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과 바락 오바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간의 경합에 여론의 관심을 빼앗긴 공화당 진영에서 선두 자리를 둘러싼 주자 싸움이 치열하다.
아직 정식 출마 선언을 하지도 않은 프레드 톰슨 전 테네시주 상원의원이 '초보수 바람'을 일으키며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자들의 표심을 현혹하고 있는 가운데, 잠재적 유력 주자로 꼽혀 온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공화당 탈당을 선언해 민주·공화 양 진영을 모두 긴장케 하고 있다.
톰슨, '초보수' 바람에 줄리아니 '휘청'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업체인 <라스무센 리포트>가 1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 28%가 톰슨 전 의원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의 1위'로 여겨졌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27%의 지지율을 얻어 2위로 주저앉았다.
<라스무센 리포트>는 톰슨 전 의원과 줄리아니 전 시장 간의 1% 포인트 격차를 "통계적으로는 무의미한 수치"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라스무센 리포트>가 2008년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시작한 지난 1년 간 줄리아니 전 시장이 다른 주자에게 추월 당한 것이 처음이라는 점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로 여겨졌다.
톰슨 전 의원의 꾸준한 상승세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지난 주 조사에서 24%의 지지를 얻어 줄리아니 전 시장과 동률을 기록한 지 불과 한 주 만에 1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줄리아니 전 시장의 지지율은 23%, 톰슨 전 의원의 지지율은 17%였던 점을 감안하면 톰슨 전 의원의 상승세는 가히 파죽지세라고 할 만하다.
반면 존 맥케인 아리조나 상원의원과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주지사는 각각 10%의 지지율을 얻으며 멀찌감치 떨어진 3위로 추락했다.
'파죽지세의 비결'은 초보수를 자처한 톰슨 전 의원의 선명한 정치적 스탠스에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이민이나 낙태 등 사회적 이슈나 정부지출, 각 주의 독립적 권리확보 등의 쟁점에 대해 거침없이 보수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층을 흡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낙태, 온실가스 감축 등의 이슈에서 공화당의 기존 노선보다 유연한 입장을 보여 온 줄리아니 전 시장에 대한 우파의 불만을 파고드는 데에도 성공한 셈이다. 이날 여론조사 상으로도 줄리아니 전 시장을 "정치적 보수"로 구분한 공화당 지지자들은 21%에 불과한 데 반해, 톰슨 전 의원에 대해서는 42%가 "정치적 보수"라고 평가했다.
전통적 지지층에 대한 톰슨 전 의원의 구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일에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와의 면담이 예정돼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8년 간 상원의원을 지낸 것이 정치 경력의 모두인 톰슨 전 의원은 외교적 경력이 전무하다는 것이 최대 약점"이라며 "대처 전 총리와의 면담은 보수주의자로서의 서로의 교감을 나누는 동시에 자신의 약점을 상쇄하기 위해 톰슨 전 의원이 자청한 이벤트"라고 풀이했다.
톰슨 전 의원은 이 여세를 몰아 다음 달 초순께에는 공식 출마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현재 TV 법정 드라마 <로 앤 오더>에서 연방검사역으로 출연 중이기도 한 톰슨 전 의원에게는 '제2의 레이건'이란 별명이 항상 따라다닌다.
블룸버그, '제2의 로스 페로' 되나
한편, 대선 출마를 물밑에서 저울질해 온 블룸버그 시장이 19일 공화당 탈당을 전격 선언한 것도 일찍 무르익은 대선 판도에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탈당을 알리는 성명에서 "탈당이 곧 대선 출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무소속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기 위한 전주곡이 아니냐는 분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뉴욕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와 행정 경험을 두루 겸비한 흔치 않은 인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 시장은 경제통신사인 블룸버그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면서 통신사를 치열한 경제정보시장에서 강자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유능한 시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주요 언론을 중심으로 그의 출마 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으며 본인도 출마하지 않겠다는 공언과는 달리 대선후보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해 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사재 55억 달러 중 10억 달러를 대선 자금으로 마련해 두고 있다는 측근들의 발언까지 공개됐다.
블룸버그 시장이 공화당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무소속을 택한 이유는 '민주당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공화당 경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계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생 민주당원이였던 블룸버그는 뉴욕 시장 출마를 위해 한시적으로 공화당원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낙태와 총기규제, 동성애 등의 민감한 사안에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시장으로 당선된 후에도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에 블룸버그 시장이 한 동안 결정을 미룬 채 '탈색기간'을 가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그 기간을 내년 초까지로 넓게 잡기도 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시장이 출마 선언을 하는 순간 차기 대선은 예측 불허의 혼전 양상으로 빠져 들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블룸버그 시장의 탈당 소식에 공화당 일각에서는 1992년 대선의 '로스 페로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시 텍사스의 억만장자 페로가 '무소속'으로 뛰어들면서 공화당 표를 19%나 잠식해 클린턴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당 역시 마음을 졸이기는 매일반이다. 민주당 성향이 강한 블룸버그 시장이 민주당 표를 갉아먹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화당에 '로스 페로의 악몽'이 있다면 민주당에는 '랄프 네이더의 악몽'이 있다. 2000년 대선에 녹색당 후보로 출마한 랄프 네이더의 득표율은 1%에 불과했지만 한 표가 아쉬웠던 박빙의 혈투였던 만큼 그의 출마는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낙선으로 이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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