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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남북정상회담, 지금 필요한 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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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차 남북정상회담, 지금 필요한 건 뭐?

<기자의 눈> 보수언론의 압박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부 각 부처별로 정상회담에 관한 의제를 부랴부랴 모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처별 산하 기관에도 불똥이 튀었고, 청와대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관련 대북 사업에 관한 현황을 물어볼 때도 있다."

주말에 만난 정부 산하기관 소속의 한 관계자는 이런 귀띔을 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얼마간은 준비 안 된 회담이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각 부처에서 공식·비공식으로 나오는 의제나 관련 보도들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그것은 정상회담의 안건이 아니다"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의제로 확정되는 것이니 보도에 유의해 달라"고 말했다.

이는 정상회담 발표 후 봇물 터지듯 나오는 각종 대북 제안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취지였지만, 정부조차도 아직 제대로 정립된 의제를 갖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이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얘깃거리를 허겁지겁 모으고 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일각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이 혹여 졸속으로 치러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강산관광에서부터 베를린선언에 이르기까지 2년 반 동안의 철저한 기획 속에서 나온 1차 정상회담과 비교했을 때 더더욱 그러하다는 것이다.

'주문' 넘어 '위협'과 '협박'으로

정상회담에 관한 준비가 미진한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각종 주문과 경계의 말들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을 받아야 한다느니, 너무 많은 경제 협력 약속을 하고 오면 '퍼주기'라느니, 서해 해상경계선(NLL)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도 꺼내지 말아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다.

정상회담 발표 직후 한나라당의 회담 반대 입장에 대해 '한나라당도 반대만 하지 말고 정상회담에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하라고 주문을 해라'라는 전문가들의 말에 비춰볼 때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에서 그런 주문이 나오는 것에는 건강한 측면이 있다.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해야 한다거나, NLL 문제에 대해 '통 큰 결단'을 하라거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백지화하라거나 하는 진보진영의 요구 역시 그렇다.

그러나 정상회담에 대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요구수준을 넘어, 회담 결과에 대한 공격의 근거를 만들기 위한 사전포석을 위해 무리한 압력을 가한다면 그것은 '발목잡기'나 '가이드라인 제시' 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1차 정상회담 때 성큼성큼 나아가는 정부를 따라잡기에 바빠 사후 비판에나 머물렀던 언론들은 이번만큼은 '준비 안 된 회담'에 대한 '준비된 공격'을 하겠다는 양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주말을 지나며 부쩍 부각되고 있는 NLL 문제가 대표적이다. NLL 문제를 정상회담 의제로 올린다는 것은 "주권을 포기한 행위"라느니(조선일보 13일자 사설), NLL을 북한에 양보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적 저항은 물론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받을 거라느니(국민일보 13일자 사설), "NLL을 잘못 다루면 엄청난 역풍"이 분다느니(연합뉴스 11일자 기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보수언론 눈치보기가 자초한 후과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열린 공간'을 경직시키고 제약할 수 있는 보수언론의 위협성 발언들은 그동안 노무현 정부에서 그들이 얻었던 성취감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보안법 논란, 미사일 시험발사 후 대북 쌀 지원 중단,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연계 등 북한과 관련된 현 정부 정책의 대부분은 보수언론의 압박에 무릎을 꿇는 방향으로 결론이 내려졌었다. 노무현 정부는 겉으로는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실제로는 보수언론에 대한 눈치보기로 일관하며 그들이 인도하는 길로 나아갔다.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지 않았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그 역시도 미국의 대북정책 수정이라는 대세의 흐름에 몸을 맡긴 결과 얻어진 것이지, 한국 정부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상황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이처럼 자신들의 말에 고분고분 길들여진 정부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대단히 협소한 정상회담 의제 리스트를 제시하며 '허튼 짓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 정부가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했더라면 든든한 지지세력이 되었을 소위 '평화블록'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미군기지 평택 이전, 한미FTA 체결 등 현 정부의 수많은 대미 굴종적 협상을 보며 등을 돌렸다는 것도 보수세력의 자신감을 부추겼다.

그러나 현 정부가 보여줬던 보수세력 눈치보기가 정상회담에서 역시 극복되지 못한다면 한반도의 미래에 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눠야 하는 귀중한 자리는 그저 한정된 의제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나 이끌어내는 형식적인 것으로 끝날 공산이 높다.

김정일 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초청했으면 빈손으로 돌려보낼 리는 없다는 '희망' 섞인 말도 있지만 양측의 주도성이 균형적으로 발휘되지 않은 회담은 성과에 못잖은 '뒤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뭐?

따라서 노무현 정부에게 주어진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선 여론에 휘둘리기보다 여론을 선도하고 설득할 수 있는 돌파력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보나 보수 어느 쪽에서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남북간의 합의를 토대로 회담을 시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가 대표적인 합의틀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노태우 정부 때 만든 기본합의서와 비핵화선언을 토대로 의제를 설정하고 회담을 이끝다면 보수적인 측에서도 반박할 논리가 별로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NLL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국방장관회담에서 협의하자는 것인데 2000년에 한번 있었던 국방장관회담을 복원하자는 정도만 정상이 합의하면 된다"며 "그 역시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해서 논리를 펼 경우 문제될 게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10조에는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면서도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도 계속 협의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NLL 문제의 협의 여지를 열어놓은 것으로 협의 자체가 "주권을 포기한 행위"가 될 수 없다.

다만 정상 수준에서 세세한 논의를 할 수 없으니 하위 회담을 열어서 논의하자는 수준으로 합의한다면 문제될 게 없고, 보수언론의 공격을 방어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여론 돌파력과 더불어 정부에 꼭 필요한 '덕목'은 상상력이다. 여론이 제기하고 있는 의제틀을 뛰어넘어 한반도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합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는 것이다.

1991년 북한 신년사에서 등장한 '낮은 단계 연방제',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의 주한미군 용인 발언, 2000년 6.15공동선언 2항의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같이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발휘가 필수적이다.

끝으로 1차 정상회담 경험자들로부터 철저한 자문을 들어야 한다. 보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회담을 졸속으로 치르지 않기 위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험자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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