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후보가 '단일화 카드'를 꺼내게 한 일등 공신이 있다. 바로 호남이다. 지난 9월 당시 안 후보는 호남 지역에서 문 후보를 10%p 이상 차이로 앞서 갔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반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 결국 안 후보의 단일화 선언은 야권 단일화를 가장 열망하는 호남 지지율 회복을 위한 마지막 카드였다. 그가 선언을 한 곳도 '호남의 심장' 광주였다. 호남이 이번 단일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달 반 만의 반전. 이것은 문재인 후보의 공일까. 아니면 호남 주민의 한 때의 '바람'일까. 문 후보는 과연 이 상승세로 안 후보를 꺾고 단일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요동치는 호남 지역 민심의 향배를 지역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자는 지난 8일과 9일 1박 2일 동안 광주·전남 지역을 돌며 오피니언 리더 8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언론인, 교수, 법조인, 시민단체활동가, 시·도의원 등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또 동시에 호남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호남 터줏대감'으로서 이번 단일화를 전망했다. 일부 시·도의원들의 경우 일정상 전화통화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대체했다. 다음은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좌담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호남 내 기득권 구조를 탈피해야 한다'. '호남 주민들의 표를 결정짓는 것은 가치와 비전이지, 돈 몇 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호남 사람들을 쉽게 보지 말라'. 호남 민심은 아직도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를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편집자주
인터뷰 참가자 소개 황정훈(가명) : 지역 공중파 방송사 PD. 지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당시 문 후보를 인터뷰한 바 있다. 오승용 : 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연구교수. 최근 선거와 관련된 연구 중에 있다. 김광민(가명) : 현직 변호사. 전직 검사. 지난 4·11 총선에서 광주 한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윤영덕 :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혁신 정권교체 광주시민행동'을 이끌고 있다. 최지현 : 광주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 국장. 윤 교수와 함께 '정치혁신 정권교체 광주시민행동'을 조직해 활동 중이다. 윤미희(가명) : 전라남도 강진군의회 의원 서옥기 : 전라남도 도의회 의원 조재근 : 전라남도 도의회 의원 |
"문재인 지지 낮은 건 盧 정부 '호남 홀대' 때문 아냐"
프레시안 : 바쁘신 와중에 만나주셔서 고맙고 반갑다. 그간 호남 지역에서 안철수 후보가 단연 인기였다. 바꿔 말해,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의 전통 지지 기반인 지역에서 부진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황정훈 : 나는 방송국 PD다. 일전에 이 지역 대학생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민주당을 지지한다더라. 그래서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대안이 없어서란다. 민주당이 호남을 텃밭이라고 하면서도 과연 뭘 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을 보면, 늘 당선은 되는데 지지율은 또 늘 낮다. 결국 호남 국회의원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에 대한 회의로, 그게 다시 후보에게 옮겨지는 것이다. 차마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는 못하겠고, 대안을 생각해보니 안 후보가 낫겠다 싶은 거다.
오승용 : 그렇다. 호남의 민주당 독점체제에 대한 반작용이다. DJ 때까진 문제가 있었어도 정권교체가 절체절명의 지상과제였기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표출할 수 없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면서 그런 상황이 바뀌길 기대했는데 국민 삶이 바뀌거나 당 독점 체제가 바뀌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호남에서는 민주당 독점체제가 가속화됐다. 민주당에 대한 오랜 불신이 후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왔기에 대안에 대한 갈망이 제일 컸다고 볼 수 있다.
윤영덕 : 호남 사람들이 참 영리하다. 전략적으로 판단한다. 이쪽 지역에서 안 후보의 지지율이 상당한 격차로 높았었다는 건, 한편으론 문 후보를 통해 민주당을 압박했던 거다. 실제 투표장에 가서는 모르겠지만. '너희가 미래가치나 혁신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조재근 : 당 전체의 문제로만 볼 순 없다. 후보와 측근의 문제도 있다. 여기(호남) 사람들이 문 후보에게 애정 갖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흔히 말하는 참여정부의 '호남 홀대' 때문이 아니다. 그보단 이번 경선 과정에서 당원이 배제된 데 대한 서운함과 소외감이다. 민주당 텃밭이 광주고. 당원 대부분이 호남 사람인데도 당원을 배제하고 모바일로 국민경선을 치렀다. 당연히 우리가 뽑은 후보란 생각이 안 들 수밖에 없다. 지도부에 대한 서운함도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공천에서부터 문제가 많았는데, 결국 총선에서 혼자만 살았다.
물론 나도 지난 경선 당시에 절대 호남후보로는 정권교체가 안 된다는 생각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긴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도의원이 43명인데 5명만 문 후보를 지지할 뿐, 나머지는 아니다.
윤미희 : 경선 문제에 대해선 할 말이 아주 많다. 대선 단일화 방식 얘기할 때도 모바일투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지도부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모바일 선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선거 범법자가 양산되고 있다. 전남은 그야말로 촌이다. 시골에서 김매고 밭매는 사람들은 모바일이 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모바일 투표를 시행했다. 선거 준비하는 사람 입장으로선 아주 골치다. 모바일 선거가 이해찬 대표의 작품 아닌가.
게다가, 당원 비율을 보면 호남 스무 명 대 영남 한 명이다. 그런데도 여러 가지 당원혜택이랄지 이런 부분에선 영·호남이 동등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당원이 소외되는 선거라는 게 바로 이런 걸 이야기한다. 이런 불만이 있으니 호남 지역 당원들이 정작 대선에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안철수 현상은 있되 안철수 돌풍은 없었다"
프레시안 : 9월 중하순 때까지만 하더라도 두 후보 간 지지율 차가 꽤 컸다. 판세가 쉽게 바뀌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결국 뒤집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황정훈 : 히틀러가 가장 많이 쓴 말이 '국민'이라고 한다. 뭐든 '국민이 원해서 한다'는 식인데, 그 안에는 '왓(What)'과 '하우(How)'가 없다. 그게 가장 무서운 것이다. 안 후보의 정책을 보면 그림이 없다. 출마 선언 이후 여러 가지 정치적인 스탠스(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내놓는 그림들이 너무 막연하다. 특히 정치혁신 문제는 스스로도 실기라고 생각했는지 말을 좀 바꾸더라.
안철수의 정치개혁은 정략적인 느낌이 든다. 그는 정치권에서 메이저가 아니다. 그런 판에서 정치개혁을 말하는 것은 자기가 없는 판에 끼어들겠다는 얘기다. 요즘 또 신당 창당 얘기가 나오던데, 정치개혁이라는 게 당을 새로 만들면 정치가 새로워지나. 이미 안 후보가 제시한 그림이 새롭지 않다. 공동선대위원장을 맡는 송호창, 김성식, 박선숙 이 세 사람의 조합, 이들이 갖는 이미지가 새로운 그림인가. 결국 새로운 게 아니라 과거의 정치판에 끼어든 것이다.
정반합으로 가듯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갔다가 새로운 합 즉 대안을 찾았지만, 안 후보가 그걸 캐치 못 한 거고 그래서 다시 문 후보 쪽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반면 문 후보의 장점이라면,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자기 자신을 묶는 것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번에도 (광주에) 와서 사과하지 않았나.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는 게 국민한테 보이는 거다.
오승용 : 안철수 현상은 있되 안철수 돌풍은 없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안철수에 투영되면서 사회적 현상으로 지칭될 정도로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과거 노풍과 비교했을 때, 사회적인 여파는 비슷하지만 후보자 능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유권자들은 지지할 마음의 준비가 됐는데 흡입력이 없다. 노사모와 안 후보 지지 세력의 조직화 과정을 봐도 그렇다. 이쪽은 굉장히 다운돼있다. 안 후보가 가지는 교수, 사업가. 교수 출신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구체성이 없을뿐 아니라, 의원 정수 축소 논란에서 보듯 사업가적 마인드도 엿보인다. 대한민국 유권자 열망 충족하기에 안 후보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서옥기 : 정치권의 힘도 무시할 수 없다. (정치권) 밖에서 볼 땐 선거운동을 안 하는 것 같지만, 당 지도부 인사들이 보이지 않게 열심히 하고 있다. 이낙연, 우윤근 의원은 아주 열심이다. 오늘만 해도 권노갑 의원이나 천정배 의원 등도 내려와서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곧 올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광주만 빼면 전북, 전남 모두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이기고 있다. 당내에서도 지역구 시·도의원들이 각자 가진 불만들은 있겠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당 후보가 되는 게 맞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당이 움직이는 것과 아닌 것에는 차이가 크다.
프레시안 : 두 후보가 후보등록 전 단일화를 약속했다. 그렇다면 후보등록일(25~26일)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단일화가 성사될 것이다. 등록일까지 2주 가량 남았다. 단일화 방식이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유권자가 최종 선택하는 경우라면 호남 유권자들은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
오승용 : 적어도 호남에선 문 후보에게 유리하다.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쟁점 없는 선거는 현상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선거가 바로 쟁점 없는 선거다. 야권 단일화 문제로 모든 정책이슈가 묻히고 있다. '단일화 카드'도 안 후보가 호남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니 마지못해 꺼낸 것 아닌가. 이 국면에서 확실하게 다른 카드를 내놓지 않는 이상 문 후보가 상승세인 이 판을 뒤집긴 힘들다.
또 하나, 곧 예산 정국이다. 안 후보에게는 아주 불리한 시점이다. 각 지역에서 예산국회 시작되면 그 과정에서 의제설정에서 안 후보가 낄 여지가 없다. 당에서 지역 의원들을 총동원해 지역 예산을 끌어오려고 노력을 할 텐데, 민주당이 그러는 사이 안 후보 쪽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127 대 1'이라는 게 무섭단 거다. 그리고 아직은 움직임이 미미하지만, 본격적으로 단일화 협상에 착수하면 민주당은 조직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내 생각에 조직이나 당의 힘으로 만회할 수 있는 여론이 넉넉잡아 5%p는 된다고 본다. 민주당은 다년간 여론조사, 경선 등을 통해 노하우를 쌓았다. 이 점을 안 후보 캠프에서는 따라갈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브래들리 효과'를 들 수 있다. 선거 전 우세하던 비(非) 백인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는 득표율이 낮게 나오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4·11 총선 당시 광주 서구 선거다. 여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사전 여론조사 상으로는 진 적이 거의 없었는데 본선에선 야권 후보인 오병윤 후보에게 졌다. 그때 사람들이 대놓고 얘기했다. '오병윤, 내가 당신 좋아서 찍은 거 아니다'라고. 이런 전략적 투표를 무시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여론조사는 단순히 '누구를 좋아하느냐'였다. 그래서 안 후보가 지금까지는 높게 나왔다. 그러나 만일 후보가 결정되는 여론조사라는 걸 알면 호남 사람들은 분명 고민을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밥그릇보다 가치에 충실', 이것이 호남 자존심
프레시안 : 호남 지역 공약은 어떤가. 일단은 지역 주민들에게 두 후보의 공약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는 것 같다. 지역공약이 표심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는가.
최지현 : 지역 환경단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선거철만 되면 낙후된 호남을 위한다며 후보마다 개발공약을 내놓는다. 개발공약이 있어야만 주민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 보는 거다. 그렇지만 이젠 아무도 어떤 지역공약도 지역의 미래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지 않는다. 영남도 마찬가지다. 신공항이니 이런 것들은 결과적으로 다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 식의 개발 공약은 바람직하지 않고, 일반 서민들의 삶에 최소한 보편적인 부분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호남 유권자들의 수준을 개발공약 하나 던져주면 괜찮겠지 하는 걸로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윤영덕 : 그렇다. 이번 대선 후보들이 과연 제대로 시대를 읽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지금 유권자들은 개발 공약에 흔들리지 않는다. 1980년대 이후 호남은 시대정신을 보고 투표를 한다. 정치인을 통해 내 삶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황정훈 : 같은 생각이다. 호남 사람들은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명분을 먼저 생각한다. 내 밥그릇보다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총선에서 지역 공약 부분에서 오병윤은 피상적인 얘길 했다. 이정현은 구체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오병윤이 이정현을 이겼다. 당장 후보들이 시장에 가면 여러 요구사항을 듣겠지만, 그걸 안 들어준다고 투표를 안 하는 게 아니다. 정작 지역발전에 민감한 사람들은 호남 주민들이 아니라 지역 정치인들이다. 지역 개발은 자기들의 헤게모니 관철시키려는 위한 방편인 거다.
후보들이 광주에 와서 문화수도 이야기를 한다. 문화수도 발전을 위해 2014년까지 투자하겠다는 식의 얘기다. 가장 일차원적인 그림이다. 지역 발전이란 게 예산만 던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왜 광주가 문화수도가 돼야하는지를 정치인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돈만 끌어다 줄 게 아니라 더 본질적인 문제, 서울중심의 구조를 어떻게 광주로 흐르게 할 건가. 한예종 같은 예술 대학을 지역에 유치하거나 문화적인 포럼을 만든다든가 그런 구체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문화수도 만들겠다는 '왓(What)'이 있다면 '하우(How)'도 있어야 한다.
"박지원이 호남 대표 정치인이라고? 천만의 말씀"
프레시안 : 아까 얘기 중에 호남 정치인의 문제가 나왔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건가.
황정훈 : 서울,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박지원이 호남의 대표 정치인이라고 보는가? 호남 출신 정치인은 맞다. 그러나 그분이 호남을 대표한다고 볼 순 없다. 당장 지역 주민들의 생각이 그렇다. '미래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이 호남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지역 주민 입장에서 그분은 그저 노회한 정치인일 뿐이다. 사실 이건 단지 국회의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호남 정치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착시처럼 주류로는 보이지만, 미래세력은 아니라는 것이 맹점이다.
윤영덕 : 호남에선 민주당이 거의 독점정치구조인데, 그럼에도 우리 지역은 바뀌지 않고 않다. 다른 지역은 개혁적인 사람들이 지자체장도 되고, 세대교체도 이뤄지는 것 같다. 근데 여기는 늘 정체돼있고, 소위 그런 단체장들이 주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된다거나, 지역자치단체 운영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거나 그럴 일이 없다. 한 마디로 자부심이 안 생기는 것이다. 지역 정치인에 대해.
김광민 : 호남 정치인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당 지도 체제 때문이다. 나는 지난 총선 때 광주 한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공천 후보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더라. 아무리 공천위원회를 신설하면 뭐하나. 기본적으로 민주당에 내재된 마인드는 '호남은 우리 것'이란 것이다. 아무리 지역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돼 있어도, 이미 공천 과정 이전에 지역구 후보는 당내 기반에 따라 거의 정해져 있다. 이 틀을 절대 못 깬다. 사실 민주당이 야당이라곤 하지만 말이 야당이지, 국회 권력의 40%를 지닌 막강한 힘을 가진 거대 당이다.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안 후보를 지지한다. 안 후보가 말한 정치개혁 방안으로 보자면, 국회의원 수는 줄어들망정 적어도 이 지역 내 민주당의 기득권 틀은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본다.
프레시안 : 민주통합당 내부 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통합당 안팎에서 이해찬 대표, 박지원 원내대표가 퇴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불 붙듯 퍼졌다. 이들 지도부의 퇴진이 마땅한가. 또, 문 후보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조재근 : 도움이 될 거다. 물론 그분들이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어차피 의원직 던지라는 얘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보면 문 후보가 이해찬의 눈치를 보고 있다. 과감하게 읍참마속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 후보에게 맺고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게 위엄이다. 강한 추진력, 그걸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은 기다리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오바마가 롬니보다 더 강해 보여서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강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황정훈 : 지도부 퇴진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끼리의 문제'라고 본다. 국민들에게는 심지어는 호남 유권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가 호남 유권자들을 고려해서 박 원내대표를 내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이야기했듯 이곳 주민들은 박 원내대표에 대해 자기 정체성을 투영시키지 않고 있다. 국민들과는 크게 관련 없는 얘기다.
오승용 : 글쎄다. 이미 얘기했지만, 국회에선 이제 내년도 예산편성에 들어간다. 선거 끝난 뒤라면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문 후보 입장에서 '박 카드'를 쉽게 버리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노무현의 '서민 행보' 왜 아끼나?
프레시안 : 문재인, 안철수 각 후보의 선거 전략에 대해 품평하고, 보완점을 지적해달라.
황정훈 : 문 후보는 저번 경선 때 인터뷰를 했는데 호남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건가 물으니 '강운태, 박준영 등 호남 정치인들과 협력하며 네트워크를 강화해나가겠다'고 답했다. 나는 문재인이 스탠스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다. 지역 정치인들을 경유해 여론을 들을 게 아니라, 직접 주민들과 부딪히고 만나야 한다. 남들이 만든 네트워크를 이용하려고 할 게 아니다. 10년 전 '노풍'의 진원지가 호남이었던 이유는 노 대통령이 서민적이고, 주민들과 일대일 스킨십을 보였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이걸 배워야 한다.
호남은 이른바 '서민'이 가장 많은 곳이다. 서민성을 강조할수록 호남 사람들은 문 후보를 돌아보게 돼 있다. 호남은 지극히 '다이다이'에 강해서 직접 부딪히는, 신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보면 문 후보는 참모진에만 둘러싸여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승용 : 문 후보로선 김두관, 손학규와의 관계 개선도 중요한 과제다. 민주통합당 전남 경선에서 모바일투표를 제외하고, 당내 당원중심으로는 손학규가 앞섰다. 손학규를 지지했던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은 친노에 대한 반감이 있어 문 후보에게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 암묵적으로 안 후보 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 그런데도 과연 손학규와 웃으며 포옹할 모습 연출할 수 있겠는가. 이 역시도 관건이다.
안 후보의 경우, 캠프의 문제가 커 보인다. 후보자이 부족한 능력을 메우는 게 캠프의 능력인데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 가운데 가장 미숙하다. 새누리당, 민주당, 시민사회 등 이질적인 세력들이 뭉쳤는데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없고, 경험 부재하다는 게 드러난다. 단적인 예가 '단일화 선언' 이후 대처다. 내가 비서실장이었다면, 선언 이후 하루 이상 묵혔다가. 2~3일 동안 만나서 뭘하지 이런 얘기를 흘려 언론에 도배하게끔 해서 여론을 주도했을 것 같다. 그랬으면 안 후보의 워딩(이야기)으로 일주일 내내 도배가 됐을 것 아닌가. 이슈를 자기화하고 주도적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일화 논의를 위해 지난 6일 대면한 문 후보와 안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야권에 떨어진 지상 과제, '호남 투표율을 높여라'
프레시안 : 어쨌든 호남의 최종 목표는 '정권교체' 아닌가. 야권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가.
오승용 : 지난 총선에서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회고적 투표(과거에 대한 평가에 기반한 투표)'를 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전망적 투표'를 했다. 야권 후보가 결정되면, 정권교체 프레임이 전면에 나올 것이다. 단순히 정권교체만 외칠 게 아니라, 야권에 대해 전망적 투표를 할 수 있을만한 근거를 제시해줘야 한다.
황정훈 : 안 후보가 영리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건 국민들에게 '누가 된다'가 아니라 '무언가 바뀐다'에 주목하게끔 한 것이다. 다음 정권에서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물론 잘못된 과거에 대한 패널티(처벌) 차원에서 정권교체라는 대전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그 이후 단일화 과정을 통해 연립정부가 만들어졌을 때를 가정한다면, 개혁하겠다는 의지와 힘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들한텐 누가 되느냐가 중요하지만 국민들한테 더 중요한 건 정치가 '바뀌느냐 마느냐'다. 국민을 이야기하려면 자기 욕심을 접는 모습부터 보여야 한다. '쿨'한 단일화를 해야 한다.
윤영덕 : 단일화를 앞두고 정치개혁이 화두다. 중요한 문제를 잘 짚었다고 본다. 이 점에선 안 후보의 공이 매우 크다. 두 후보 가운데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부분이 정치개혁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국민들이 바라는, 실제로 행해져야 할 정치개혁이란 건 단순히 의원 수를 줄이고 하는 것만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진짜 개혁이다. 문 후보도 중앙당 권한 줄이자고 한 점도 잘했다. 당 권위를 낮추고 당이 국민과 결합해나가야 한다. 이런 방향을 두 후보가 함께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오승용 : 마지막으로, 오늘 하고 싶은 말 꼭 하나를 고르라면 이 얘기를 하고 싶다. '호남의 투표율을 올려야 한다'.
'호남 정치'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 호남 정치인의 리더십, 의제설정능력, 투표율이다. 호남정치의 리더십은 바로 DJ에서 나온 바가 크다. 그리고 호남은 4·19 시위를 가장 먼저 했고, 한일회담 반대만이 아니라 대통령 하야 요구까지 했다. 5·18은 말할 것도 없고, 1987년 국민운동본부가 사실은 광주조직이 서울로 확대된 것이다. 호남은 이렇듯 시대와 역사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이제 리더는 없고, 의제설정능력도 끝났다. 그나마 호남이 한국 정치에서 버틸 수 있었던 기반이 '표 결집력'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야권 후보 승리 전제조건이 호남에서 득표수 1/3을 확보하는 것이다. 영남에서 최대로 많이 얻을 때가 13% 정도였다. 유권자가 2.5배 많은 PK 지역에서도 투표대비 득표율은 20% 중후반대고, 현재로 봐선 거기서 누가 되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얻은 만큼의 점유율을 얻기 힘들다. 그렇다면 관건은 다른 지역은 호남인 셈이다. 호남에서 무조건 75% 이상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대선 호남지역 투표율이 65%였다. 특히 광주는 급감소 추세다.
투표율 하락의 원인은 단순히 DJ가 서거해서가 아니다. 정치불신 등의 구조적 측면과 아울러 희망이 없는 상태가 지속하면서 호남 주민들의 정치의식 수준은 높아지지만 투표장은 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게 반복되면 당연히 야권 후보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심각한 호남 정치의 위기다. 결코 호남 지역이 쉬운 지역이 아니다. 단일화만 된다고 호남이 끝나는 게 아니다. 이걸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 말씀 감사하다. 두 후보 모두에게 뼈아픈 충고의 시간이었으리라 본다. 앞으로도 계속 호남을 주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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