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14년 봄.
인왕산과 남산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날이었다. 중종은 우의정 안당의 집에 술과 고기를 하사했다. 안당의 아들, 처근, 처겸, 처함 삼형제가 모두 현량과에 급제했기 때문이었다. 안당 집 마당은 봄날 화전놀이를 하듯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초대를 받아 마지못해 안당의 집으로 간 공조판서 한형윤(韓亨允)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현량과가 무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삼형제가 참으로 급제했다면 정말로 축하할 일이지만.'
안당의 집 방들에는 조광조 동지들이 하객으로 앉아서 즐겁게 떠들고 있었으므로 한형윤은 불청객처럼 한 자리 차지하는 것조차 거북하여 안당에게 축하의 말만 전하고 집을 나와 버렸다. 안당의 아들 삼형제가 추천을 받아 급제한 사실을 두고 한형윤뿐만 아니라 남곤도 의심의 눈을 거두지 않았다. 뒤따라 나온 남곤이 한형윤의 귀에다 대고 한 마디 했다.
"한 대감, 좀 전에 무얼 투덜거리었소. 안 정승의 아들 삼형제가 현량과에 급제하니 배가 아파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삼형제가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급제했다면 안씨 가문이 아니라 나라 안의 경사가 아니겠소만."
"무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합니까. 전하께서 술과 고기를 하사하시어 자축연을 벌이는 집에 와서 말이오."
"남곤 대감, 변죽 올리지 마시오. 남 대감이야말로 작년 내내 현량과를 반대한 대신이 아니오."
"조광조가 전하의 귀를 막게 하고 눈을 흐리게 하니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있을 수만은 없었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리를 물리고 반대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오."
한형윤은 남곤이나 심정에 비해 신진 사림들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대신은 아니었다. 나이 든 대신 중에서 그나마 온건한 편이었다. 일찍이 청백리에 선정되어 신망이 있고 경기도 관찰사와 판서를 두루 역임한 대신이었다. 그런 그이지만 추천제를 통해서 과거를 보게 하는 현량과만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추천하는 사람에 따라서 과거 응시자가 정해지므로 시행하다 보면 반드시 부조리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었다. 안당의 아들들이 동시 합격한 것도 추천하는 사람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었다.
"이제야 내가 조정에서 계속해서 반대한 의도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현량과 급제자들 대부분이 조광조 선후배 일색이니 남 대감은 앞으로 조정을 어찌 해쳐나가려 하오."
한형윤이 한탄을 하자, 남곤이 자신을 위로하는 말로 대꾸했다.
"한 대감, 조광조의 천하가 된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작년 소격서 문제로 조광조를 대하는 전하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여악을 혁파하는 문제도 그렇겠구려."
"그렇소이다."
소격서 혁파 문제로 중종과 조광조가 갈등했던 것과 같은 사건이 최근에 또 벌어지고 있었다. 조광조가 풍기문란을 이유로 궁중 연회나 지방에서 기생과 창기가 춤추고 노래하며 몸을 파는 여악(女樂)을 혁파하자고 하는데 비해 중종은 오랜 전통이니 없애지는 말고 개선하자고 버티었다. 그러나 조광조는 건전한 연회를 위해서는 여악을 남악으로 대체하거나 늙은 기생이나 여자 소경을 부르자는 등의 의견으로 중종을 압박했다.
"전하께서는 조광조에게 또 염증을 내기 시작한 것 같소이다."
"처음 듣는 소립니다. 허나 조정은 지금 조광조의 세상이 아닙니까. 현량과도 조광조의 뜻대로 이미 치렀고요."
"그거야 작년에 전하가 약속한 사항이니 별 수 없이 시행한 것이지요."
중종 14년 4월 10일, 지방과 중앙의 관리들이 천거한 120명의 응시자들을 대궐 정원에 모아놓고 과거를 치렀던 것이다. 합격자 28명은 4일 후 발표되었는데, 전체 장원인 갑과는 김식이, 전체 차석인 을과는 조우(趙佑)가, 병과 26명 중에서 1등은 이연경(李延慶)이 차지한바, 대부분 조광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남곤과 심정 등 나이 든 대신들이 고운 눈으로 쳐다볼 리 없었다. 현량과를 시행한 결과 조광조의 세력만 커진 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현량과 시행에도 불구하고 크게 만족하지는 않았다. 일찍이 서얼출신인 박경과 약속한 대로 양반 상민, 천인, 서얼 등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덕행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천거하여 등용하려고 했지만 정광필, 신용개, 남곤 등 정승과 대신들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던 까닭이었다.
남곤과 한형윤은 심정의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한형윤은 심정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으므로 지나치려고 했으나 남곤이 한형윤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한 대감, 무에 그리 바삐 가시려고 합니까. 어디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허허. 좋은 일 없소이다. 요즘에는 연산군 때와 같이 유배라도 가서 세상을 잊고 싶은 심정이오. 젊은 선비들이 나이 든 우리를 자꾸 낡은 물건 대하듯 하니 말이오."
"심 대감 집에 들어 위로의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가시지요."
그러나 한형윤은 남곤의 제의를 뿌리치고 가버렸다. 남곤은 한형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는 심정의 집으로 들어갔다. 심정의 사랑방에는 이미 안당의 집에서 빠져나온 홍경주, 장순손, 조계상, 이행 등이 죽치고 앉아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막상 현량과가 실시되자 이들의 허탈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술로 치미는 분노를 누르고 있던 이행이 말했다.
"자, 술이나 한잔 합시다. 뒷북을 쳐서 얻을 게 무엇이겠소."
콧구멍이 들려 돼지머리를 연사케 하는 장순손이 두 팔을 크게 휘저으며 말했다.
"여기 모인 분들은 그나마 정국공신에서 삭훈(削勳)되지 않은 것 같소이다. 사선(死線)을 몇 번씩이나 넘은 노장들인데 그까짓 공훈이 뭐 대숩니까. 자진 반납해버립시다. 연산군 때 우린 이미 죽은 목숨 아니었습니까. 이행 대감, 아니 그렇습니까."
장순손 역시 연산주 때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었다. 연산주가 성주 기생을 끼고 돌 때였다. 종묘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뒤 돼지머리를 연산주에게 올렸는데, 그때 성주 기생이 돼지머리를 보고서는 웃었던 것이다. 연산주가 그 까닭을 물으니 기생이 "성주사람 장순손 얼굴이 돼지머리와 같이 생겼으므로 사람들은 장을 가리켜 '돼지대가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웃었습니다."고 하자 연산주는 "장순손은 반드시 너의 애부(愛夫)일 것이다. 빨리 돼지대가리를 베어 바치라"고 노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순손은 도사에게 잡혀 서울로 오는 도중 중종반정이 일어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니 아슬아슬하게 사선을 넘은 셈이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조계상이, 유언비어를 퍼트리다 잡히어 유배를 간 김우증의 말을 꺼냈다.
"조광조와 김정 등이 박원종 대감의 관을 무덤에서 꺼내 쪼갠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러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입니다."
남곤은 수염을 쓸며 눈을 감았다. 정국공신 삭훈 문제로 조정이 시끄러워지자, 예조판서인 자신은 영릉 제사를 핑계로 자리를 피해버렸던 것이다. 조광조 등에게 간사한 자라고 규탄을 받았지만 남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결국은 소격서 혁파 때와 마찬가지로 중종은 조광조에게 굴복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정국 1등 공신인 홍경주가 참여하여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삭훈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삭훈된 자는 76인이나 되었다. 앞서 삭훈된 12명까지 합치면 88명이므로 정국공신으로 남게 된 사람은 29명이었다.
중종도 공신 삭훈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중종도 반정의 3대장에게 대군시절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노공필 등을 공신록에 올리도록 부탁한 원죄가 있었으므로 국기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밀어붙이는 조광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난 왜 나이 어린 그 자들과 원수가 되었는지 모르겠네. 김정만 해도 나보다 15살이나 아래가 아닌가."
심정이나 홍경주에 비해 김종직의 제자로서 공부를 많이 하고 문장에 뛰어난 남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정이 한때 조광조의 재주를 인정하여 선후배로서 교유가 다소 있었으나 원수가 된 것처럼 남곤과 김정 간에도 가까이할 수 없는 악연이 계속됐다. 그들의 악연은 김정이 벼슬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어느 민가에서 술에 취한 김정을 만난 남곤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김정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너무 고명하신지라 만나기 어려운 인물로만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마주치게 되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망천도(輞川圖)를 얻었기에 원충(元冲; 김정의 호)에게 화제(畵題)를 받았으면 하오."
"대선배께서 부탁하신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망천도란 산수화인데 망천이란 당나라 시인 왕유가 살던 별장 부근의 개울이었다. 남곤은 서둘러 종을 시켜 그림을 가져오게 하였다. 술에 취한 김정은 남곤에 대한 선입견이 별로 좋지 않았으므로 붓을 들더니 성의 없이 화제를 써내려갔다.
떨어지는 해는 서산으로 내리고
외로운 연기는 먼 나무에서 나온다
복건(幞巾)을 쓴 서너 사람
망천의 주인은 누구인고.
落日下西山
孤烟生遠樹
幞巾三四人
誰是輞川主
남곤은 후배에게 수모를 당하면서도 감정을 숨기고 말했다.
"참으로 좋은 명문이오."
심정이나 홍경주였다면 멱살잡이라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남곤은 김종직의 제자라는 자부심으로 수모를 견디었다. 언젠가 너희들이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때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참았다.
종계개정주청사로 갔을 때 한충과 이자의 언행도 남곤에게 지울 수 없는 감정의 앙금을 남겼다. 명나라 수도에서 병이 나 드러누워 있는데, 부대사(副大使) 이자와 서장관 한충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 조광조 사람으로서 한충이 먼저 "저놈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선비들의 씨를 없애고 말 것이다."고 하자, 이자가 "이 간인(奸人)이 죽는 것은 애석할 것이 없으나 만리타국에 함께 와서 어찌 앉아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 구원하지 않겠는가" 하고 저주와 같은 악담을 퍼부었던 것이다.
남곤은 자신을 간인이라고 하니 기가 막혔다. 그러나 그때 남곤은 못 들은 체했다. 조광조 사람인 그들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기회만 나면 자신을 탄핵하겠다고 나서는 대간들인 것이었다.
성격이 급하여 참을성이 없는 조계상이 말했다.
"나라가 초상집 같이 변하고 있소이다. 술자리에 기생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금지하라고 하니 그런 것입니다."
"여악(女樂)을 없앤다고 도덕이 바로 섭니까. 여악이 있어서 성인군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남악(男樂)으로 대체하자는 의견도 있는 모양인데 음양의 조화라는 것을 두고 어찌 남자가 흥을 돋운단 말이오."
"조광조는 여자 소경을 연회에 불러 춤과 노래를 부르게 하면 여자 소경의 생계도 해결할 수 있고 자리가 음탕해지지 않을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 도통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술맛 떨어지는 소리가 아닙니까."
술만 마시던 심정이 조계상의 채근을 받고 한 마디 했다.
"조광조가 조정을 자기들 사람들로 채우더니 이제는 지방까지 향약(鄕約)이라는 것을 실시하여 조광조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고 있소. 주자가 만든 향약의 근본 취지야 좋지만 그자들의 속셈이 불손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오."
심정의 말대로 향약 실시의 목적은 유학의 정신과 맥을 같이 했다. 주자가 만든 동네사람들끼리 지켜야 할 생활규범으로서 네 가지 항목이 있는데, 덕업상권(德業相勸; 덕업을 서로 권하기), 과실상규(過失相規; 잘못을 서로 바로잡기), 예속상교(禮俗相交; 예절습속으로 서로 사귀기), 환난상휼(患難相恤; 환난이 생겼을 때 서로 돕기) 등이 그것이었다.
향약 문제도 남곤이 부작용을 들어 서울만큼은 실시하지 말자고 반대를 했다. 잘못을 다스리는 형조가 있고 엄연히 나라의 법이 있는데, 향약의 지역 책임자인 도약정(都約正)의 영향력에 따라 나라의 공권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종은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도움이 클 것이라고 주장하는 조광조의 손을 들어줌으로 해서 남곤의 반론은 또 다시 힘을 잃어버렸다. 좀체 화를 내지 않는 남곤이 분통을 터트렸다.
"심 대감, 우리 의견이 전하에게 받아들여진 것이 하나도 없구려. 이러고도 어찌 우리가 대신이라 할 수 있소. 소격서도 조광조의 뜻대로 폐지되었고, 현량과도 조광조의 뜻대로 시행되었고, 공신 삭훈도 조광조의 뜻대로 되었고, 여악도 그렇고, 향약도 그러하니 우리는 허수아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이행이 말했다.
"홍 대감은 왜 말없이 술만 마시는 것이오. 따님이 전하의 총애를 받고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시겠다는 것입니까. 동지들이 바보가 되고 허수아비가 돼 있는데 말이오."
그래도 홍경주는 술만 마실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정이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조광조는 오를 데까지 다 올랐습니다. 그러니 이제 내려올 일만 남았습니다."
조계상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심 대감, 그 자가 선선히 내려오겠소이까.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자는 것입니까."
"대감들은 어찌 그리 전하의 마음을 모른단 말이오. 답답하오. 그러고도 대신이라 할 수 있겠소이까."
심정은 술자리에 앉은 대신들을 나무랐다.
"사람들이 나를 꾀주머니라 부르나, 내가 아무리 꾀를 부려본들 어찌 하늘의 조화를 따를 수 있겠소이까. 나는 애초부터 이 일은 꾀를 부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꾀라고 여겼던 사람이오. 자, 보시오. 이제 조광조는 반드시 내려오게 돼 있소이다. 나락으로 떨어지게 돼 있소이다. 이걸 간파하지 못하는 그대들이 참으로 안타깝구려."
그러나 심정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정에게 귀를 가까이하기는커녕 고개를 젖히고 수염을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에야 홍경주가 한 마디 했다.
"심 대감, 말이 맞소. 소나기가 내릴 때는 피해야 하지요. 죽은 듯이 엎드려 있었지만 우리는 목숨을 보존했으니 큰일을 한 것입니다. 아니 그렇소이까."
그래도 모인 대신들이 콧방귀를 뀌자, 홍경주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내 딸 홍빈이 전해주는 얘기인데도 믿지 못하겠소이까. 전하가 조광조를 신(信)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으로는 멀리하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야 답답한 가슴이, 막힌 귀가 뚫립니까."
술이 취해 있던 대신들이 화들짝 놀랐다.
"홍 대감, 그것이 사실이오."
"오늘도 홍빈을 만나러 갑니다. 홍빈이 전하의 총애를 받는 한 우리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 세상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홍경주의 한 마디에 모두가 만세라도 부를 듯이 의기양양해졌고, 특히 심정과 남곤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홍경주는 크게 소리 내어 웃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미 홍경주는 홍빈을 이용하여 중종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모사를 꾸미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홍빈 역시 아버지를 탄핵하여 형조판서 자리를 물러나게 한 조광조를 홍씨 가문의 원수로 여겼고, 삼경이 넘도록 중종을 경연 자리에 묶어놓고 자신을 독수공방케 하는 조광조 등을 악귀처럼 저주하고 있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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