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년 8월.
천둥 번개가 쳐대는 저물녘이었다. 먹구름장이 몰려와 하늘이 캄캄해지는 것으로 보아 곧 장대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저잣거리는 피난이라도 간 듯 한산해져버렸다. 다만 조광조의 집 문턱만 여전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선비들이 조광조의 집 앞에서 끊임없이 말에서 내리거나 교자를 타고 오갔다. 일반 양인들은 조광조의 집을 '조대헌댁'이라고 불렀다. 대헌(大憲)이란 종 2품 벼슬인 대사헌의 약칭이었다.
이제 조광조는 자신보다 20여년의 선배들과 국정을 당당하게 논하고 겨루는 대사헌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일찍이 동료들이 경연에서 '태평 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대 제일가는 인물을 재상으로 써야 할 것입니다. 조광조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하고 천거 받은 지 수 년 만의 일이었다.
그날도 퇴청하자마자 김정, 김식, 김구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광조의 사랑방에 모여 술잔을 돌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치를 위해 자신들이 추진해왔던 개혁의 성과를 놓고 자화자찬도 하고, 불평불만도 스스럼없이 터트리는 자리였다.
소격서 혁파, 현량과 시행, 지방 관청의 여악 폐지, 향약 실시, 정국공신 개정 등이 개혁의 성과라면 성과였다. 그러나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종사나 왕족과 양반들의 사유 토지제한 등은 아직도 조광조를 견제하는 일부 정승과 대신들의 반대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술자리에서는 진지한 얘기보다 가벼운 얘기가 먼저 나오게 마련이었다. 김식이 술을 마시다 말고 히죽 웃으며 물었다.
"정암, 그 간통 사건을 어찌 처리하였는가."
김식은 성균관 유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을 농담 삼아 묻고 있었다. 유생들이 대궐로 나아가 상소하고 성균관으로 돌아가던 중 종루(鐘樓)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한 유생의 유건(儒巾)을 빼앗아 찢으며 "이 자는 부자간에 한 계집을 간통한 사람이오. 그러니 우리 동지가 아니오."라고 창피를 주자, 그가 억울하여 통곡하고 난 뒤 사헌부에 진상을 가려줄 것을 호소한 사건이었다.
"유건을 찢은 유생들을 사헌부로 불러 조사했으나 부자가 한 계집을 간통했다는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었네."
"그렇다면 유건을 찢은 유생들을 어찌 벌할 참인가."
"행위는 예의를 벗어났으나 공부하는 유생으로서 의분(義憤)을 못 참아 그런 것이니 죄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허허. 봉변을 당한 유생만 억울하게 됐구먼."
"나로서는 억울함을 당한 유생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네. 몸가짐을 조심하여 착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면 변명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전날의 소문이 헐뜯는 데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고, 만일 행동이 어긋나서 좋지 못한 사람으로 알려지면 비록 변명을 하더라도 전날의 말이 과연 헛소리가 아니었다고 할 것이라고 타일렀지."
"기가 막힌 판결이네. 자네의 판단을 두고 뒷사람들은 '의혹을 처리하는 도리와 사람에게 착한 일을 권하는 두 가지의 방법을 함께 얻었다'고 할 걸세. 그러니 자네는 이 술을 받게나. 하하하."
그러나 김정은 조광조에게 불만스럽게 물었다.
"최근에 갖바치 대사를 만났다고 하는데 사실이오."
"마침 대사께서 금강산에서 오시었고 마음이 답답하여 대사를 만났소."
"갖바치 대사는 우리들의 일을 뭐라 하더이까."
"임금이 나를 신임하고 있으나 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고 말씀했소. 그러니 만일 소인이 이간을 붙이면 재앙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근신하는 것이 좋다고 했소."
김구가 강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전하께서는 정암 형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식도 김정의 우려에 동조했다.
"조심해야 할 것이네. 전하는 마지못해서 경연만 들어오실 뿐 요즘 들어 야대(夜對)에는 임어(臨御)하시지 않으니 말이네. 초저녁부터 홍빈과 박빈의 처소로 가버리시곤 하니 뭔가 예전 같지 않으이."
"전날부터 내가 조정을 떠나 궁벽한 고을로 가 공부하고자 사임을 청한 것도 우리 일이 실패할 것은 두려움 같은 것이 들어서였네.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 뒤로 물러나 우리 일을 살피고 싶었던 거네."
"정암 형님, 뭐가 두렵다는 것입니까. 홍문관과 양사를 우리 동지들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의정 안당 어른도 우리 일을 밀어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렵다는 것입니까."
"앞날의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나부터 자만에 빠진 것은 아닌지 내 부덕을 경계하고 있다네. 요즘에는 나까지 교만하고 거만해졌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있지 않은가."
"정암, 호조판서에게 결례한 일을 두고 한 말인가."
"내가 좀 지나쳤지."
조광조는 자신보다 19살이나 연장인 호조판서 고형산에게 실수한 일을 떠올리며 몹시 부끄러워했다. 며칠 전 아침 입궐 길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조광조는 경연에 늦지 않으려고 교자를 타고 바삐 가는 길이었는데, 마침 호조판서 고형산이 탄 교자가 앞에서 길을 막고 늑장을 부리며 가고 있었다. 조광조의 교자꾼이 소리쳐 알렸으나 고형산의 수행원이 들은 체도 하지 않았으므로 조광조는 그날 바로 고형산의 수행원을 구속해버렸다. 그러나 조광조는 하루 만에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뉘우치고는 바로 고형산의 수행원을 풀어주었던 사건이었다.
"고 대감이 한 바는 사대부가 길을 양보하는 미풍을 크게 잃어버린 것이니 허물이 분명하고, 비록 사헌부가 풍속을 검속하고 다스리기는 하나 저쪽은 중신(重臣)으로 내가 규찰해서 바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 수행원을 대신 다스린 것이지만 내가 지나친 것 또한 분명한 일이었네."
"내가 알기로는 고 대감이 처음에는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자네의 말을 전해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하던데."
"고 대감만의 문제가 아니네. 남곤 심정 등이 나를 교만하다고 몰아붙이니 그게 더 부담스럽네. 하긴 그 소인배들이야 늘 그래왔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지. 더 큰 화근은 우리 동지들에게 있어."
"동지들이라니."
"우리가 추천하여 관리가 된 자들 중에는 명예를 좋아하는 자도 끼어 있고, 논박을 너무 좋아하여 대신들에게 쓸데없이 원한을 사고 있는 이도 있어. 더구나 동지들 끼리 자중지란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이조판서 신상(申鏛)의 자격 문제로 조광조의 동지들끼리 자중지란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연산주 때 문과에 급제한 신상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한 선비로 조광조의 지원을 받아 이조판서가 되었는데, 성미가 급한 김식은 그를 싫어했다. 신진 세력과 구신들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으려 하는 신상의 분명치 못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식을 천하제일의 선비라고 추종하던 정언 권전은 신상을 자주 논박했고, 이에 조광조가 그를 불러 조용히 타일렀으나 오히려 조광조를 탄핵하려 드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자연 조광조의 동지들은 은연중 두 패로 갈리었다. 개혁을 완만하더라도 용의주도하게 추진하려는 조광조와 잘못된 제도를 일거에 혁파해야 한다는 김식의 태도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다.
조광조가 자중지란을 지적하자, 술자리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져버렸다. 김식은 듣기가 거북했던지 갑자기 헛기침을 했고, 시비를 가르기 좋아하고 우직하게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는 김정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광조가 마음속에 담고 있던 한 마디를 더 했다.
"기준에게 말한 적이 있지만 내가 물러나야 할 때가 된 것도 같소. 수신이 덜 되고 학문이 부족하니 이런 불화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오."
김구가 당황하여 말했다.
"형님, 우리가 벌려놓은 일은 어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형님이 가신다면 누가 가장 좋아하겠습니까. 조정은 금세 소인들이 장악하여 전하의 눈과 귀는 곧 어두워져버릴 것입니다. 좀 전에 형님께서도 소인들이 이간을 붙이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조광조가 중종에게 여러 번 사임을 청했던 것은 무엇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었다. 조광조가 참으로 두려워한 것은 조정의 소인배들이 아니라 동지들끼리의 자중지란이었다.
이윽고 굵은 빗방울이 뜰의 화초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먹구름장이 몰려온 허공은 밤인 듯 캄캄해졌다. 장대비가 한바탕 거세게 쏟아지려고 했다. 천둥 번개가 또 쳐댔다. 구름장과 구름장이 부딪쳐 나는 천둥소리는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조광조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밖을 쳐다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동지들 간에 불화가 생기니 지치는 고사하고 무슨 재앙을 당할지 모르겠구나. 수신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구나.'
마침내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마루까지 튀어 오른 빗방울이 방안으로 들기도 했다. 그때였다. 제법 하급관리 티가 나는 역관 한천이 비에 흠뻑 젖은 채 들어왔다. 도롱이도 걸치지 않은 채 비를 맞고 달려올 정도면 그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웬일이냐."
"정암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허허, 경망스럽구나. 빗물을 닦고 들어와 차분하게 일러라."
그러나 한천은 울상이 다 돼 있었다.
"남곤과 심정, 홍경주가 매일 만나 음흉한 흉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냐."
"남 대감 댁을 갔다가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저들은 전하의 마음이 정암 선생님을 떠나 저들에게 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흉계를 꾸미고 있습니다."
조광조는 지난번처럼 한천을 야단치지 않았다. 번개처럼 빠르게 뇌리를 스친 중종의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이중적인 그런 태도였다. 겉으로는 조광조의 말을 듣고 신임하는 척하지만 직언할 때마다 듣기가 거북한 듯 자세를 고쳐 앉거나 얼굴빛이 자주 변했던 것이다.
"비를 맞으며 달려온 너를 보니 알 만하구나."
김식은 조광조와 달리 한천을 다그쳤다.
"왜 남 대감 집을 갔느냐."
"남 대감은 저를 의심하지 않고 부릅니다. 중국에 갔을 때 제가 병간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신임하여 심부름을 시킵니다."
"그래, 전하의 마음이 정암을 떠났다는 말만 하더냐."
"아닙니다. 소름 끼치는 얘기를 듣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어서 말해보아라."
"남 대감이 정암 선생님을 제거해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정이 소리 나게 웃었다.
"사신으로 함께 간 남곤을 두고 한충 동지가 말했다지. 사림의 씨를 말릴 사람이라고 말이네. 내가 남곤을 더 궁지로 몰아 파직시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되는구나."
김정이, 명나라 주청사로 가 종계 개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온 남곤을 탄핵하려다 실패했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김정은 주청사의 대사인 남곤이 3년이고 4년이고 명나라 황실 앞에서 기다리다 종계 개정의 숙원을 풀고 돌아왔어야 했다고 논박했던 것이다.
김정의 말에 한천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움찔했다.
"제가 남 대감을 병간한 것은 측은지심에서였습니다. 그뿐입니다."
"자네를 책망하고 싶지는 않네. 다만 남곤이 중국에서 병사했으면 오늘날의 조정이 덜 시끄러워졌을 것이네."
조광조는 할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어두운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한천이 급하게 전하는 얘기를 듣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나를 제거한다는 얘기는 새롭지 않다. 최근에는 우리 동지라고 생각했던 권전이 나를 탄핵하려드는 판국인데 소싯적부터 악연인 그자들이 나를 제거하려 하는데 무에 놀랄 게 있겠느냐."
김정도 마찬가지의 감정을 토로했다.
"정암이나 나나 그 자들과 전생에 원수였던 모양이오. 그렇지 않고서야 매사 부딪치고 가는 길이 이렇게 다를 수야 있겠소."
한천은 너무 놀라 허둥지둥 뛰어왔지만 조광조와 김정, 김식, 김구는 한천의 얘기를 가볍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들과 오랜 동안 등을 돌린 채 다퉈왔기 때문에 한천과 달리 경계심 같은 것이 둔감해진 탓이었다.
장대비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천둥 번개도 계속해서 쳐댔다. 한천은 남곤의 심부름을 마저 해야 한다며 돌아갔고, 날이 더 어둑어둑해질 무렵에는 거문고를 맨 진사 최수성(崔壽峸)이 찾아왔다. 도롱이를 걸쳤으나 그 역시도 거센 장대비에 온몸이 젖어 마치 저승사자 같은 몰골로 서 있었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최수성을 보고 모두 놀랐다.
최수성은 김굉필이 희천으로 유배를 갔을 때 그곳에서 조광조와 함께 공부를 한 동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사가 된 후로는 성균관에 들어가지 않고 속세를 피하여 유명한 산수를 두루 찾아다닐 뿐이었다. 성격이 시원스러운 그는 얽매임을 극도로 싫어했다. 가는 곳마다 소나무로 거문고를 만들어 타고는 버린 뒤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곤 했다.
최수성이 부인을 얻은 사연도 세인들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한급(韓汲)이 강릉 부사가 되어 청백당을 짓고 스스로 청렴한 체하다가 얼마 뒤 뇌물을 받아 구속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한급에게는 출가하지 않은 딸이 하나 있었고, 모두 그녀와 혼인하기를 꺼려하자 최수성이 자청해서 한급의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조광조는 최수성이 들고 있던 거문고를 받아들고 말했다.
"원정(猿亭; 최수성의 호), 어서 오게."
"정암, 나는 여기 서 있겠네. 퍼붓는 비가 좋아. 헛생각으로 가득 찬 내 머리 속을 씻어주는 것 같으이."
벼슬하지 못한 유생들이 너도나도 소매통이 넓은 옷을 입고 다니는데 비해 최수성은 팔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은 소매의 저고리를 걸치고 있었다. 조광조는 왜 그가 유행을 거스르며 그런 옷을 입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벼슬할 의사가 없는 최수성이 세상을 희롱하고자 그런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었다. 김정도 일어나 최수성을 맞이했다.
"자네가 거기서 비를 맞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어서 들어오시게."
그러나 최수성은 미친 듯이 웃어젖히며 말했다.
"원충(김정의 호), 내 그림에다 자네는 이렇게 화제(畵題)를 단 적이 있지. 붓으로 벽에 그린 내 그림에다 말이네."
맑은 새벽 바위 봉우리에 올라서니
흰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는구나
산허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먼 강의 나무들만 푸르네.
淸曉巖峰立
白雲橫翠微
翠微人不見
江樹遠依依
마지막 두 구절을 읊조리는 최수성은 울먹이고 있었다. 웃다가 우는 최수성의 마음을 도대체 짐작할 수 없으니 모두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여전히 퍼붓는 비를 맞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최수성이 평소 술친구였던 김식에게 한 마디 했다.
"노천(老泉; 김식의 호), 술 한 그릇 따라 주게."
김식이 말없이 술을 한 그릇 따라 비를 맞고 있는 최수성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가 단숨에 술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
"난파선에 탄 것 같으이. 나 또한 물에 빠져 죽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술을 한 잔 하고 나니 놀란 가슴이 진정되네 그려."
그러더니 최수성은 인사도 하지 않고 휙 나가버렸다. 그의 행동을 멍하니 보고 있던 김식이 말했다.
"기이한 재주를 가진 친구가 미쳐가는군. 우리가 지치를 이루려는 세상이 난파선이라는 말인가."
조광조가 어두운 얼굴로 김식에게 말했다.
"아닐세, 난파선은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리키는 것일세. 자네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군."
조광조는 최수성이 사라진 문 밖으로 나가 마치 그와 긴 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바람에 조광조의 옷도 내리퍼붓는 장대비에 금세 젖어 버렸다. 조광조는 최수성의 심정을 이해했다.
'자네는 미치지 않았어. 자네가 나를 찾아온 것은 나를 책망하고자 그랬을 것이야. 스승처럼 도학에 묻혀 살 것이지 왜 속세로 나왔느냐고 꾸짖고 싶었을 테지.'
조광조는 마음속에 앙금으로 쌓여가던 것들이 조금이나마 씻어지는 듯했고, 최수성과 함께 희천 땅에서 스승 김굉필에게 공부하던 시절이 그리웠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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