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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미군 '쓰레기탄약' 모두 인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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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방부, 미군 '쓰레기탄약' 모두 인수하나?

[기고] WRSA 폐기 협상, 요식행위 가능성 커

국방부는 지난 1일 한국에 저장돼 있는 미국 소유 전쟁예비비축물자(WRSA-K : 탄약이 99%를 차지함)를 처리하기 위한 1차 한미 협상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날 발표를 보건대, 국방부는 60만 톤에 이르는 미국 소유 WRSA-K를 전량 무상 및 유상 인수하겠다는 밀약을 벌써 미국에 해주었고 앞으로 진행될 협상은 이를 공식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WRSA 탄약 사용 가능하다"는 국방부 발표의 함정

먼저, 미국은 이미 WRSA-K 탄약 폐기 절차에 들어갔는데도 국방부는 "현재 WRSA 탄약 대부분은 사용 가능하고 한국에 긴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이번 WRSA탄 처리 협상이 시작된 것은 미국이 2005년 말 <WRSA-K 이양 권한법>을 제정하면서 한국 측에 이에 대한 협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 국방부가 2004년 3월 11일 던컨 하원 군사위원장에게 보고한 이 법의 제정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국에 WRSA를 이양할 대통령의) 권한이 없으면 미 국방부는 기존의 노후화된 WRSA-K 재고를 유지하는 데 5억3200만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전체 물량을 미국으로 회수하는 데는 6억4000만 달러 이상이 들고 비군사화(폐기) 비용도 6억50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든다."

미국도 한국에 저장된 WRSA탄이 폐기되어야 할 탄약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2년 9월17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창성 의원은 "국내에 저장돼 있는 미국의 WRSA 탄약은 약 58만여 톤이고 이중 20년 이상 된 장기저장 탄약이 전체의 91% 인 52만여 톤에 달한다"고 하면서 "미국은 그동안 대부분 미군이 사용하고 남은 초과보유탄과 더 이상 쓸 수 없는 도태탄을 동맹국 전쟁예비물자란 명목으로 한국에 들여와 저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반도를 고물 탄약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놨다"고 분개했었다.

그러면서 강 의원은 "앞으로 이 나라를 60, 70년대, 심지어 40년대 미제 고철탄의 무덤으로 황폐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합의도 하지 말라"고 국방부에 경고했다.

국방부가 "탄약이 대부분 사용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탄약 전량 인수 밀약에 따라 미국이 책임졌어야 할 정비비용을 모두 떠안기 위한 전제를 깔아두는 것이다.

당시 강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1년 시점으로 정비대상 WRSA탄은 11만7605톤이었지만 미국이 32만 달러를 들여 정비한 양은 고작 5.5%에 불과한 6488톤이었다.

강 의원의 이런 지적에 대해 국방부는 "탄약의 특성상 장기저장에 따라 많은 정비소요가 발생됐고 WRSA 탄약의 정비책임은 미 측에 있기 때문에 정비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미 협의를 계속해 오고 있으나 미국의 가용예산 부족으로 정비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미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WRSA탄을 사실상 방치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는 또 국방부가 대부분 사용가능하다면서 WRSA탄을 모두 인수할 경우 미국이 책임졌어야 할 정비비용을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방부는 미국이 이제까지 하지 않은 WRSA탄을 정비하는 데만 일시적으로 100억 원 안팎을 부담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탄약이 노후한 관계로 매년 소요되는 정비비용은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국방부는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성능검사도 하기 전에 "사용 가능" 판정부터
▲ 국방부는 폐기돼야할 미군 탄약을 인수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로이터=뉴시스

국방부가 "대부분 사용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탄약 성능검사를 한 결과를 갖고 협상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것 또한 밀약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국방부는 1일 발표에서 "미국과 한국이 각각 성능시험과 검사가 종결된 이후에 인수물량, 반출물량, 비용 및 가격, 비군사화 물량 등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대부분 사용 가능하다"는 국방부의 주장이 성능검사도 거치지 않은 순전한 억측이거나 아니면 성능검사의 결과를 대미 밀약에 짜맞추겠다는 선언과 다름 없다.

국방부는 "미 측이 성능시험 결과 및 검사에 관한 자료를 한국에 제공, 한국은 이 자료를 검증하고 성능시험도 실시한다"고 밝혔는데 이미 "대부분 사용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이런 성능검사 과정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음을 국민 앞에 스스로 선언한 셈이다.

WRSA-K를 구입하라는 미국 국방부의 요청을 2000년에 거부한 적이 있는 우리 국방부가 이날은 "WRSA 물자 처리를 위한 쌍방의 의도를 충분히 확인하고 인식의 공감대를 같이 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진전을 보았다"면서 사실상 인수 입장으로 선회한 것도 대미 밀약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회계연도 2000년과 2001년을 유효기간으로 WRSA-K를 한국에 판매하여 미국 국방비 지출을 늘릴 권한을 국방부 장관에게 주는 법이 미국 의회에서 제정되었으나 당시 한국은 미 국방부의 WRSA-K 구입 요청을 거절했다. 그것은 미국이 1조 원이라는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한국에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은 우리 국방부가 당시 WRSA탄이 1조 원이나 주고 구입할 가치가 없는, 즉 경제성이 없는 거래라고 이미 판단했음을 말해 준다.

그런데 7년이 지난 이제 와서 "대부분은 사용 가능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탄약의 경제성이나 성능에 상관없이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한미 FTA 이후 한미관계가 아주 전향적으로 상당히 우호적으로 잘 해주고 있고, 미국도 한미갈등 요소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말했다.

WRSA탄 협상과 아무 상관도 없는 FTA를 거론하고 마치 미국 이야기인듯이 하면서 한미갈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국방부의 화법은 한미동맹을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굴욕적 태도로 WRSA탄 협상에 임하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탄약 폐기 공장은 왜 짓나

국방부의 주장대로 WRSA탄이 "대부분 사용 가능한 탄약"이라면 충북 영동에 건설 중인 탄약 폐기를 위한 비군사화 시설(연간 7041톤을 소각하는 시설 2기와 연간 7171톤의 처리 능력을 가진 용융시설 20기)은 불필요한 시설을 짓는 셈이다.

그러나 2003년 체결된 '충북 영동의 비군사화시설의 건설, 운영에 관한 한미 합의각서'는 "동맹군용 전쟁예비 탄약 중 소요 초과 구형 도태 상태이거나 수리할 수 없는 탄약은 우선적으로 한국에서 비군사화된다"(제3조 아항)고 규정함으로써 이 비군사화시설의 1차적인 처리 대상이 바로 WRSA탄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 합의각서 전문은 환경과 안전문제뿐만 아니라 그 규모에서도 1974년 당시에 상정되었던 야외소각과 야외기폭 방식으로는 탄약 비군사화를 더 이상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폐기해야 할 WRSA탄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WRSA탄을 인수해서 우리나라에서 폐기처분하겠다는 대미 밀약을 하고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방부가 "대부분 사용가능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충북 영동에 비군사화시설을 짓기로 한 것 자체부터가 WRSA탄을 한국에서 폐기처리하려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점에서 WRSA탄 인수도 안 되지만 지금 짓고 있는 비군사화시설도 백지화되어야 한다.

국방부가 '미군 소유 탄약의 저장관리비 지원금'에 대해 보여준 태도도 대미 밀약 의혹을 짙게 하고 있다.

"WRSA-K 저장, 관리비용은 우리가 대고 소유권은 미국에 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국방부 군수단장은 "관리비용은 SALS-K예산(방위비 분담금의 하나로 한국에 저장된 미국 소유 탄약의 저장관리비를 우리 국방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을 가리킴 : 필자 주)에서 자기네들(미국)이 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드는 것은 없다"고 답했다. 기자의 재확인에도 군수단장은 "우리가 돈 주지 않는다"고 다시 확인했다.

미국 소유 탄약의 저장관리비를 방위비 분담금으로 지원하는데도 그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 돈으로 보는 WRSA탄 협상 한국 측 대표의 인식은 우리의 국익 손실이나 우리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는 것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할 것임을 충분히 예견케 하는 것이다.

국방부가 대미 밀약을 했다면 앞으로 협상은 하나마나며 WRSA탄 인수를 정당화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협상에 앞서 국방부는 이런 대미 밀약 의혹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하며 국회 또한 이런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한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한미동맹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내는 세금이 미군 폐탄약을 인수하는 비용으로, 또한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파괴하면서 탄약을 폐기하는 시설을 짓는 비용으로 쓰이는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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