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으로 쓸 나무를 구해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백 걸음만 가면 되는 산에도 나무가 있고
백리를 가야 하는 산에도 나무가 있는데
어떤 곳에서 나무를 해 오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백 걸음만 가면 되는 산으로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가까운 곳의 나무는 언제든지 가져올 수 있단다.
그렇지만 멀리 있는 산의 나무는 누구나 가져가도 되니
그 곳의 나무부터 가져다 때고
나중에 그 곳의 나무가 다 떨어졌을 때
가까운 곳의 나무를 가져온다면
훨씬 오랫동안 땔감을 구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아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습니다.
당(唐)나라 때의 임신사(林愼思)라는 사람이 지은
'속맹자(續孟子)'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긴 안목으로 자식을 가르친다'는 뜻의
'교자채신(敎子採薪)'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지금 자식의 몸이 편하도록 돌보고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당장은 좀 고되어도
후에 부모가 없이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가르칠 것인지
자식을 기르다 보면 흔히 고민하게 되는 문제지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고민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부모 노릇이 머리로만 되는 일은 아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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