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의 셰하르야르 칸 책임연구원은 7일 탈레반의 한국인 인질 억류사태를 풀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쥔 미국을 압박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레반 전문가인 칸 연구원은, 아프간 정부가 지난 3월 납치됐던 이탈리아 기자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탈레반 수감자 4명을 풀어준 적이 있다며 미국이 동의하지 않고는 그런 거래가 성사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수 백 명, 수 천 명의 수감자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탈레반이 주장하는 맞교환을 테러세력과의 타협이 아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보도록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의 성향을 감안하면 탈레반이 요구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이 가볍게 볼 수 없는 중요한 동맹"이라며 "협조를 요청하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미국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로비하고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칸 연구원은 이번 인질 사태의 향후 전개 방향으로 네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우선 탈레반의 요구대로 탈레반 수감자와 인질 전원의 맞교환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지만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성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두 번째 시나리오로 그는, 탈레반이 관리하기 어려운 여성 인질들을 먼저 풀어주고 남성 인질만 계속 억류하면서 맞교환을 관철하려 하는 상황을 들었다.
그는 "탈레반이 이슬람권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인도적 차원에서 여성 인질들을 전격적으로 풀어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이 경우 결과적으로 남성 인질들만 볼모로 해 사태가 오래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탈레반이 인질을 한 명씩 살해하는 경우를 꼽았다.
그는 "탈레반은 충격 요법으로 인질들을 한 명씩 죽이면서 맞교환 해법을 거부한 미국과 아프간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네 번째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군사작전이 거론됐다.
칸 연구원은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국제적인 비난여론이 최고조에 달한 때를 골라 탈레반 소탕에 초점을 맞춘 인질구출 작전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에는 인질은 물론 아프간 민간인의 희생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탈레반이 인질들을 추가로 살해하면 국제적 비난여론이 고조하게 돼 미국은 무력사용을 정당화할 명분을 얻게 된다면서 탈레반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인질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칸 연구원은 탈레반의 성격과 관련, '테러리스트'로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민항기를 납치해 미국 본토를 공격한 알-카에다를 테러리스트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탈레반의 경우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레반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군사공격을 받기 전까지는 아프간의 집권 세력이었다"며 탈레반을 테러세력이 아닌 외세의 침공에 저항하는 독립운동 세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침략해 온 외세에 저항하는 것은 아프간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아프간에서는 역사적으로 그런 저항이 특히 강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아프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프간 땅을 정복하기는 쉽지만 정복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는 사실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며 미국의 아프간 점령이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탈레반 전사들은 침략해온 이교도와 성전을 벌이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어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게 된다"며 외세가 이들을 끝까지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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