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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에서 베스킨라빈스를 먹는다?

안락한 생활에 높은 보수…美 외교관 경쟁률 5 대 1

극비리에 건설되고 있는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의 전모를 담은 사진이 인터넷에 게재돼 미 국무부가 삭제 요청을 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재외 미국 공관 중 최대 규모로 건설 중인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의 설계도가 설계회사인 '버거디바인예거사(BDY)' 웹사이트에 게재됐다가 이같은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국무부가 삭제 요청을 한 것이다.

곤잘로 갈레고스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 같은 정보유출이 해외 근무 인력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된 새 대사관의 규모나 구조는 공사 초기부터 공개됐던 것이라 굳이 삭제 요청을 할 필요까진 없었다는 평가다.

"대사관 배경으로 영화 찍는다면 세트장으로 낙점"

이같은 과민반응은 최근 바그다드 내 미국 대사관 운영비용이 베이징 미 대사관의 20배에 달한다는 보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특히 미국의 진보적 언론인 톰 앙헬하르트 씨가 BDY 사이트에서 이 설계도를 구경한 후 지난 달 29일 자신이 운영하는 매체 <톰디스패치>에 올린 글에서, 새 대사관은 한 마디로 "바그다드의 콜로서스"라고 비판하면서 부랴사랴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앙헬하르트씨는 이 글에서 미국의 대사관을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던 '거상(巨像)'이나 지진으로 사라진 그리스 로도스 섬의 콜로서스(Colossus)에 비유하면서 미국이 이라크에 이처럼 거대한 대사관을 짓는 이유가 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이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자원의 보고이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을 미국의 통제 아래 넣기 위한 부시행정부의 세계전략의 첫 실행이었다면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은 이러한 전략을 현장에서 집행하기 위한, 이를테면 '제국의 총독부' 역할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일단 전체 규모부터가 "짧은 투어를 해야 할 정도로" 넓다. 높은 콘크리트 방벽으로 둘러싸인 104 에이커(12만7000평) 부지에는 380여 가구를 수영할 수 있는 숙소와 비밀안전 가옥, 학교, 쇼핑센터, 영화관, 식당, 전기·수도·통신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들 건물에 사용된 자재들도 "수도꼭지가 금이 아닌 것만 빼면 사담 후세인의 궁궐에 뒤질 게 없는" 고급 제품들이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풀 하우스(pool house)'. 야자나무가 점점이 박혀 있는 풀장 주변에는 최고급 잔디가 깔려 있고 뒤편에는 따로 테니스 코트가 마련돼 있다. 복무 기간 동안 한 시라도 안전이 보장된 '그린존'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미국 공무원들을 위해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까지 특별히 마련한 것이다.
▲ 바그다드 안의 미국, 철저한 보안 경비로 바그다드의 마지막 안전지대로 꼽히는 그린존 전경. ⓒ로이터=뉴시스

이라크 무장 세력의 무차별 공격으로 '그린존' 내 야외활동 마저 제한된다면, 창문도 없이 꽁꽁 싸매놓은 '레크레이션 센터'로 가면 된다. 이 외에도 대사관 내 PX, 쇼핑센터, 레스토랑 등을 한가로이 돌아다니다 보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릴지도 모른다.

앙헬하르트 씨는 이처럼 완벽하게 갖춰진 편의시설을 두고 "'대사관 영화'가 나온다면 여기가 (촬영장소로) 제공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현재 박스오피스를 휩쓸고 있는 <캐러비안의 해적>의 아류작으로 <중동의 해적>같은 게 나온다면 말이다.

미 국무부가 이라크처럼 '특별한 지역'에 어린이 입국을 허용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설계도상에선 공무원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도 설치될 예정이었다.

쇼핑몰에 풀장까지, 이라크 맞아?
▲ 추수감사절 축하 케이크를 장식하고 있는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 내 현지 직원.ⓒ로이터=뉴시스

총 5억92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대사관은 오는 9월께 완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대사관 직원들은 현재 임시 대사관으로 사용 중인 옛 후세인의 궁궐에서도 충분히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워싱턴포스트>는 "해외 근무는 어려운 임무이지만 그린존 내 국무부 공무원들은 내 집 주방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편업무와 중소기업지원, 이라크 재건 업무, 정책 자문 업무 등 '공식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은 1000여 명이다. 그러나 현지 직원과 이들에게 서비스를 베풀기 위해 고용된 인력을 합하면 대사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4000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이 이라크에서 사용하는 물품은 모든 것이 미국에서 공수된다. 기본적인 식자재뿐 아니라 과일, 요구르트에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까지 포함된 모든 먹거리가 '안전한 미국산'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정수된 신선한 물을 마시기 위해' 물만은 쿠웨이트에서 공급받는다.

미국 외교관들은 '그린존'이란 별세계에 들어오기 위해 5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이라크 개전 이래 1700명 정도의 외교관이 이라크 근무를 자원했는데, 이처럼 경쟁률이 높은 데에는 특수근무지로 분류돼 기본급의 70%를 더 받을 수 있는데다가 시간외 수당, 장시간 근무수당 등 짭짤한 부수입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교관들에게 안전을 넘어 안락한 생활과 고임금을 보장하느라 지난 한 해에만 대사관 운영 비용으로 9억2300만 달러를 썼다. 인건비를 제외한 비용의 대부분은 대사관 주변을 경호하는 데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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