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상으로도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지 않은 손 후보로서는 지지층의 결집이나 동정론을 일으키기보다는 지난 3월 한나라당 탈당이 오버랩 되면서 끈기와 결단력이 없는 정치인으로 인식되어 여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분석이 오히려 많다.
이를 겨냥해 정동영, 이해찬 후보 쪽에서는 손학규 후보의 행보가 2000년 민주당 경선 당시 이인제 후보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며 쐐기까지 박았다. 두 후보 모두 YS 아래서 정치수업을 받은 경기도지사 출신으로 '대세론'을 바탕으로 각각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당과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손학규 후보의 잠적이 이인제 후보가 지난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광주 경선에 판세가 불리해지자 돌연 사흘간 자택에 칩거했던 모습과 겹쳐진다. 이 후보는 칩거 후 경선일정에 복귀했으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 의혹을 제기하다 4월 17일 후보직을 전격 사퇴했다.
손 후보 캠프에서는 이번 잠적이 20일을 넘기는 경우 연이은 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리라는 우려가 크다. 선대위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부겸 의원은 "연락이 닿지 않아 섣불리 예측할 수는 없으나 추석 연휴를 앞두고 손 후보 스스로 가십거리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반 우려반'으로 연락이 닿지 않는 손 후보를 압박하기도 했다.
"당 경선 전략과 본선 전략을 혼동"
손 후보의 잠적은 정동영 후보 측의 조직·동원선거와 당 지도부, 중진들의 방관적 자세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갈수록 불리해져가는 경선 상황을 돌파해보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잠적을 감행하기 이전부터 캠프 내에서도 손학규 후보의 위기는 상당부분 스스로 자초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일단 범여권에 결합한 이후 꾸준히 제기된 정체성 공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잘못 끼운 첫 단추였다. 당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손 후보에 대해 "범여권은 아니지만 반(反)한나라당 후보"라며 감싸 정체성 공방에 방패막이가 돼줬음에도 손 후보는 좀처럼 정체성 공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손학규 캠프의 한 의원은 "당시 손 후보가 한나라당 전력과 탈당에 대해 사과해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후보 뿐 아니라 캠프의 대다수가 사과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태가 악화된 뒤인 광주·전남 경선을 코앞에 두고서야 지난 16일 무등산에 올라 "광주를 훼손한 정치세력과 함께했던 사실에 깊이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좀 더 일찍 사과를 했어야 했다"며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뒤집힌 것도 결국 호남에서 마음이 떠난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를 두고 손 후보 측이 당 경선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정치컨설팅 회사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손학규 후보가 본선전략과 당 경선 전략을 혼동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 표를 끌어올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는 본선 경쟁력을 강조하는데만 치우쳐 '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해 당심을 얻을 방안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각인될만한 메시지가 없었다"
정동영 캠프에 합류한 한 초선의원은 "손학규 후보는 조직·동원선거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통합신당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조직력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당 경선이 흥행에 참패했기 때문 아니냐"며 "이는 손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대항마로서 '바람'을 일으키는데 실패했다는 방증이다"고 지적했다.
이는 손 후보가 범여권 지지자들에게 각인될만한 뚜렷한 메시지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문제와 직결된다. 손 지사는 경기도지사 경력을 내세워 '경제대통령'로서 각인되기 위해 애썼지만 선진, 중도, 통합과 같은 막연한 구호로 당 경선에서 승기를 잡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일각에서는 이를 캠프를 이끌 리더십이 없다는 문제와 연관 짓기도 한다. 손 후보의 캠프는 한나라당 출신부터 동교동계,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출신까지 모여 있는 혼성부대로 현재 재선의 김부겸 의원이 선대부본부장으로서 총 지휘책을 맡고 있으나 여전히 선대본부장 석은 공석인 그대로다.
이 때문인지 '손학규 대세론'이 소멸되는데 대한 의원들의 동요도 큰 편이다. 오랫동안 정치적 친분으로 맺어진 다른 캠프와 달리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손학규 대세론'에 편승해 합류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3월 시베리아행(行)을 자처하며 한나라당을 떠난 손 후보에게 혹한과 눈보라는 결코 피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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