에 두고 왔다. 동아시아 대다수 국가들은 1997년 금융위기 때문에 많든 적든 영향을 받았다. 태국의 바트 폭락을 시작으로 주변 국가의 통화폭락으로까지 이어진 금융 위기는 지역 국가들이 국가금융의 안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역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나누게 된 계기였다.
유럽 등 지역통합의 경험을 보더라도 우선 지역 내 무역이 촉진되고 마지막 높은 수준으로 화폐통합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거쳤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의 경우는 지역통합과정에서 보통은 마지막 단계에 올 금융과 화폐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발생 당시 금융부문의 지역협력체가 없어 타격을 입은 많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금 대출에 엄한 조건을 들이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국가들은 부채 때문에 몇 년간 고통을 겪었다.
이와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해 1999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2회 아세안+3 정상회담에서 아시아지역의 포괄적 금융협력 추진을 합의했다. 2000년 5월에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상회의에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역내금융위기 예방 시스템)'를 채택했다.
이 CMI에는 외화가 부족한 나라의 경우 양국 간에 서로 자금을 융통하는 통화스왑약정이 담겨있다. 아세안 각국은 이미 2억 달러의 스왑협정을 맺고 있었지만, CMI에는 이 수준을 10억 달러로 확대해 2000년 10월부터 발효했다. 2003년에는 양국 간 협정이 모두 체결되어 그 총액은 365억 달러 규모였다. 지난 5월 일본 교토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는 통화스왑협정의 총액을 800억 달러로 늘리고, 다자간 협력구도로 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동아시아 지역금융협력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구상은 '아시아채권시장'의 창설이다. 2003년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는 아시아 통화위기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아시아 지역의 민간저축을 역내 경제발전에 필요한 중장기 투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아시아채권시장육성 이니시어티브'를 채택했다. 이것은 미국 채권으로의 투자가 아니라 지역 외부로 유출되어 온 자금을 지역 내 채권투자로 전환할 구상이다. 또한 아시아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 들어온 단기적 투기자본 흐름을 지역적으로 감시하는 목적도 있다.
동아시아는 경상수지 흑자로 자국 내 외환보유고를 늘려 전 세계 외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최근 한국은 2553억 달러, 중국은 세계 1위로 1조 2000억 달러, 일본은 중국 다음으로 많은 9111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흑자를 낸 동아시아 국가들은 지역내부가 아니라 주로 미국 채권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금을 지역 외부로 유출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지역 내 채권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해 효율적으로 장기자금공급 메커니즘을 정비하는 것은 동아시아 내 자본거래에서 미국 달러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의 지역금융협력을 완성시킬 아시아 공동통화의 창출이다. 원래 '아시아통화기금' 구상은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의해 추진되어 왔지만, 현재는 아세아+3가 주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유로와 같은 지폐보다도 아시아 여러 국가 통화를 가중 평균화한 새로운 지표를 사용하고, 이에 각국 통화 시세를 연동하는 구상이 제안되고 있다.
이처럼 지역금융협력을 위한 여러 시안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역 국가끼리 외화를 서로 융통하는 구도를 확산시킨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하나의 성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지역 국가끼리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라는 사후 대처법에 그쳐 금융위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달러가 불안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아직도 기축통화를 달러에서 아시아 공동통화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앞길은 불안하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위해 지역금융협력은 필수
지난 9월 5일 유엔무역개발협의회는 "TRADE AND DEVELOPMENT REPORT 2007"라는 주제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개발도상국간의 지역협력체가 국가발전에도 기여하고, 글로벌 경제 안에서 생기는 불평등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지역금융협력 체계는 가난한 국가를 금융위기로부터 구해주는 보호망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의미 있다. 거액의 투기자본 유입으로 인해 환시세나 세계 경상수지는 혼란을 겪었기 때문에 관세나 수출보조금과 같은 환시세 변화를 관리할 다국적 체계 형성을 장려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개발도상국이 지역금융협력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1990년대부터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단기 투기 자본과 같은 국제 민간 자본의 구성이나 국제금융시장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개발도상국이 지속가능한 국가경제를 이끌어 갈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개발도상국의 지역금융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으며, 우선 지역개발은행이나 지역자본시장을 통한 장기자금조달 체계 구축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지역개발은행은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카리브, 서아시아, 동아시아, 아랍 등에 존재한다.
이 분야에 있어서 중남미가 선구적이다. 1969년 중미국가들은 국제수지 불균형에 대처할 목적으로 '중미통화안정기금(CAMSF)'을 설립하여 IMF체제를 보완해왔다. 하지만 참여 국가 중앙은행들의 지불능력에 문제가 생겨 이 기금은 1980년대에 일시 중단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새로운 시도가 최근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나 볼리비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을 중심으로 설립된 '남미은행'이다. 남미은행은 지역통합을 위한 기초 설비 정비에 대한 자금마련과 제공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금융협력체 완성의 가장 마지막 단계를 흔히 지역외환시세의 창출과 통화동맹의 구축이라고 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지역은 단연 아프리카이다.
'공동통화지역(CMA)'은 레소토와 남아프리카 그리고 스와질란드의 3자간 협력체이고, 1974년부터 발효되었다.(1992년에 나미비아도 가입) 1920년대부터 남아프리카의 통화 랜드(rand)가 레소토와 스와질란드의 법정 화폐로 기능하고 있어 사실상 공식적 지역금융협력체인 CMA 설립의 뒷받침이 되었다.
그러므로 CMA는 남아프리카가 중심으로 연결된 '허브앤스포크(Hub and Spoke)'형태를 갖추어 랜드가 고정 통화로서 기능하며 공동의 통화정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물론 랜드 하락이나 임금 상승 등 문제는 항상 따라다니지만 공동통화지역 국가들은 아프리카에서도 높은 성장을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개발도상국의 지역금융협력 사례를 정리한 이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개발도상국은 개발은행이나 금융시장 등 지역금융기관을 만들어 장기자금조달 시스템을 마련해서 지역 국가의 통화 이용이나 지역공동통화의 창출로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사람 당 GDP가 3만 7000달러를 넘는 일본과 겨우 GDP 300달러에 도달한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 지역은 경제격차가 엄청나게 크다. 그래서 동아시아를 개발도상국 및 선진국 어느 쪽의 집합체로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달러에 의존하고 있는 현 체계를 재고해 지역금융협력이 활발하게 이루고 있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의 경험 사례에서 배울 점이 많다.
지역공동통화의 창출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중남미와 아프리카 이외에도 페르시아 연안 국가들의 지역협력기구인 걸프협력회의(GCC)도 추진하고 있다. 바로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석유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전 세계의 다각적인 지역통화의 움직임을 보아도 동아시아의 지역금융협력은 꼭 실행되어야할 과제인 것이다. 망설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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