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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는 국민 동의 없는 헌법개정"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66> 한미FTA와 국가주권

1. 한미 FTA의 독소 조항과 국가주권 침해 가능성

최태욱: 한미 FTA가 한국의 주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하여 생각해보려 합니다. 언론 등에 많이 나오고는 있지만, 주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살펴볼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 헌법에 명시돼있듯이 국가는 마땅히 약자의 보호나 사회가치의 수호 등을 위하여 시장에 개입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미 FTA로 인해 국가의 그 고유 기능이 제한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상희: 국가주권의 법적 의미는 국가 영토 내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구속력있는 결정을 하고 집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주권은 국민의 위임에 따라 입법권, 사법권 등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한미 FTA의 경우 특정 영역에서 국가 구성원들이 결정을 내릴 권한 자체를 포괄적으로 박탈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서비스 개방의 네거티브(negative) 방식, 투자자 국가소송제(ISD: investor-state dispute)등은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게 하고, 어떤 국민적 판단을 요하는 부분에서 해당 국가의 권한을 가진 기관이 판단하지 못하게 배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권을 침해, 제한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국가의 살아가는 방식이나 나아갈 방향, 가치를 결정하는 최종권한은 국가와 국민에게 있어야 하는데, 한미 FTA가 실질적으로 그런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우려가 있습니다. 무엇이 공공의 이익이 되는지, 개인과 시장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한미 FTA가 해버립니다. 그런 근본적 부분을 국민이 결정하지 못하게 한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법적인 제약일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됩니다.

송호창: 주권의 제약을 생각할 때, 모든 법은 주권을 제약하는 면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생활을 위해 상호간에 어느 정도 권리를 제한하고 공존하는 것으로, 제도와 법은 모두 주권을 제약합니다. 헌법에서는 주권 자체가 아니라 주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위임하고 있으며, 행정, 입법, 사법부가 이를 위임 받습니다. 조약체결권이 대통령에게 위임되어 있으며, 조약 체결이 주권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어느 범위까지 위임한 것이냐, 즉 조약 체결의 권한이 근본적인 국가영토, 공권력 행사의 일부를 넘기는 것까지 포함하느냐,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통령이나 행정부, 입법부에 대한 위임의 범위와 한계를 확정해야 하며, 그런 관점에서 이번 FTA의 내용이 그 범위 내에 있는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최태욱: 한미 FTA의 내용에 따라 그것의 체결이 국민이 위임한 범위를 넘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씀인데요. 한미 FTA로 인해 국가주권이 일부 훼손당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우리 정부가 결정할 일을 미국이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등에 대한 우려를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한미 FTA의 어떤 내용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한상희: 대표적인 것은 서비스 개방에 있어 네거티브 방식을 취한 부분입니다. 우리 산업구조가 서비스 중심으로 이행하는 것은 기본전략이자 추세인 만큼, 앞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서비스 영역이 나타나 사회질서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이 나타나는 서비스영역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국민적 합의에 의해 위임 받은 국회나 대통령이 통제를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공공성이나 복지의 개념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미 FTA는 그런 부분을 국가가 규제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복지나 공공성에 위험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에 대해 국가가 통제능력을 잃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FTA 협정 때문에 무조건 개방하고 국제통상법의 기본원칙에 따라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규제원리와 우리의 규제원리가 다른 경우, 우리의 틀 속에서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막을 필요가 있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방송, 통신 산업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개인정보의 침해나 국가안보 관련 서비스의 유형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한하고자 할 때 한국과 미국의 판단기준이 다르고, 일단 시장을 막으면서 통제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합니다.

최태욱: 래칫 시스템(ratchet system: 역진방지제도)은 어떻습니까?

한상희: 래칫 시스템은 한번 개방하면 어떤 경우에도 다시 되돌리지 못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FTA의 영향에 대해 어느 누구도 확실히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순기능을 한다면 좋지만, 공공성을 해치거나 사회통합을 해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났을 때 개방 수준을 조정하면서 완충하는 기간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한국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FTA를 체결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 문제입니다.

송호창: 래칫이라는 것은 혁대와 같은 의미입니다. 한 번 조이고 나면, 더 조일 수는 있어도 풀 수는 없는 혁대입니다. 한미 FTA 내용 안에서 미국과의 통상관계를 다시 완화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으로 충분히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미국과의 관계에서 금융 등 서비스가 이미 상당 부분 개방된 상태에서 더욱 더 조이게 됩니다. 사회 내부에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많은 문제가 불거질 것입니다.

이미 문제가 많은 시장에 위력적인 외부적 변수가 추가되는 것이고, 더구나 국내에서 조정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고 상수이므로 국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식 시장모델이나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런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미국식 시스템이 갖는 부정적 측면도 많은데 과연 한국사회에서 온전한 제도로 안착할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많습니다. 개방을 다시 완화할 수 없는 결박 상태로 조약을 체결한 것은, 준비 여부를 떠나서 스스로 시장제도, 시장질서와 편제에 대한 자기 선택의 폭을 줄이는 행위입니다.

최태욱: 네거티브 방식에 의한 서비스 개방과 래칫 시스템이 결합하면 문제가 심각할 수 있겠군요. 현재로선 알 수 없는 신종 서비스산업이 미국에 의해 개발되면 네거티브 방식이 적용되므로 우리 시장은 무조건 자동 개방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분야에서 당연히 경쟁력이 월등할 미국 서비스 기업들은 우리 시장을 마음껏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경우 혹시 미국 자본의 자유로운 침투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공공성 훼손이나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가 악화된다 할지라도 래칫 시스템 때문에 우리 정부는 개방 폭을 줄이는 등의 방식으로 시장을 조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맞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미국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겁니까?

한상희: 현재의 FTA 협정 자체를 재검토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송호창: 일련의 조약 사항을 파기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대가, 보복 조치를 감수해야 합니다. 국가적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경우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최태욱: 서비스 분야 중에서 그런 위기를 맞을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한상희: 한 예로 게임 산업의 경우, 사행성 도박과 게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이렇게 애매모호한 영역이 계속 존치할 경우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송호창: ISD가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데, 부속서에 보면 공공 부분이라 하여 통신, 방송, 기간시설, 원자력 등에 지분제한을 유보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주식 지분의 40% 이상 취득할 수는 없더라도 일단 취득은 가능합니다. 문제는 그 지분을 토대로 국가를 제소할 수 있다는 점인데, 단 한 주만 보유하거나 포트폴리오 등 간접 지분만 있어도 방송통신이나 원자력 등에 대하여 공공질서를 이유로 제한을 가했을 때 그것을 제소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현행 외국인 투자 촉진법에서는 공공성, 보건, 환경 등 보호할 필요가 있는 가치 기준에 의해서 인가나 설립 제한 등으로 규제할 수 있으나, 한미 FTA 후에는 공공질서를 위해서만 규제 가능하고 보건이나 환경을 위해서는 규제를 못합니다. 공공질서 역시 무슨 기준의 공공질서를 말하는 것인지가 불명확합니다. 준거법이 국제법과 협정문이라면 대한민국 헌법과 관습법에서 말하는 공공질서와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줄어든다는 것은 기본권 보장의 의무를 이행하는 국가의 역할이 제한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제한이 우리 헌법에서 부여한 '허용 가능한 범위' 내의 제한인가가 문제인데, 보건이나 환경을 이유로 규제할 수 없다면 상당히 큰 문제가 됩니다.

최태욱: ISD에 대해서는 아주 근본적인 의문이 있습니다. 그 제도가 도입되면 일단 민간 외국인 투자가 스스로 자신의 투자이익이 손해를 보았다고 판단할 경우 우리 정부를 일방적으로 제소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외국 민간인의 일방적 결정만으로 바로 한 국가의 공공정책이 국제법에의해 평가된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국가의 규제권한은 당연히 제약당하는 것이죠?

한상희: 국내법적 입장에서, 대한민국 국가주권이 작용하는 영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 국제법이 적용되는 공간을 만들게 된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투자자의 영업, 노무관리, 경쟁력 등에 대해 대한민국 법체계 내에서 규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송호창: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이나 중재신청을 하는 자체만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약이 없더라도 외국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UN 행정법원이나 OECD의 국제상사위원회에 제소할 수 있습니다. 역시 문제는 투자자를 어느 정도까지 보호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절차상의 문제는 헌법을 기반으로 한 국내법과 국제법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단 국내법원이 아닌 국제중재기관에서 적합성을 판단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이번 협정에서 ISD 청구원인이 될 수 있는 사항이 협정 위반, 투자계약 위반, 인가 위반인데, 세 가지에 대한 해석이 양국 통상장관을 의장으로 하는 공동위원회에서 이루어집니다. 공동위원회라는 행정기관에서 법규범을 해석하고, 국제 중재기관은 그 해석에 구속당하게 되며 다른 해석은 할 수 없습니다. 분쟁해결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법기관의 역할이고 법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하게 되어 있는데, 행정공무원들이 법적 해석까지 다 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우리의 삼권분립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현실적으로도, 우리 통상장관이 현재 김현종 본부장이고 미국 통상대표와 동창이라고 하는데, 모두 미국 법제하에서 교육받은 미국법 전문가이지 국내법 전문가가 아니며 국내법에 대한 충분한 해석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통상장관을 국내법 전공자가 맡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동위원회에서 한국 공공질서에 대한 미국적 해석을 해 놓고, 이에 대해 국제 중재기관은 다른 해석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한상희: 협정문 초안을 보면, 영어로 된 초안은 영어 문법과 미국 법률용어에 잘 부합하지만, 국문초안은 무슨 말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미국식 법논리와 가치에는 익숙하지만 한국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협정문을 해석할 때 과연 우리의 가치에 부합할 지 의문입니다.

ISD에 대해 제 의견은 송 변호사님과는 좀 다른데, 투자자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투자계약과 관련하여 개별적인 투자자에 대해 국가가 양허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분쟁 발생시 국제투자분쟁처리센터(ICSID)에서 처리하기로 하거나, 양자간 투자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 BIT) 형태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한미 FTA의 경우 BIT의 수준이 아니라 포괄적인 통상조약의 틀 속에서 ISD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투자문제가 통상문제와 연관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ISD가 적용되므로 국제중재결정에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한국이 이행 안 할 방법이 없습니다. BIT는 이행을 거부할 수 있었고, 상당부분 대한민국 법을 가지고 준거 삼을 여지가 많았지만, 이번 FTA에서는 투자계약이나 인가를 제외하고는 국내법을 적용하지 않게 되어 있어 종래와 방식이 다릅니다.

최태욱: BIT에 있는 ISD의 경우 중재결과를 한국이 부당하게 여겨서 이행하지 않아도 피해가 해당 투자 분야에만 국한된 반면, 한미 FTA의 경우 광범위한 통상의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한상희: 아르헨티나는 통화위기 당시 통화정책을 쓰다가 제소를 당하고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중재 결정이 나더라도 자국 형편에 따라 조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FTA는 바로 보복조치 우려가 있으므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복수단이 있기 때문에, 소송에 의한 결정보다도 심판에 회부되는 것 또는 제소의향서 그 자체가 위협이 됩니다.

따라서 ISD의 위협 하나만으로도 정책을 수정할 필요가 많아집니다. 이때 중앙정부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겠지만, 이런 부분에 비교적 취약한 지방정부의 경우는 외국인 투자자의 제소나 제소의향서의 제출만으로도 정책 자체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종래의 BIT보다 훨씬 강력한 제도입니다.

2. 국가주권 침해의 영역별 고찰

최태욱: ISD, 래칫 등의 제도가 도입되어 주권이 침해될 수 있는 구체적인 영역을 좀 더 상세히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영역별로 주권이 어떤 경로와 기제로 영향을 받겠습니까? 주권침해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쉽게 알 수 있는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상희: 예를 들면 부동산영역이 있습니다. 부동산가격 안정화정책을 ISD의 예외로 했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기본적으로 국토의 효율적 이용관리를 헌법에 규정하고 국가가 규제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토지와 부동산 정책이 총제적으로 ISD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보통 국토의 형질변경에 대한 규제가 많은데, 외국인 투자자가 계약할 때 형질변경을 하기로 했다가 국토계획이 변경되어 규제될 경우 ISD 대상이 됩니다. 또 다른 예로, 소상인을 위해 대형 수퍼마켓의 영업시간을 규제하려 하는데, 그 경우 홈플러스 등 외국인 자본이 들어간 사업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되어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태욱: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는 자본에 의한 제소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규제로 인해 영업이익이 침해된다고 여겨지면 언제든지 제소가 가능해지는 것이군요.

한상희: 그런 예는 많습니다. 이자제한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현재 고급금융은 미국자본, 저급금융은 일본자본인 경우가 많은데, 미국자본에 이자제한을 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세무조사의 경우도, 외국인의 투자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때문에 영업을 못할 경우 ISD 대상이 됩니다. 국가의 시장 개입이 점점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도의 선진화, 투명화라 할 수도 있지만, 국가 규제가 가지는 순기능을 살릴 수 없게 됩니다. 외부적 충격으로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는데, FTA가 도입되어 산업구조조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행정제도가 어떻게 투명해지고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국가권력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태욱: ISD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직관적으로 공공성 훼손과 정부 권한 축소 가능성이 이해되지 않을까 합니다. 방송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송호창: 외국자본이 새로 방송국을 만들 수도 있고, 기존 방송국에 지분투자를 할 수도 있습니다. 방송위원회가 설치인허가를 하고 편성이나 광고를 관리 감독할 수 있는데, 사안에 따라 하게 되어 있으므로 법처럼 일관적으로 통용될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이 투자한 방송에 대한 방송위의 결정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상희: 유선방송의 경우 외국인의 투자가 자유로워지는데, 청소년위원회의 규제가 강화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청소년정책이 안정적이지 않아서 논란의 가능성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방송은 국가의 통제가 받는데, IP-TV 등 새로운 형태의 방송에 대한 대책이 없어서 문화공공성에 대한 국가의 역할이 현저히 감소할 수가 있습니다. 지방의 경우 특성화 사업이라 하여 지방정부가 한쪽을 지원해줄 경우 내국민대우조항 위반 등을 사유로 제소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FTA 후에는 기업이 지방에 이전할 때 이전금을 지급하는 것이 이미 지방에 있는 기업의 경쟁력 침해로 문제시될 수 있습니다.

최태욱: 복지정책, 양극화 해소책, 중소상공인 지원책, 노동지원 및 분배정책 등 국가의 마땅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질 상황이 있을지요?

한상희: 해석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철도청의 경우 경우에 따라 KTX의 요금 체계와 새마을호, 무궁화호의 요금체계를 각각 달리하여 운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무궁화호의 경우는 지역교통수단으로서 저렴하게 적자 운영을 하고, 그것을 새마을호나 KTX의 운임으로 보전하고자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런 것은 그대로 경쟁조항 위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운영체계를 다원화해서 부를 분배하는 정책을 수립하기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각 공기업들이 서비스를 싸게 제공하고 다른 수익사업으로 적자를 보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철도청이 관광사업을 하는 경우 등), 그런 것을 못하게 됩니다. 공기업은 해당 서비스의 시장가격 논리만을 따르게 되므로, 서비스 가격이 높아지게 됩니다. 상수도의 경우 이미 민영화될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데,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투자이익을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면 현재와 같은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기는 힘들 수 있습니다.

최태욱: 공공서비스의 경우 개방을 유보하려면 지금 해야 하고, 그 유보 리스트에 없으면 다 개방해야 한다는 것인데, 예를 들면, 철도의 민영화 경우는 어떤 것이지요?

한상희: 철도운영과 시설관리는 유보되어 있습니다.

송호창: 투자계약 관련해서는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부분은 중앙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사안별로 가능합니다. 서비스 파트에서는 그 제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상희: 현재는 시장서비스가 아닌 국가의 고유 권한인데, 나중에 민영화했을 때 미래유보가 되어있지 않으면 민영화와 동시에 개방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서비스가 민영화되었을 때를 대비해 미래유보를 해 둔 것입니다.

최태욱: 추가하실 부분이 있으시다면.

한상희: 헌법개정이 제기되었을 당시, 또는 그 전부터 경총에서 헌법 경제조항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시민단체에서는 우리 헌법을 사민주의로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데, 헌법에 관한 그런 논의들을 제쳐놓고 FTA를 도입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시장경제원리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강력한 개방을 해버림으로써, 사민주의 논의나 그런 헌법개정을 논의할 여지를 제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선택 자체가 미국의 보복을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FTA가 실질적 헌법개정인 셈으로, 사적 경제논리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양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FTA를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산업 부문을 위해 농업을 희생할 수 있다, 또는 자동차 산업을 위해 서비스 분야 등이 희생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만, 그런 중차대한 경제구조 결정까지 국민이 모두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54년 헌법에서 자본주의를 확립하고, 62년 헌법에서 경제성장 중시하였으며, 80년에 구조조정 요소가 들어가는 등의 변혁이 있었는데, FTA는 그런 변화에 이은 네 번째 경제구조 변혁과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통령이나 통상본부장 수준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인지, 특히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몇몇 집권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인지가 의문입니다.

송호창: 국익을 위해서라 하지만, 국민을 배제한 채 과연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 묻고 싶습니다. 서비스 시장의 향상과 같은 특정 부분만의 국가경쟁력을 위해 다른 분야가 희생하거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판단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헌법상 조약체결권이 대통령에게 있더라도 그런 부분까지 가능한 것인지, 국민의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면 국민투표를 해야 하는데 그런 사안은 아닌지 등에 대한 면밀한 판단 없이 대통령 전권으로 FTA를 체결한 것입니다. 국회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은 채 사후에 검증하라는 식의 태도를 볼 때, 과연 현재 정부가 생각하는 국익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싶습니다.

이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한 국가의 지향점이 될 수 없음이 확인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신자유주의, 국가경쟁력의 관점에서 정책을 펴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런 관점이 모든 협정 조항마다 드러나고 있고, 그 피해는 각 분야의 산업과 국민들에게 가게 될 것이 뻔합니다. 자신에게 권한이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게 되는 법인데,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한 일이라면 그 책임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한상희: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희생할 수 있다는 논리는 근거 없는 것입니다.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대통령이 명태잡이 어선 어민 700명과 자동차회사 4개를 놓고 경제성을 따져서, 과연 명태잡이 어민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라고 말할 권한이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송호창: 현재 상황을 숲에 비유한다면, 숲에는 다양한 나무가 공존해야 비로소 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가가치가 높다고 해서 다른 나무는 다 없애고 소나무만 심게 되면 소나무 재선충이 단 한 그루에만 생겨도 일제히 번져서 전체 소나무가 몰살당하게 됩니다. 소나무를 위해서도 잡목 같은 다양한 수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존을 위한 생존방식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조약체결권이라는 권한을 위임 받은 대통령이 특정 산업부분만을 위해 다른 산업부분을 죽인다는 것은 특정 수목을 위해 다른 나무를 베어내서 결국 모든 수목이 공멸하게 되는 그런 결과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최태욱: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일시: 2007년 6월 5일 오후 2시~4시
장소: 미래전략연구원
사회: 최태욱 교수 (미래연 연구위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참석: 송호창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상희 교수 (건국대학교)


정리: 김유리, 서동희 (미래전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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