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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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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91>

연금술(鍊金術)과 연단술(煉丹術)의 비의(秘義)

이번 글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오늘날에 와서 그 정체가 감춰지고 잊혀져버렸지만 여전히 우리 삶과 문화의 깊숙한 바닥에서는 생생하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비밀(秘密)에 관한 것이다.

연금술에 대해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해진 원시적인 화학기술'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사전을 좀 더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6 세기 과학혁명의 도래와 함께 사변적이고 신비적인 색채가 사라지고, 합리적인 사상이 도입되면서 화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가 생겨났다. 화학의 탄생에 있어 연금술적인 사상이나 실험법 같은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연금술에서 사용한 많은 약품들과 실험기구들은 과학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금술은 결국 사이비 과학이었기에 연금술의 탄생과 사멸은 인간의 무지와 욕망, 그리고 그 극복과정이었다.'

대충 이런 정도의 얘기가 연금술에 대한 오늘날의 설명이지만, 이는 연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오류이자 과학이라는 또 하나의 색안경-오늘날의 가장 강력한 신앙-을 쓴 상태에서 갖는 편견일 뿐이다.

서구와 이슬람 문화의 연금술사들에게 있어 일반적인 쇠나 광물질을 어떤 특별한 방법을 통해 황금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들이 원했던 것은 흔한 금속 물질을 고귀하고 순수한 금속인 금(gold)으로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삶을 고양하고 완성의 경지로 끌어올림으로써 생명과 우주의 내밀한 이치를 터득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20 세기의 가장 위대한 종교사(宗敎史) 학자였던 엘리아데(Eliade)는 자신의 저서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이처럼 얘기하고 있다.

"연금술 조작이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그것 역시 실험실에서 행해진 구체적인 조작이었지만 화학과는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다."

"화학자는 물질의 구조를 통찰하기 위해 정확한 관찰과 조작적인 실험을 행한다. 반면 연금술사는 물질의 변환과 인간 생명의 변환에 밑받침이 되는 물질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결혼에 전념한다."

엘리아데는 나아가서 과학의 역사에서 본다면 연금술은 화학이라는 과학의 한 분야가 생겨나기 전의 사이비 과학이었지만, 정신의 역사에서 본다면 연금술은 '신성한' 학문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화학은 물질이 그 신성(神聖)한 성질을 상실한 후에야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화학은 연금술의 입장에서 볼 때 신성한 학문의 세속화라는 관점에서 '일종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금술에 대한 이처럼 상반된 시각은 동양의 연단술(煉丹術)에도 정확하게 통용된다.

연단술 역시 불로불사의 선약(仙藥)을 만들자는 것에서 출발하여 나중에는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선인(仙人)의 경계로 고양하고 나아가서 천지(天地)와 하나가 되는 경지,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루자는 것이 목표였다.

동양의 연단술이나 서양의 연금술 모두 죽지 않고 물질적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라는 유한한 경계를 초월하여 정신의 완전한 해방, 사생일여(死生一如), 서구의 경우라면 신(神)과 하나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도교 연단술을 다룬 책 중에 '참동계(參同契)'라는 책이 있다. 음양오행과 황로(黃老)학, 그리고 연단술, 이 세 가지를 근본에 있어 하나로 엮을 수 있다는 의미의 제목이다.

이 책과 관련해서 필자에게는 재미난 추억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중국 무협 소설을 재미나게 읽었는데 대략 권수로 5천권 정도는 본 것 같다. 그중에 와룡생이 지은 '무유지'라는 대단히 흥미로운 소설이 있었다.

책 속에서 주인공은 기인을 만나 절세의 검법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가장 위력이 강한 검술로서 교탈조화(巧奪造化)라는 이름의 초식이 있었다. 이 초식으로 주인공은 검법의 명문인 무당파의 최고수에게 이기게 된다.

교탈조화, 조화를 교묘하게 탈취한다는 뜻이니 묘한 느낌이어서 수 십 년 세월이 지난 후에도 뇌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한 십 년 전 앞서의 '참동계'를 읽다가 바로 '교탈조화'라는 문구와 만나게 되었다. 무협작가인 와룡생의 창안이 아니라, 참동계에 들어있는 문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교탈조화야말로 참동계의 핵심 사상이라는 점이다.

참동계에는 '천지가 교합할 때, 그 조화를 교묘하게 탈취하여 그 처음과 끝을 천지와 함께 하는 것이 연단술의 기본원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탈취한다, 또는 훔친다는 것은 일종의 조작으로서 연단술이나 도인(導引), 태식(胎息) 등도 모두 조작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작의 의미는 결국 천지와 함께 하기 위함이고 천지의 변환 과정에 개입하는 것이니 바로 서양의 연금술이 얻고자 하는 것과 동일한 정신이라 하겠다.

황로술에서 말하는 무위(無爲)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고, 음양의 도에 따르고 오행의 성질에 순응한다는 뜻이며 그를 통해 사물의 자연스런 추세를 따를 수 있기에 무불위(無不爲), 즉 '하지 않음이 없음'이라 말하는 것이다.

음양과 오행 역시 그것을 연구하고 알게 됨으로써 미래의 흐름을 미리 알아차리고 그것을 바꿔보자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추이를 알고 그 흐름에 맡겨두면 절로 시작되고 절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것이 음양오행을 연구하는 것의 본뜻인 것이다.

이는 마치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방향대로 배를 미는 순수추주(順水推舟)의 이치와 같다.

음양오행을 통해 운명을 내다보는 명리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부자가 될 것인지 빈곤할 것인지 또는 장수할 것인지 등등 행운의 가능성과 시기를 내다보자는 것이 아니다.

목화토금수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당신의 본성이 어느 상징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그 본성은 어떤지 그리고 운명의 물결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아 인위적인 억지를 부리지 않는 무위(無爲)와 하지 않음도 없는 무불위(無不爲)를 실천하라는 것이 명리학의 본뜻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 사회 내에 여전히 살아있는 음양오행은 연금술과 연단술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혈맥이라 하겠다.

더위가 멎는다는 처서(處暑)가 지난 지 엿새 만에 드디어 소슬 바람이 인다. 저 천연의 바람소리는 가을이 문턱을 넘는 소리일 것이니 이제 밤으로는 여름내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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