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사박물관 설립을 공표한 후 2009년 10월 현대사박물관의 명칭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확정했다. 이후 2009년 4월 출범한 건립위원회가 2012년 12월 개관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민주적 건립 과정 △대통령 치적 쌓기용으로 졸속추진 △민주화운동 등한시 △경제 성장 위주의 전시물 △독재정권 옹호 등의 논란이 제기됐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14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긴급토론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이대로는 안된다'를 열어 추진 과정과 전시 내용의 문제점을 짚고 개관 연기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지난 8월 14일 오후 개관을 100일 앞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광복절 기념 행사가 진행됐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진현 박물관 건립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현판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역사박물관을 국가 홍보용으로 쓰는 것은 국제적 웃음거리"
발제자로 나선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박물관이 치적 쌓기용이나 국가 홍보용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희생된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있어야 하는데 이 역사박물관은 너무나 대통령과 경제성장 이야기 중심"이라는 것.
홍 교수는 "국가 홍보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국가 홍보 차원에서 역사를 말하는 건 세계인의 웃음거리"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서도 이것에 대한 비판기사를 냈다. 기사를 쓴 서울지국장이 말하기를, 세계인이 한국 역사에서 관심을 둘 부분은 한국전쟁과 민주화운동 두 가지라고 하더라"며 "한국인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 누락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 자료가 편향됐다는 비판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됐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각각 28, 24차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6·15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사실도 누락됐다는 것.
홍 교수는 지난 8월 공개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주제 해설 기초자료 용역보고서'에서 장면 정부를 서술한 부분을 예로 들었다. 홍 교수는 "(장면 정부에 대해) '사회가 혼란했다', '파벌 싸움했다'는 식의 서술 위주더라"며 "장면 정부가 경제개발5개년 계획 만든 것을 군사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키자마자 발표한 것인데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윤보선이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쿠데타에 대해 시인 발언한 것만 쓰고 정작 5·16 쿠데타 주체들이 헌정을 유린한 부분은 빠졌다"고 비판했다.
자료의 편향성뿐 아니라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서술하는 방식도 큰 문제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홍 교수는 "경제성장이 먼저 오고 민주화가 나중에 온다. '선산업화 후민주화'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박물관 내 새마을운동 전시물은 48점인 반면 4·19 혁명 자료는 18점이고 5·18 광주항쟁 자료는 9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제성장과 분배를 꼭 이분법적으로 선후를 나누는 것이 문제"라며 "근대 사회를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나눠서 이야기할 수 있느냐. '선산업화 후민주화론'은 세계에서 한국 사람만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건물에서 열린 긴급토론회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이대로는 안된다'가 열렸다. ⓒ프레시안(남빛나라) |
건립 과정 비판…"폐쇄적·일방적·비민주적"
한편 건립 과정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동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졸속추진과 전시 내용의 빈약함을 문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문화부 소속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가 정치 구호적, 강령적 주장 외에 체계를 갖춘 건립계획을 제시한 적이 없다"며 "그러더니 2010년 10월 국고 451억 원을 투입해 광화문 문화체육관광부 부지에 동 청사를 리모델링해 박물관 착공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교수 역시 "2011년에 문화부 차원에서 대국민보고회를 했는데 그 주체는 건립추진위원회가 아니라 문화부 산하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이었다"며 "역사박물관 건물 짓는데 몇백 억을 썼는데 유물 구매비는 약 8억 원이더라. 대국민보고회에서도 이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5월까지 정부가 건물 리모델링에 사용한 국고는 448억 원에 달한다.
이어 이 교수는 심각한 비민주성 때문에 생겨난 일방성과 폐쇄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 최근 제출된 용역보고서를 발간한 '(주)역사문화사'라는 곳은 정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2010년 초 일방적으로 1948년 8월 15일을 뉴라이트식으로 해석해 대한민국건국일로 내세우려다 광복회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며 "이것만 봐도 문화부나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측에서 학계와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 사회 주체들의 의견을 듣고 논의할 생각이 없었음을"알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 주최 공청회나 공적 간담회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 홍 교수 역시 비민주성을 지적하며 "국가 차원에서 만든 위원회는 그 회의에서 논의된 사항 결정된 사항을 그때그때 홈페이지에 올리는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애초에 2014년이었던 개관 예정일을 세 차례나 앞당기며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개관하려고 서두르는 모양새도 문제라고 했다. 이 교수는 1982년 서독 수상 헬무트 콜(Helmut Kohl)이 처음으로 제안한 독일의 현대사박물관 '연방공화국역사의 집'건립 과정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과정을 비교했다.
이 교수는 "콜 정부는 전국의 현대사학자들과 다양한 시민단체에 전시 구상 초안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야당이었던 사민당 역시 당내에서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해 많은 역사가가 논쟁에 참여했다"며 이러한 토론이 "1990년 통일 때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결국 '연방공화국역사의 집'은 1994년에야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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