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을 인질로 잡고 있다가 1명을 살해한 납치단체는 정통 탈레반인가 아니면 단순한 무장세력인가.
탈레반을 납치세력으로 간주한 것은 과거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한 카리 유수프 아마디라는 인물이 납치 다음날인 20일부터 줄곧 한국과 독일인 납치사실을 공개하고 주둔군 철수와 인질 맞교환 등을 요구하며 납치세력을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독일인 인질 2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으며 실제 1명이 총상을 입은 사체로 발견됐다. 독일 외무부도 22일 인질 1명의 시신에서 총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탈레반은 웹사이트 성명을 통해 독일인 2명을 살해한 것은 탈레반 지도부인 '지도자 위원회'의 사형 선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인질을 둘러싸고 당초 23일로 설정됐다가 연장된 협상시한도 '지도자 위원회'의 성명을 인용, 대변인을 자처하는 아마디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러한 정황에 따라 한국인 납치단체가 탈레반 무장단체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것으로 간주됐다.
'지도자 위원회'는 탈레반 최고지도자인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서방 군대에 대한 조직적 저항을 위해 2003년 10명으로 조직한 지휘부. 군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대개 남부 파슈툰 부족 출신으로 알려졌다. '얼굴없는 두령'으로 불리는 오마르는 9.11 테러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빈 라덴에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뒤 파키스탄으로 탈출, 저항활동을 지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을 납치한 세력의 실체를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2일 독일 일간 디 벨트의 보도 때문이다. 이 신문은 독일인 2명의 납치세력이 탈레반 무장세력이 아니라 파슈툰 부족 무장세력(bandit)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도 아프간 정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독일인을 납치한 세력이 친탈레반 성향의 다른 무장단체라고 전했다.
독일인 인질 2명과 아프간인 5명을 모두 살해했다는 아마디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자체 정보를 종합한 결과 아직 1명은 생존해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다른 1명도 살해된 것이 아니라 당뇨병을 갖고 있는 그가 납치 상황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독일 정부가 탈레반 측의 거짓 정보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광범위하게 축적된 정보와 정보 수집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프간에 배치된 독일의 토네이도 정찰기는 납치 사건 발생 직후부터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 납치범과 인질의 행로와 현재 위치를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아프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일연방정보국(BND) 및 군사정보 기관은 납치범들의 실체 파악에 나서 이들이 탈레반 정통 조직이 아니라 탈레반과 연계돼 있는 파슈툰 부족 무장세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독일 정보기관은 그 동안의 이라크 및 아프간에서의 인질 석방 교섭 경험에 비추어 납치범들의 납치 동기는 정치적인 것보다는 인질교환이나 몸값 등 실제적인 이유가 더 큰 것으로 파악했다.
납치세력의 대변인을 자처한 아마디가 한국과 독일인들을 납치한 세력이 동일한 탈레반 무장단체라고 주장한 가운데 이런 독일 언론의 보도가 맞다면 한국인을 억류한 세력 역시 정통 탈레반이 아닌 현지 무장세력이나 군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납치세력은 그동안 다양한 요구를 해왔는데 초반의 '한국군 철수'에서 '한국인 인질과 같은 수의 탈레반 죄수 교환', 나아가 '가즈니주(州) 내 수감 탈레반 무장대원 전원 석방'으로 요구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했다.
그러다 일본의 교도통신이 24일 아프가니스탄 정부측 대표의 발언을 인용, 이들이 한국정부에 피랍자들과 전화통화를 하는 대가로 1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들의 실체에 대한 의혹도 커졌다.
납치사건 발생 엿새 만에 처음으로 금전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납치세력이 요구조건을 상향조정한 시점에서 인질 접촉 대가로 구체적인 돈 액수가 제시된 것은 탈레반이 이번 사태 이후 금전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교도통신은 2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했으며, 수감중인 탈레반 요원 8명의 석방을 약속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아프간 당국자는 교도통신에 "그들은 우리들은 이슬람의 종복들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으며 도둑들이다, 그들은 돈을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고"고 전한 것도 납치세력이 이슬람 반군이 아니라 친탈레반 성향의 무장세력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감자 석방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한국인 인질 1명을 살해했다고 아마디가 주장한데 이어 총상입은 시신까지 발견된 점에 비춰 정통 탈레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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