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에 숭실대학교에서 철학연구회와 한국정치사상학회가 연합해서 주최한 학술대회 <대통령직의 위기와 유목적 정치질서>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노무현 대통령의 독특한 리더십을 거론한다면 대개 "위기"라든지 "상실" 따위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와 같은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 균형을 잡아보려고 했다.
논문은 우선 인물평이라는 가치개입적인 작업이 학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여지는 어디에 있는가를 길게 논의한 다음,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해 비판론과 옹호론은 각각 무엇인지를 살피고 나서 내 입장은 옹호론 쪽임을 밝혔다. 그러나 비판 또는 옹호라는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정파적 균열구도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옹호론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식의 글은 단지 내 개인적인 정치성향을 선전하는 데에 그칠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대신에 오크쇼트(Oakeshott)의 문구를 빌려 "교과서 정치"의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즉, 노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에 대해서 교과서 정치라는 비판이 가능하지만, 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현재 우리 사회의 정치세력 대부분이 선험주의 정치의식에 빠져 있어서 정치권력의 파편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위의 요약에서도 드러나듯이 내가 쓴 논문은 매우 난삽한 주제를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다루어 일반 독자가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 못된다. 단지 노 대통령의 언행을 평가한다는 점 때문에 기자들 중에는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던 모양이다. 논문 안에서 노 대통령의 언행을 직접 거론하는 대목은 세 부분 중 중간 부분이다. 비판자들은 "막말, 미숙함, 복수심"이라고 표현하면서 그의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의 공표, 임전태세 등을 문제 삼지만, 옹호론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들은 각각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로 이해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했다. 나아가 나는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의 언행을 "막말, 미숙함, 복수심"보다는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로 인식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동아일보는 9월 10일자에서 이 학술회의 개최소식을 알리면서 논문 몇 편의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했는데, 내가 "정제되지 않은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의 공표, 언제든 투쟁을 꺼리지 않는 임전태세"라는 구도로 대통령의 언행을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9월 15일 <노 대통령 언행 분석해보니....>라는 기사를 내보냈는데, 마찬가지로 내가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 임전태세"라는 세 가지 요소로 분석했다고 썼다. 이런 요약은 쿠키뉴스 16일자 <노 대통령 화법 분석해보니...>라는 기사에서도 반복되었다. 이 기사들은 15일 저녁부터 포털사이트에 뜨기 시작해서, 16일 낮 한때는 메인 화면 꼭대기 근처까지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나중에 직접 확인해 본 바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퍼가서 블로그에 올려놓았고 전북일보를 비롯한 여러 지방신문에서도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덕분에 내 이름이 널리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논문의 내용과는 정반대의 인상이 세상에 퍼져버린 것 같다.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내 평가는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로 보아야 한다는 쪽이다. 군데군데에서 그런 내 입장을 명시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정치성향일 뿐이기 때문에 논문의 주제로 삼지는 않았다. 대신 적어도 "막말, 미숙함, 복수심"으로 보는 입장과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로 보는 입장이 정파적 균열과 맞물려 대칭된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강조해서 주장했다. 논문의 중심 주제가 누구 편을 드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선험주의 정치의식을 부각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기사는 주최 측에서 내게 사전에 요청한 논문 요지에 근거한 것인데,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 임전태세"를 문제 삼는 것이 곧 논문의 시각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라는 항목은 아예 생략해버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묻혀버리고 엉뚱한 방향의 인상이 전달된 셈이지만,
요지문의 간략한 표현 때문에 발생한 뒤틀림이라고 볼 소지가 많기 때문에 동아일보에게 불순한 의도나 부주의의 혐의를 걸 수는 없다. 그러나 연합뉴스의 기사는 명백히 논문 전체를 취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이지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잘못 읽은 데서 말미암은 왜곡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정직, 실험정신, 원칙주의"로 평가할 수 있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무시해버림으로써, 내가 그 입장을 취한다는 점은 물론이고 애당초 두 갈래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해버렸기 때문이다.
원래 "직설어법, 즉흥적 구상, 임전태세"로 문제를 요약한 것 자체가 내 시각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언행을 문제 삼는 시각"으로서, 그런 시각과 대립하는 시각 사이의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제시했던 것이다. 이런 점들은 상당히 미묘해서 항상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요지문에서는 표현이 충분히 명확하지 못해서 동아일보식 해석을 합리적 의심이 나올 수 없을 만큼 봉쇄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제 원고에서는 오해의 소지는 전혀 나올 수 없도록 나 자신의 입장과 논문의 주지를 명료하게 밝혔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연합뉴스나 쿠키뉴스의 기사가 부분적으로는 원고의 내용 일부를 반영하기는 했지만, 가장 근본적인 프레임에서 동아일보의 소개기사를 반복하고 있다.
발표장에서 내 논문의 약정토론을 맡았던 영산대학교 장은주 교수는 노 대통령의 언행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조중동 프레임에 걸렸다는 징후 아니겠느냐고 일침을 놓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딱 걸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논문에서 그 정도로 명시하고 있는 내용이 무시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바람 역시 책상물림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내 딴에 아무리 명시해도 무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이 보인다. 예컨대 그 대목에 기자의 눈길이 아예 미치지 못했거나, 눈길은 미치되 사전에 각인된 프레임 때문에 글자가 뒤집혀서 보였거나 등등, 이론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어떤 사정에 처해서 이런 뒤틀림이 발생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다만 이론적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과 직장인으로서 기자들이 시간의 압박에 쫓기리라는 짐작을 결합해보면, 이론적 가능성이 실제적 개연성으로 바뀔 뿐만 아니라 개연성 역시 일상적이라 할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와 연구실로 마주보는 강준만 교수는 이런 것을 언론의 속성으로 보면서 용서 또는 포기한 듯하다. 나는 기자 개인의 사정이라면 용서할 수 있지만, 이것이 언론계라는 업계의 관행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나에 관한 기사들이 이미 멀리 퍼져서 오해를 낳고, 나아가 이 경우 노 대통령처럼 관련 당사자들에게 내 의도와는 정반대의 피해를 초래한다면 분명히 정의가 손상된 것이다. 언론이 초래하는 파급 효과에 비해 너무나 내부 조절기능이 엉성하지 않은가? 뭔가 고쳐야 하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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