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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바람을 일으키다

[이종범의 사림열전] 김종직: 경계인을 위한 변명ㆍ④

서정(庶政)의 달인

김종직은 함양과 선산에서 괄목할 만한 치적을 올렸다. 특히 함양 재임 시절에는 다원(茶園)을 조성하고 함양성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당시 공물은 대체로 각 지방의 토산물로 부과하였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흔하였다. 이런 경우 다른 고장에서 구입하여 납부하여야 했고, 그만큼 백성의 부담은 무거웠다. 함양의 실정이 그랬다. 이웃 전라도에서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홉을 구하여 나라에 바쳤던 것이다. 비싼 값이었다.

김종직은 신라시대에 당나라에서 차종(茶種)을 구해 지리산에 심었다는 기록이 엄연한데 산 아래 볕이 좋은 함양에서 차를 재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의아하였다. 부로(父老)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옛 기록을 들이밀며 '어딘가 종자가 있을 것이니 알아봐주시오'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읍에서 이십여 리 남쪽에 있는 엄천사(嚴川寺) 대밭에서 차종(茶種)을 찾았다. 그런데 주인이 있는 사유지였다.

김종직은 즉각 땅주인에게 주위의 관전(官田)으로 보상하고 차밭을 조성하였다. 이제 4~5년이 지나면 함양에도 차가 생산되어 백성의 수고를 덜면서 나라의 공물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뻤다. 「다원」두 수에 담았는데 첫 번째다.

영묘를 얻어 성군 장수하시라 바치고 싶었는데 欲奉靈苗壽聖君
신라가 남긴 종자 있다는 소리 오래 듣지 못하다가 新羅遺種久無聞
지금에야 지리산 아래에서 얻게 되었다네 始今擷得頭流下
더구나 우리 백성 힘 덜게 되었으니 기쁘구나 且喜吾民寬一分


성종 5년(1474)이었다. 이듬해 2월에는 함양성 나각(羅閣)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243칸이나 되는 큰 공사였다. 그동안 지붕을 볏짚으로 거의 해마다 새로 올리느라 무척 번거로웠다. 또한 세 집이 지붕 한 칸씩을 감당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일손이 적고 볏짚을 조달하기 쉽지 않은 가난한 집은 고통이 심하였다. 겨울의 눈바람에 내려앉아 농사가 한창 바쁠 때에 수리하는 것도 문제였다. 농시(農時)를 빼앗은 것이다.

김종직은 부로의 의견을 들어 단안을 내렸다. 해마다 볏짚을 얹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덜기 위하여 지붕을 기와로 대체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값이 비싼 기와를 마련하는 것이 문제였다. 종전대로 세 집이 한 칸을 부담하는 식으로 하면 빈농은 더욱 힘들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직은 토지에 따라 기와를 배당하기로 하고 토지 10결(結)을 기준으로 한 칸의 기와를 부과하였다. 즉 토지가 1결인 집은 10호가 모이면 될 것이고, 50부(負) 즉 1/2결인 집은 20호가 힘을 합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 마을 별로 할당량이 정해질 것이고, 마을 안에서는 농가의 가세와 빈부를 살펴 차등을 두고 거두면 될 것이었다. 실질적 균평(均平)이었다.

물론 토지가 많은 토호나 향리는 불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20결의 부농이라면 2칸의 기와를 담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에 모두 부로와 상의하여 이들의 여론을 얻고 결정하였으므로 드러낼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기와가 수월하게 걷히고, 공사 또한 신속하게 진행되어 닷새가 걸리지 않았다. 기와를 내지 못하는 집은 노동력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김종직은 반가웠다. 그때 지은 「함양성 나각(羅閣)」이다.

무려 이백사십 여 칸이나 되는 누각은 二百四十餘間架
비바람으로 해마다 수리했었지 風雨年年補茸頻
어려운 때에 일천 가호 동원할 일 걱정됐으나 時絀方虞動千室
고생을 고루 나누면 삼춘 안에 마치리라 기대했네 力均猶畢及三春
도끼 자귀로 깎는 소리 일찍 거두고 斧斤斲斲收聲早
비늘처럼 기와 이으니 안목이 일신되었네 瓦縫鱗鱗轉眼新
십 년 동안 농촌에서 편안히 농사만 지었으니 十載田原𥡥耕稼
내가 고식적이 아닌 것을 누가 알았을까 渠能知我不因循


다원 조성과 함양성 수리는 부로에게 자문하고 동의를 구하는 공론행정의 결실이었다. 수령의 홀로 다스림이 아니라 부로와 함께 민지(民智)를 동원하고 여론을 조성하며 해묵은 민원을 해결하고 농민 부담의 공평성을 추구한 것이다.

세조 13년(1467) 이후 유향소가 철폐되어 고을의 여론을 수렴할 공식기구가 없고 수령이 향리와 토호만을 상대하며 민폐를 야기하고 민생을 침해하던 시절, 김종직의 서정쇄신은 잔잔한 감동을 일으켰다. 임금에게도 알려졌다. "함양군수 김종직은 정사의 치적이 특이하니 임기가 차서 다른 벼슬로 옮길 때는 논상(論賞)하도록 하라." 성종 4년(1473) 7월이었다. 얼마 후 정3품 당하관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승진하였다.

지도를 그리다

예나 지금이나 서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향리의 속임과 토호의 감춤이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김종직은 경상도 평사 시절에 『경상도지도지(慶尙道地圖誌)』를 제작한 바 있었다. 여기에는 '명산·대천·읍락·우전(郵傳)·연대(煙臺)·척후(斥i候)·금대요충(襟帶要衝)'을 자세히 그려서 국방상의 요충지를 일목요연하게 표기하려는 것이 우선이었다.

지도그리기는 함양과 선산에서도 계속되었다. 표면적 명분은 간단하였다. "천하에는 천하도(天下圖)가 있고 일국에는 일국도(一國圖)가 있듯이 읍에는 읍도(邑圖)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질적 목적은 따로 있었다. 『선산지도지(善山地圖誌)』를 만들고 적었다. "토호나 향리의 속임과 거짓을 막고 백성에게 거두는 조용조(租庸調)를 균평히 하여 국가에 바치는 일을 제대로 하자면 마을의 호구와 간전 등을 읍도에 적어 놓아야 한다." 지도를 균부균세(均賦均稅)를 실천하는 무기로 생각한 것이다. 애민의식의 소산이었다.

그러나 김종직은 지도의 소용되는 바를 민정 차원에 한정하지 않았다. 지도를 통하여 지방의 문화와 전통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지도에 시를 써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함양 지도에는 아홉 수, 선산 지도에는 열 수를 적었으니 바로 「구절가(九絶歌)」「십절가(十絶歌)」였다. 다음은 「구절가」제5수이다.

남계의 서쪽 언덕길이 꼬불꼬불한데 灆溪西岸路縈回
황석산 높은 봉우리에 놀란 말이 오누나 黃石奇峯駭馬來
날 저문 화림에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日暮花林風雨橫
조각구름이 날아 대고대를 지나네 斷雲飛過大孤臺


함양 북쪽을 흐르는 남계를 지나 서쪽으로 가면 나오는 황석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잡히듯 형상화하고 있다.
선산에서는 길재가 살았던 마을을 노래하였다.

금오산 봉계동을 마음대로 거닐었더니 烏山鳳水恣倘佯
야은 선생 맑은 기풍 풍설로도 길구나 冶隱淸風說更長
부엌일하는 계집종의 절구소리도 음율에 맞으니 㸑婢亦能詩相杵
지금도 사람들은 정현의 고향과 견준다데 至今人比鄭公鄕

▲ 금오서원(金烏書院),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원리 276 소재. 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기리기 위하여 선조 3년(1570)에 세웠고 5년 뒤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자 지금 위치에 옮겨지었다. 광해군 원년(1609) 김종직이 추가 배향되었다. 선산은 김종직이 부사를 지내며 많은 제자를 양성한 고장이었지만, 선대의 고향이기도 하였다. 김종직의 부친은 서른한 살까지 선산에서 살다가 세종 2년(1420) 밀양으로 이사하였다.ⓒ프레시안

길재가 후학을 양성한 사실을 인용하여 선산을 찬양한 것이다. 정현(鄭玄)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맥이 끊긴 선진(先秦) 유학을 복구한 학자인데 그의 마을은 여종이라도 『시경』한 구절을 외웠다는 고사가 있다.

김종직은 지도를 통하여 지방의 역사와 풍광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을 촉구하고 있었다. 지도를 그린 또 다른 이유였다.

김종직의 동헌에는 지도가 항상 걸려 있었다. 멋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윤료(允了)란 화공(畵工)을 시켰는데, 성이 없이 이름만 적은 것으로 보면 지체 낮은 천민이었던 것 같다. 혹여 감영에 소속된 관장(官匠)이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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