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가 사간원의 정언이 된 이후 한천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조광조가 한천을 불러 지시한 것은 아니지만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있고, 특히 조광조의 동지들을 드러나지 않게 도와주라는 초설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경은 벼슬아치들의 얘기를 듣는 데 최고의 장소였다. 명경을 드나드는 벼슬아치들의 지위나 직책이 다양했고, 반정공신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드는 명소가 된 까닭이었다. 더구나 한천은 역관이 되기 전에 명경에서 집사 노릇을 한 적이 있었으므로 대부분의 벼슬아치들이 한천의 행동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이 많은 심정까지도 한천을 경계하지 않고 심중의 말을 털어놓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천은 심정을 천박한 사람으로 여기어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다. 말 그대로 재승박덕한 사람이 바로 심정이었고,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꾀주머니'라고 비아냥댈 만도 했다. 심정은 명경에 와 있는 한천을 보더니 반갑게 말했다.
"명경에는 웬일인가. 자네는 역관이 되어 이곳을 떠나지 않았던가."
"초설이 누님이 계시는 명경은 고향집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온 것입니다."
"아, 그렇지. 여기서 공부해서 역관이 되었지. 초설에게 얘기는 진즉 들었지. 축하하네. 오늘밤 내 술 한 잔 받지 않겠나."
"나으리께서 주시는 술인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영광이지요."
그런데 심정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헌데 말이네, 오늘 술자리에 자네가 참석하기에는 분위기가 좀 그래. 유쾌하지 못한 자리거든."
"나으리들의 회동에 어찌 제가 끼어들겠습니까. 명경 사람이라면 보고도 보지 못한 체 들어도 듣지 못한 체해야지요."
"자네가 그렇게 이해한다면 상관없겠네만."
"나으리, 무슨 자리인데 그렇습니까."
한천은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당겼다. 벼슬아치들이 모여 가볍게 술 한 잔 주고받으려는 자리는 아닌 듯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든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다네. 웃을 때도 있고 입술을 씹어야 때도 있어. 오늘은 동지들을 위로해야 할 자리라네."
눈치 빠른 한천은 심정의 비위를 맞추어주었다.
"술자리를 별당 옆 독채로 마련하겠습니다."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깊숙한 곳이어서 그 방에 누가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얘기하고 술을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자네가 아직도 명경 일에 관여하는지 몰랐네."
"관여한다기보다는 이곳 일을 가끔 와서 돌봐주고 있습니다. 초설이 누님의 부탁이니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럴 테지."
심정은 한천이 초설의 부탁으로 명경의 일을 거들고 있다고 하자, 그제야 한천을 바라보던 눈길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심정은 아직도 초설을 연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조광조를 얘기하는 심정의 말에는 언제나 가시가 박혀 있는 것이었다.
"정암이라고 있잖나. 지금 그 자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어. 종사가 안정을 찾아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어. 그 자가 아니라면 오늘 이런 자리도 없을 거네."
김안로와 이행도 뒤늦게 명경에 도착하여 독채로 들었다. 충청도로 내려간 권민수도 오기로 돼 있는데, 그는 몸이 심하게 아파 참석치 못하는 모양이었다. 김안로가 방을 들어서면서 권민수의 사정을 말했다.
"충청도로 떠난 뒤 병환이 심하다고 하네. 화병이지 뭐."
김안로는 권민수의 사정을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것은 양사 간관을 교체시킨 중종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다. 어쨌든 충청감사로 좌천된 권민수는 화병까지 겹친 모양이었다.
"위로하는 글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안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는 격렬하게 반발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도 역시 내일이면 서울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조참의에서 경주부윤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니 울분이 치밀 만도 한 그였으나 그는 훗날을 기약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낮추고 기다려야지. 와신상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심정은 술잔을 이행에게 먼저 따랐다.
"위로의 술이라오. 이 술 받으시오."
"오늘 따라 술이 아주 맑습니다."
"이 집 주인이 귀한 손님에게만 주려고 빚은 술이라고 하오."
"선배님, 내 눈에는 술이 아니라 눈물 같습니다."
대사간에서 밀려난 이행이야말로 인사에 가장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권민수는 충청감사로 좌천되고, 김안로는 경주부윤으로 간다지만 이행은 아무 자리도 얻지 못한 채 파직당하고 말았으니 이행의 눈에는 술이 눈물로 보일 만도 했다.
심정은 자신의 후배격인 이행을 위로했다.
"아우님, 세월을 기다려 보시오. 조광조가 있는 한 조정은 늘 시끄러울 것이오.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시끄러운 판이 오래 가겠소. 그러니 조광조는 언젠가 저절로 정리될 터이니 소나기를 잠시 피한다 생각하고 기다려 보시오."
심정은 상대와 맞서 싸우는 성격이 아니었다.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다 꾀를 내는 야비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그가 힘 있는 벼슬아치라면 고개를 숙이고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벌써 조짐이 일고 있지 않습니까. 아우님 자리에 김안국이 들어가고 권민수 자리에 이장곤이 들어갔지만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대사간, 대사헌 자리가 어디 그런 자리입니까. 조광조가 밑에서 흔드니 못해먹겠다고 물러난 것 아닙니까."
이행은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과거가 문득 떠올랐고 자신이 불쌍했다. 18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으나 연산주의 미움을 사 유배를 갔고, 설상가상 사형을 받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나중에는 관청의 노비로 목숨을 연명하다가 반정으로 조정에 복귀한 파란만장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른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더러 김정의 출중한 문장을 시기하여 죄주자고 탄핵한 것이라고 합니다. 선배님도 나를 그리 보십니까. 내가 그처럼 용렬하고 속 좁은 인간으로 보입니까. 또 어떤 이는 죽은 박원종 사람이어서 박원종의 허물을 덮고자 김정과 박상을 탄핵했다고 합니다. 제가 무엇이 아쉬워 죽은 박원종을 붙들고 있겠습니까. 지난 과거사를 들추어 국정에 보탬이 된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에 발목이 묶이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과거사 정리가 무슨 효용이 있겠습니까. 종사가 안정되지 않고서야 어찌 전하가 성군이 되는 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김정과 박상을 문책하자고 한 것입니다."
김안로가 멋쩍어 하며 말했다.
"전하께 내가 드린 말씀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헌데 양시론을 편다 하여 나는 문책을 당했습니다. 백성들 살기가 폐주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으니 민심이 참으로 흉흉합니다. 헌데도 과거의 일에 집착하여 날마다 시비를 가르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됩니다."
심정은 다시 이행을 위로했다.
"아우님을 동조하는 의견도 많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아마도 전하께서 곧 좋은 소식을 줄 것입니다."
유생들 사이에서도 이행을 동정하는 소문이 돌고는 있었다. 조광조의 간언이 옳기는 하나 양사의 수장을 비롯하여 간관 모두를 교체한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 공론이었다. 그러니 양사는 조광조의 간언대로 간관들이 모두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날마다 뒤숭숭했다.
한천은 여기까지 얘기를 듣고는 방을 나왔다. 특별히 더 들을 얘기는 없을 듯했다. 다 알고 있고, 이미 들어 왔던 화제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 밖을 나와 신발을 신으려는데, 김안로의 얘기가 한천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준마 같은 조광조를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우리 모두가 그의 발굽에 밝히는 곤경에 처하지 않겠습니까."
"잘 보았소만 내게는 힘이 없으니 어찌하겠소."
"양사는 나이가 젊으니 시끄럽다 하더라도 의정부 대신들은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한심합니다."
"나라가 시끄럽건 말건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번에 대제학이 된 남곤 선생을 움직여 계책을 세워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김안로가 남곤과 교분이 두터운 심정을 부추겼다. 그러나 남곤도 심정 못지않게 앞장서 나서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었다.
"십수 년을 사귀었지만 난 그 사람의 속을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절대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지요. 아무리 수모를 주어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남곤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속마음을 주고받는단 말이오."
"방법이 없겠습니까."
"단 한 가지가 있기는 있습니다."
한천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였다. 초설이 독채로 오고 있었다. 한천은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초설은 눈치를 채고 주춤거렸다. 한천이 초설의 귀에다 대고 말했다.
"누님, 조금 있다 오시오."
"왜 그러느냐."
"정암 선생님의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알았다."
방안의 얘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어서 말해 보시오."
김안로의 재촉에 심정은 느긋하게 말했다.
"전하께서 조광조를 내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하가 조광조를 내치도록 계책을 세우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것밖에는 조광조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광조가 명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명분과 원칙에서 밀리는데 어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소. 허나 명분과 원칙이란 것도 전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를 이기는 방법은 그것밖에는 없소."
"과연, 정지(貞之; 심정의 호)다운 지략이오."
"외통수지만 우리가 살 방법은 그것밖에 없소."
심정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얘기하다가 결론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들은 심정의 말에 위로가 된 듯 그때부터 마음 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천은 곧 자리를 떴고 초설에게 방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한편 조광조는 세간의 평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매달렸다. 그에게 주어지는 자리는 자주 바뀌었다. 그것은 그만큼 중종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35세 봄에는 좌랑 직급으로 호조로 갔다가 예조로, 다시 공조로 가는 등 세 번이나 바뀌더니 홍문관 부수찬 겸 경연의 검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토관이란 경연이 있을 때마다 임금을 뵙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이니 조광조로서는 비로소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임금에게 각인시키는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자 격인 기준도 경연의 자리에 들어올 때가 있으므로 조광조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조광조가 먼저 중종에게 권한 것은 체계적인 성리학 공부였다. 중종은 부왕인 성종처럼 책을 좋아하는 임금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형인 연산군처럼 책을 멀리하는 임금도 아니었다. <고려사절요> 같은 역사서를 흥미 있게 보는 편이었다. 조광조는 그러한 중종에게 왕도를 익혀주기 위해 <중용>이나 <대학>, <근사록> 등을 권했다. 마음을 닦는 도학의 바탕이 되는 책들이었다.
중종은 사심이 없는 조광조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임금과 백성들을 위해 그런다고 하니 경원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날에는 아침 경연 자리에서부터 조광조의 열변을 들어야 했다.
"성상께서 마땅히 존양성찰(存養省察; 착한 마음을 보존하고 자신을 살피는 것)하는 공부와 함께, 나도 역시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있어 요, 순, 탕, 무(堯 舜 湯 武)가 임금인 것과 다름없는데, 어찌 요, 순, 탕, 무처럼 다스리지 못할 것인가 하여 이를 뜻으로 세우신다면 끝내는 이를 수 있게 됩니다. 아랫사람들을 진작시키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에게 달렸으니, 성상께서 먼저 덕을 닦아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면 아래에서도 감동되지 않은 사람이 없어 지치(至治; 지극한 다스림)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이야말로 다스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음의 힘을 다하신다면 나라의 큰 복이 되겠습니다. 덕을 쌓는 것이 근본이므로 이를 힘쓰면 나머지는 애쓰지 않아도 절로 다스려지겠거니와 근본에 힘쓰지 않으시고 말단의 일에 힘을 기울이면 수고스럽기만 하고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중종은 진심을 다해 말하는 조광조에게 빠져들었다. 그의 곡진한 얘기를 듣고 있으면 금세 지치가 이루어져 온 백성들이 태평가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세상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세금을 내지 못해 유랑민이 늘어나는 것은 연산주 때와 마찬가지였고, 실제로 서울이 가까운 경기도 땅은 이농하는 양인들이 많아 텅 비다시피 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상업을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었지만 충청도에서는 고육책으로써 임시로 장터를 허가하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 조광조나 그 동지들이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어린 기준은 과격한 주장을 하여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풍년과 흉년이 하늘의 뜻이라고는 하나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수백 명의 벼슬아치들이 이 나라의 땅을 몽땅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인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라에서 땅을 회수하여 공평하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아, 땅이 어디 장난감인가. 나라에서 주었다 뺏었다 하게. 그것보다는 세금제도를 바꿔야 하네. 지금처럼 땅이 있건 없건 간에 집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가진 사람에게만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 더 공평할 것이네. 집이 있어도 땅을 갖지 못한 양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광조의 생각은 달랐다.
"동지들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오. 허나 폐주 때의 패악을 보지 않았는가. 임금의 패악은 호환(虎患)이나 다를 게 없어. 먼저 임금이 달라지고 나면 그 나머지는 절로 해결이 될 수 있어. 잘못된 제도 하나 바로잡는데 무엇이 어렵겠는가. 임금이 먼저 마음을 닦아야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지고 그 토대 위에서만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자손만대 평안해 질 수 있을 것이네."
중종도 지치를 우선시하는 조광조의 견해에 동조했다. 그래서 홍문관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였다.
"내 항시 마음을 경계하여 지내고 싶으니 합당한 글을 지어 올리도록 하라."
동시에 중종은 문장에 능한 대제학 남곤에게 수작을 뽑아 올리도록 명했다. 남곤은 중종이 무슨 글을 원하는지 간파하고 있었으므로 누구의 글을 낙점할 것인지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실제로 남곤은 홍문관 관원들이 올린 글들은 건성으로 읽었다. 조광조의 글을 낙점하리라고 작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곤은 조광조와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를 복원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대궐에 입실하여 조광조와 마주치자 말했다. 이때 조광조는 부수찬에서 수찬으로 승진하고 난 뒤였다.
"조 수찬, 명문이오. 전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명문이오. 축하하오. 나는 그대의 글을 전하께 올릴 것이오."
"부끄럽습니다."
홍문관으로 복직한 김정이 글을 가지고 나가는 남곤을 향해 침을 뱉었다.
"소위 대제학이라는 홍문관 수장이 정암에게 이리 아부해도 되는 것인가. 퉤퉤."
"그래도 대제학이 구언의 상소문이 문제가 됐을 때 충암(冲菴; 김정의 호)을 문책하지 말자고 한 대신 중에 한 사람이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저 자가 어찌 도학자이신 점필재 선생의 제자라고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이 불가사의하다네."
이때 조광조가 올린 계심잠(戒心箴; 마음을 조심하게 하는 글)은 이러했다.
<마음의 신령스럽고 묘함은 통하지 않는 데가 없거니와 항차 임금의 한 마음은 천지의 큰 것을 몸으로 삼아 천지의 기운과 만물의 이치를 내 마음이 운용하는 가운데 포함해 가지고 있으니 하루의 날씨와 한 물(物)의 본성도 그 나의 법도에 따르지 않아 어긋나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어서 이른바 (마음의) 신령스럽고 묘한 것이 닫혀서 사사로운 정에 갇히면 능히 유통되지 않아 천리(天理)가 어두워지고 기(氣) 역시 막혀 윤리가 퇴폐하여 만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임금은 아첨하는 말과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향기로운 음식 맛의 유혹이 날마다 많이 있는데다가 세력은 지극히 높으니 아울러 교만해지기 쉽니다.(…)>
<계심잠>의 시작은 하늘과 사람의 기운이 서로 감응한다는 성리학의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임금이 자신의 과오는 물론 천재지변의 재앙까지도 마음을 닦지 못한 자신의 부덕으로 돌리는 근거가 바로 천인감응설이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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