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역주의 발전에 적대적인 미국
미국은 애초부터 동아시아의 독자적인 지역주의 발전에 비협조적이었다. 비협조 정도가 아니라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예컨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메드(Mahathir Mohamad) 수상이 1990년과 1991년 각각 '동아시아경제그룹(EAEG)'과 '동아시아경제회의(EAEC)'의 창설을 제창했을 때 미국은 일본과 한국 등에 대하여 이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또한 1997년 일본이 제안했던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설립이나 그와 유사한 엔 블록의 구축 구상 등에 대해서도 반대하였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는 AMF의 창설 등이 자국의 통화패권을 위협할 수 있으며, 그 경우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경제적 영향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되었다. 말하자면, 미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여 자신이 배제된 형태의 지역통합체가 역내에 건설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표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기능적 의미의 경제통합, 지역주의의 제도화, 그리고 역내 국가들 간의 FTA 체결 움직임 등은 그동안 미약하나마 나름대로 꾸준히 진행돼왔다. 기능적 의미의 경제통합 정도를 가늠케 하는 역내무역의존도는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치기 이전인 1995년에 이미 38%를 기록했는데, 이는 제도화된 지역협력체인 당시 Mercosur(19%)의 수치보다 크게 높고 NAFTA(43%)의 수준에도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 같은 정도는 2004년 조사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1)
제도적 의미의 경제통합도 비록 에너지, 금융통화, 환경 등 세부 영역별 접근이긴 하였지만 ASEAN+3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모색돼왔다. 특히 FTA 분야에서는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한·중·일 3국은 모두 ASEAN과의 양자간 FTA를 체결하였거나 하는 중에 있으며, 이것은 2010년을 전후하여 'ASEAN+1s' FTA 체제 구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향후 한·중·일 3국 사이에 세 짝의 양자간 FTA가 체결되거나 혹은 3국간 FTA가 바로 맺어질 경우 그것은 이 'ASEAN+1s' FTA 체제와 연결되어 비로소 EAFTA를 완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한 EAFTA가 동아시아공동체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 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다수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혹은 안보상의 대미 의존도가 여전히 상당히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몇몇 분야에서 제한적 수준으로 진행된 이 정도의 지역주의 발전도 사실 미국의 적극적 반대가 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다행히 미국은 EAEG, EAEC, AMF의 경우에서와는 달리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적어도 ASEAN+3의 형성 및 운영 그 자체, 그리고 역내 FTA 체결 움직임 등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ASEAN+3의 존재나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FTA 체결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배타적 지역주의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무엇보다 미국은 동아시아 개별 국가들과의 양자주의적 관계 설정이 가능한 한 동아시아의 지역주의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형태에 머물 것으로 평가한 듯하다.
이를테면 설령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역주의로 통합되어간다 할지라도 그들 하나하나는 미국과 여전히 별개의 쌍무적 FTA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고 한다면 미국으로서는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배타성을 크게 경계할 필요는 없게 된다. 그것이야 말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개방된 지역주의'(open regionalism), 더 정확히는 '침투 가능한 지역주의'(permeable regionalism)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미국의 침투가 가능한 현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
미국의 동아시아 '침투'는 2000년 11월 싱가포르와의 FTA 협상 개시로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2002년 10월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소위 'ASEAN 사업 계획'(Enterprise for ASEAN Initiative, EAI)을 통해 체계화된다. EAI는 ASEAN 국가들과의 개별적인 양자 FTA를 중첩적으로 체결함으로써 미국과 ASEAN간의 무역 및 투자 관계를 소위 '쌍무적 FTA 네트워크'(a network of bilateral FTAs)의 구축을 통해 강화시키겠다는 의도로 고안된 프로그램이다. 전형적인 미국의 양자주의 통상정책인 것이다. 2004년 1월 싱가포르와의 FTA가 발효되자 같은 해 6월 미국은 바로 태국과의 FTA 협상을 개시한다. 말레이시아는 2006년 6월 EAI에 의한 미국의 세 번째 FTA 협상국이 된다.
한편, 미국은 동북아 3국에 대하여는 각기 상이한 접근법을 택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견제와 경계의 대상이다. 일본은 영국을 능가할 정도의 최상의 협력 파트너이다. 그리고 한국은 기본적으로 ASEAN의 주요 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게 중국과 일본의 차이가 어떠한지는 EAS의 성립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중국은 ASEAN+3을 그 회원국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EAS로 조기 전환시킴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제도화 수준을 높이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신이 동아시아공동체 형성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EAS는 자칫 미국에 대적하는 배타적 지역주의로 흐를 수 있음을 우려했다. 미국의 우려를 덜어준 역내 국가는 일본이었다. 중국위협론을 미국과 공유해온 일본은 중국 견제를 위해 EAS에 '역외 국가'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이 신규 가입하는 일에 앞장섰다. 친미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중국을 견제할만한 대국 인도를 끌어들임으로써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중국 주도로 발전해가는 것을 막고자함이었다. 이는 사실상 (특히 중국의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을 통한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FTA 정책을 살펴보면 한국이 미국에 대하여 ASEAN 주요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은 동북아에서 미국 양자주의 통상정책의 유일한 대상이다. 미국은 싱가포르와 태국에 이어 ASEAN의 세 번째 상대국인 말레이시아와 FTA 협상을 개시할 무렵 동북아 국가인 한국과도 같은 협상 판을 펼쳤다. EAI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준비해온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한국과의 FTA 협상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훨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됐다. 한국의 적극성 덕분이었다. 다른 두 ASEAN 국가들이 주로 국내 사정을 이유로 미국과의 FTA 협상을 수차례 연기한 것과는 달리 한국은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협상을 타결해줬다. 국내비준을 무사히 통과하여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미국에겐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동아시아 '침투 경로'가 그것도 동남아가 아닌 동북아에 하나 구축되는 셈이 된다.
한미 FTA, 美 침투 가능한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제도화 가능성
이같이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개별 관계 설정을 통하여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개입 혹은 침투 가능한 것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러한 관리가 가능한 한 동아시아 지역주의에 대한 미국의 반대는 앞으로도 특별히 거세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조건이라면 미국이 크게 불만일 까닭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동아시아 쪽에서 제기될 듯하다. 애초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역주의 발전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지역 연대의 공고화 즉 지역주의의 제도화를 통해 점점 거세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압력에 효율적으로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를 통해 지금까지의 국제정치경제가 아닌 '역제정치경제'(inter-regional political economy) 시대의 도래에 대비하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선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된다. 미국의 개입 혹은 침투가 언제든 가능한 조건 하에서 상기한 목적에 부합하는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제도화가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는 것이다.
이 의문은 한미 FTA의 효과와 관련돼서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FTA 체결이 동(북)아시아의 협력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러한 발전은 우리를 중심으로 진행돼 가리라고 한다. 우리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그것이 중국과 일본을 자극하여 그들이 경쟁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며, 그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ASEAN FTA에 한-중 및 한-일 FTA가 더해지면서 종국에는 결국 우리 중심의 FTA 네트워크가 동아시아에 형성되리라는 것이다. 또 다른 허브국가론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렇게 된다는 것인지, 특히 중국과 일본이 왜 그렇게 나온다는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황상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사실을 말하자면, 일본과 중국 두 나라는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의 개시 선언 이전부터 이미 우리와의 FTA 체결에 적극적이었다. 특히 일본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그러했다. 한일 FTA 논의는 벌써 1998년에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일본의 제안에 의한 것이었다. 5년에 가까운 연구와 준비 끝에 2003년 12월에 개시된 한일 FTA 협상이 2004년 11월의 제6차 회의 이후 지금까지 결렬 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따져보면 일본의 적극성이 부족한 탓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가 자국 농수산업계에서의 반발 등 국내제약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을 이유로 협상 자체를 장기 교착에 빠트린 것은 사실상 우리 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2)
한중 FTA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이 우리와의 FTA 체결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확인된 시점만 보아도 이미 2005년 5월부터의 일이다. 당시 중국 상무부 차관보는 우리가 민감하게 여기는 농산물 문제에 대하여 자국이 대폭 양보할 뜻이 있음을 전달하였고,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장도 점진적 개방과 민감품목 제외 등의 방식으로 한중 FTA의 농업 문제 해결은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주3) 동년 6월에는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중국을 방문한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한국에게 불리한 주요 농산물은 FTA에서 제외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양국 정부 간의 조속한 협상 개시를 촉구하기도 했다. (주4)
중국 측의 이러한 적극적인 접근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역시 우리 정부였다. 사실이 이렇다고 한다면, 한미 FTA의 체결이 중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우리와의 FTA 협상에 (비로소) 적극성을 띠게 하여 그것이 결국 한국을 허브로 하는 동북아 FTA 그리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 FTA의 완성으로 이어지리라는 정부의 주장은 자가당착이 아니라면 그저 허언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주5)
생각건대, 정부의 주장과는 반대로 한미 FTA에는 동아시아의 협력관계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소지가 상당히 있다. 동아시아 안보관계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돌아보면 이러한 우려는 더욱 깊어진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는 다자안보협력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일본, 태국, 필리핀 등 역내 주요국들은 각기 미국과 양자동맹을 맺고 있을 뿐이다. 미국이 '바퀴통'(hub)이라면 이들 국가들은 모두 개별 '바퀴살'(spoke)에 해당한다. 이러한 '바퀴통과 바퀴살'(hub and spokes) 구조 하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중심에 두고 서로는 모두가 떨어져있는 것이다.
양자주의적인 미국의 대 동아시아 FTA정책을 보건대 이 지역에서의 경제관계 역시 안보관계의 구조를 닮아갈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마저, 그리고 언젠가 (한미 FTA에 자극받아)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도 연속해서 미국과 양자 간 FTA를 맺어간다면 경제영역에서도 이들 국가들은 미국을 허브로 하여 고작해야 간접 연결되는 관계로만 지내게 된다. 결국 한미 FTA는 미국을 공동 추로 하는 동아시아 분열 구조의 형성에나 기여하는 것일 수 있으리란 것이다.
물론 미국과의 개별 관계 형성과는 별도로 역내 국가들만에 의한 EAFTA 등의 제도적 경제통합도 여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포함한 상당수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미 '바퀴통' 국가인 미국의 '바퀴살'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그 '바퀴살' 국가들 간에 (세부 영역별 경제 협력이나 기능적 의미의 통합 진전이라면 모를까) 제도적 통합 움직임이 효과적으로 지속되길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그러한 상황으로 가기 이전에도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제도화는 10년의 노력이 별 성과를 내지 못할 정도로 이미 지난한 과제였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침투'가 복수의 '바퀴살' 국가를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상황에서 과거보다 조건이 더 나아질 리는 없으리란 것이다.
* 이 글은 『사회비평』 2007년 가을호에 게재될 필자의 논문(제목 미정) 중 일부임.
주1) 동아시아(ASEAN+3), NAFTA, Mercosur의 2004년도 역내무역의존도는 각각 38%, 45%, 15%였다. 권율 외, 『ASEAN+3 협력체제의 성과와 정책과제』 (서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5), p. 31
(주2) 일본 측 국내제약은 협상 개시 이전부터 충분히 (무려 5년 정도를 준비했으므로) 예상됐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협상장에서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일본 정부에 대하여 우리는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다. 타협과 절충의 여지를 별로 주지 않았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쪽이 오히려 더 비협조적이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3) 한겨레, 2006년 8월 10일
(주4) 조선일보, 2005년 8월 3일
(주5) 지금까지 일이 전개돼온 순서를 특히 중국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면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에 더 가까운 듯하다. 즉 중국이 먼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자 미국이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와의 FTA 체결을 비로소 서둘렀으리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보다 상세한 정황 설명은 <한겨레> 2006년 8월 10일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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