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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가에서 100년 서점은 꿈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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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가에서 100년 서점은 꿈일 뿐인가?

반세기 신촌 명물 홍익문고 존폐 위기

지난 18일 신촌의 명물, 홍익문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단 소식이 세간에 알려졌다. 서울시와 서대문구청은 홍익문고 건물이 위치한 서대문구 창천동 18-36번지를 비롯한 이 일대 4597㎡ 부지를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상업·관광숙박 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50년 이상 신촌을 지켜왔던 홍익문고는 30억 규모로 추산되는 재개발비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질 위기다.

이 소식에, 홍익문고를 신촌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로 애용해 왔던 많은 시민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신촌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밀집한 전통 대학가라는 점에서, 홍익문고의 존폐 위기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80~90년대 대학가 서점의 상징 '인문사회과학 서점'

홍익문고 이전에도 지난 20여 년간 대학가 서점은 차츰 자취를 감춰오고 있었다. 먼저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홍익문고와 같은 일반 중형서점이 아니라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들이었다.

신촌에는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두 개의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이 성업했다. 1995년 초 폐점한 '알서림'과 2000년 폐점한 '오늘의 책'이 그 두 곳이다. 오늘의 책에서 1999년까지 총무를 맡았던 이김춘택 씨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열풍을 끌었던 1980년대에는 이들 서점에 책을 아무렇게나 쌓아만 놔도, 문방구에서 사탕이 팔리듯 잘 팔렸다는 얘기도 전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촌은 급속도로 상업화됐고, 학생들의 삶도 과거보다 경쟁적으로 변해갔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차츰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멀리하게 됐고, 이들 서점도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95년 봄에 알서림이, 2000년에 오늘의 책이 폐점했다.

▲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오늘의 책. 당시 학생들은 이곳에서 소규모 밴드 공연을 열기도 했다. ⓒ프레시안(김용언)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 사라지고, 홍익문고만 남다

오늘의 책이 폐점한 후, 홍익문고는 연세대 앞을 지키는 유일한 서점이 됐다. 신촌역 출구 바로 앞이라는 좋은 터에 있는 덕에, 신촌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로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익문고 박세진 대표(44)는 "하루에 홍익문고를 드나드는 사람이 평균 1500명에 달한다"며 "이 중 진짜로 책을 사는 사람은 10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그런 게 바로 서점"이라고 강조했다.

홍익문고는 현재 대표인 박세진 씨의 아버지 고(故) 박인철 씨가 대학 시절인 1960년에 개점한 헌책방에서 시작됐다. 홍익문고라는 상호는 아버지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흔히들 서점이 홍익대 근처에 있어서 홍익문고일 거로 생각하는데, 사실 네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며 "네 사람은 가족, 고객, 직원, 거래처를 뜻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1997년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홍익문고 경영을 맡게 됐다. 박 씨는 "홍익문고에 들어오면, 유독 낡은 느낌이 나지 않느냐"며 "돈이 없어서 리모델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해놓으신 실내장식을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홍익문고 내부에 설치된 도서목록 게시판, 층별 안내 등을 자세히 보면, 이들이 스티로폼과 색종이를 이용해 수작업한 물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 씨는 "아버지가 서점을 좋아하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 뜻을 따르고 싶었다"며 "어머니는 돈도 되지 않는 서점을 그만 접으라고도 하시지만, 난 홍익문고 100년 역사를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 홍익문고 전경 ⓒ연합뉴스

중형서점 홍익문고마저 경제논리에 밀려 사라질 위기

하지만 이런 홍익문고가 재개발비를 감당하지 못해 반백 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홍익문고는 신촌의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들이 사라지던 1990년대 중·후반에만 해도, 망할 우려가 없는 대형 서점으로 여겨졌다. 오늘의 책 이택춘 전 총무는 "그랬던 홍익문고마저도 재개발의 광풍은 피해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점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는 이성호 과장(46)은 "한마디로 허무하다"고 말했다. 그는 "23년 전, 내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갖고 싶어 일을 배우고자 홍익문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며 "그러다 오늘의 책 등이 버티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홍익문고에 머물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래도 건재했던 홍익문고마저 경제논리에 밀려 사라질 수 있다니 답답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 대표는 "홍익문고 위기가 세간에 알려진 후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줘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관심이 금세 사라질까 두렵기도 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일 서대문도서관친구들, 참교육학부모회, 함께가는서대문장애인부모회 등 약 20여 개 지역단체는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을 결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안 공람 기간인 23일까지 주민을 상대로 홍익문고 살리기 지지의사를 취합해 구청과 구의회 등에 전달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지역 주민의 도움으로 홍익문고에 새로운 기회가 생기는 것 같다"며 "본래 목표대로 100년을 채워, 대학가 서점의 가치를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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