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가정보원장으로 6.15공동선언 탄생의 주역이었던 임 이사장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이번 정상회담 의제에 대해서는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이사장은 "1차 정상회담 당시 의제는 평화, 통일, 교류협력, 기타 이산가족 등 4가지였다"며 "그러나 평화의 문제는 6.15남북공동선언에서 정치군사적인 사안이라 빠졌는데, 이번에는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비통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과 4자 정상회담과 관련해 임 이사장은 "평화제제가 분단을 고착화하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4자회담 전에 남북이 주도해야 한다"며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다른 나라가 먼저 참여해서 '분단고착적 평화체제'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번 회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한나라당이 정상회담을 반대하고 나선 데 대해 임 이사장은 "한나라당이 불리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며 "2000년 정상회담이 4월 총선에서 여당에게 오히려 불리했듯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런 사안이 정치 행사에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임동원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남북정상회담 합의 어떻게 평가하나
"남북 모두 큰 결단을 내렸다. 환영한다. 특히 오늘 정부 발표를 보면서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전략적 결단을 확실히 내린 것 같다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았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핵카드를 포기하겠다는 전제를 한 것 같다. 이 판단이 옳다면 잘 됐다는 생각이다.
나는 8월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해왔다. 그간 남쪽에서도 계속 노력을 했지만 북한의 반응이 없었다. 오늘 발표를 보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단해서 적극적으로 나온 것 같다."
- 2000년 정상회담 때 미국이 못마땅해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까?
"당시 미국이 못마땅해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한국과 더불어 포괄적 포용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20년의 역사를 보면 미북관계가 악화됐을 때 남북관계 잘됐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미북관계가 잘 돼야 남북관계도 잘 되는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전에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반도 안보 위기가 조성됐고, 북한에 대한 공격 주장이 나왔었다. 미국 의회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이 잘못됐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 의회의 결의에 의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대북정책조정관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포괄적 대북 포용정책을 시작하자', '대증요법으로 문제를 풀지 말고 숲을 보고 나무와 가지를 논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페리팀을 설득했다.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고 북미 적대관계를 해결하면서 핵과 미사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설득했고, 그걸 받아들여서 나온 게 페리프로세스다. 그렇게 미국과 한국의 정책공조가 이뤄졌고, 일본이 가담해 3국 공조가 이뤄졌다. 즉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진행 속에서 정상회담이 성립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작년 말에 유턴을 했다. 북한 정권을 '사악하다' '제거해야 한다'던 6년간의 대북 적대시정책이 북한 핵실험으로 실패하면서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미국 국민들이 심판을 내렸다. 그래서 외교정책을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힘에 의한 일방주의 외교에서 국제협력을 통한 실용주의 외교로 급선회했다. 그래서 베이징-베를린 북미 접촉이 있었고, 그 협상에 성공해 2.13합의가 나왔다. 그러면서 핵문제 해결과 미북 관계정상화를 맞바꾼 제네바합의식 합의가 이뤄졌다. 그게 남북관계에 영향을 줬다. 2000년 정상회담과 배경이 유사하다."
- 김대중 정부와 비교해 볼 때 현 정부는 2.13합의가 나와도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연계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나 정상회담에 소극적이었다.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적극적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북한에서 그간 정상회담 제안을 별로 신통하게 안 받아들이다가 7월 29일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우리 정부 관계자가 방북을 했다고 발표됐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됐다는 슬기롭고 전략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우리로서도 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는 핵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핵문제 진전이 실제로 있게 됐고, 따라서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이라서 그간의 말과 부합했다고 본다."
- 어떤 문제까지 논의될 수 있다고 보나
"핵문제를 의제로 삼으면 북에서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소산이라는 게 북한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 위협을 느끼니까 핵문제를 우리와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핵문제는 6자회담이란 틀이 있다.
2000년 정상회담의 의제는 평화의 문제, 통일의 문제, 교류협력의 문제, 기타 이산가족 등의 문제 등 총 4가지였다. 내가 특사로 미리 가서 김 위원장에게 설명했고, 북이 그걸 받아들여 정상회담에서 합의했다. 그 4가지 의제 중 6.15공동선언에 들어가지 않은 게 평화의 문제다. 그건 정치군사적 사안이기 때문에 다른 경제사회 교류를 통해 다음 단계에서 해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유럽이 유럽경제공동체를 통해서 국가연합으로 발전했듯이 경제공동체 구축이 우선이다. 또 군사문제에서 진전이 있어야 한다. 군사적 긴장완화와 군비통제 문제, 즉 군축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북한이 가장 바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군사 부분에 거의 모든 자원을 투입해서 경제 재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정치군사적인 문제를 주로 다뤄야 한다. 군비통제를 위해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본격 시작한다거나 하는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본다. 그러다 보면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문제 같이 자세한 얘기가 나오겠지만, 정상회담은 큼직큼직한 얘기를 하는 자리이므로 평화체제 군축, 경제공동체, 군비통제 등 큰 쟁점을 최대한 합의하면 된다.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서는 6자회담에서 협상하기로 했다는 대단히 중요한 진전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4자 정상회담부터 엉뚱하게 말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4자 정상회담은 정전체제를 폐기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이다. 정전체제 폐기 문제는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인 미국, 중국 등이 참여해야 하지만, 평화체제의 당사자는 남북이 되어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체제가 분단을 고착하고 현상을 고착화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4자회담 전에 남북이 이러저러한 문제를 주도해야 하고, 다른 나라가 참여해 '분단고착적 평화체제'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남북 만남 없이 4자가 모이면 그 안에서 남북간에 불화만 나온다. 그래서 4자회담 전에 남북이 빨리 만나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 한나라당이 반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는데...
"정상회담문제, 민족문제, 평화문제를 정치적이고 정략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회담이 갑자기 된 것도 아니고 꾸준한 논의가 있어 왔는데, 마침 대선을 앞두고 성사되면서 안 좋게 보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나라당도 불리하다고 생각할 필요가 하나도 없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런 사안이 정치적 행사에 도움을 준 적이 없었다. 2000년 정상회담은 4월 총선을 앞두고 며칠 전에 발표했다. 그렇지만 총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여당에 이득을 못 줬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현명하다. 한나라당도 두려워하지 말고 민족문제, 평화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오히려 이득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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