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센터 '들'의 배경내 상임활동가가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에 집중하는 이유다. 특히 그는한 노동 연구가의 말을 빌려 "우리는 중대재해가 발생하고 나서야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며 학교폭력 문제를 "중대재해"라고 표현했다.
배경내 활동가는 "학교폭력인가 폭력학교인가 - 테두리에서 바라본 학교인권의 속살"이라는 주제로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 토즈 신촌본점에서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은 '교육공동체 벗'과 '알라딘'이 "누가 진짜 일진인가 -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진행한 마지막 순서였다. (☞바로 가기 : '교육공동체 벗' 온라인 커뮤니티)
▲ 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배경내 ⓒ교육공동체 벗(최승훈) |
"차별이 묵인되는 공간, 폭력 해결 기대감 없는 피해자들"
배경내 활동가는 "영화 <도가니>를 통해서도 학교폭력과 관련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가니>의 영어 제목이 <SILENCED>"라며 "우리는 (영화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당한 성폭행 사건에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제목은 '침묵이 강요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 영화 <도가니>의 영어 제목은 <SILENCED>이다. ⓒ삼거리픽쳐스, 판타지오 |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폭력을 당해도 관련 사실을 교사나 부모에게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는 교사나 부모가 진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차별이 일상적으로 묵인되는 공간에서 차별에 의한 폭력이 제대로 해결되는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논리를 알고 있는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꼴이다. 결국 소수성을 가진 학생들은 "동떨어진 존재, 함부로 해도 될 존재로 취급된다".
배경내 활동가는 지난 6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도 "학교에선 맞아도 되는, 쓰레기 취급을 당해도 되는, 심부름해도 괜찮은 아이로 여겨지는 학생이 꼭 있다"고 말했다. "폭력은 소수성과 계속해서 서로 결합하며 발생한다"는 그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관련 기사: "교육부의 '밥상머리 교육'? 밥 먹다 체할라")
"'증언하는 힘' 키워야"
그렇다면 우리는 피해자들을 말 못하는, 보호받아야 하는 무력한 존재로 볼 것인가. 배경내 활동가는 "'이들의 사회적 증언력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증언을 진심으로 들어주며 피해자 스스로 "싫어요", "나빠요", "안돼요"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
그는 "'폭력의 희생자로 지목된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표현할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가 이들의 언어를 해석할 능력이 부족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져야 한다"며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인권 불감성"이라고 충고했다.
"주변이 움직이면 사회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
배경내 활동가가 '소수성'에 이어 주목한 단어는 '주변성'이다. 그는 철학자 고병권 씨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머물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사회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는 말에 주변과 폭력의 관계를 고민하게 됐다고 전했다. "주변에 있는 존재들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알아야 주변을 매개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가 설명한 '주변'의 사전적 정의이다.
주변(margin) 1. 부차화 : 중심,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존재들. 자기 언어를 갖기 힘듦. 대상화되기 쉬움. 2. 가장자리, 끝, 한계 : 끝에 매달려 있는 존재들. 내몰려 있기에 더더욱 매달린다. 3. 마진, 수익 : 주변에 의지함으로써 중심에 이들을 가져다주는 존재들. 무보수화, 저임화로 인해 쥐어짜임(착취)을 당하게 됨. 4. 여백, 공백 : 안에 포함되어 있으되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 잘 보이지 않기에 더 폭력의 대상이 되기 쉬움. |
첫째, 부차화 된 존재들은 자기 이야기를 해도 사회적으로는 의미 없는 음향으로 취급된다.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부차적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2007년 대선, 2010년 6.10 지방선거, 그리고 이번 대선까지 '기호0번 청소년 후보'를 내고 있다. 이들은 "사회는 우리를 딸려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늘 누군가에 의해 (우리의 생각이) 대변되고 있다고 함부로 가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 사회적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이주민과 노숙자다. 이들은 지금 위치해 있는 가장자리에서 언제 내몰릴지 몰라 굉장히 불안해한다. 반면, 내쳐지지 않기 위해서 주류에 기대 매달리기도 한다. 빵셔틀을 당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무리 속에 끼기 위해 빵셔틀을 자임하는 경우와 같다.
셋째, 주변에 위치하며 중심에 수익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해석이다. 지난해 8월 26일 가짜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우리가 멈추면 너희도 멈춘다"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이 말은 '우리의 노동은 현실에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것, 노동이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노동이 멈추면 사회도 멈추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의 노동을 주변으로 보는 이유는 그를 통해 수익을 얻는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외침이다.
넷째, 포함되어 있는데도 드러나지 않는 존재를 말한다. "남자친구 있으세요?"라고 묻는 것은 상대방을 이성애자로 전제하고 있다는 것.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자가 '없다'라는 전제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사회적으로 의제화도 잘 되지 않는 이런 상황은 모두 여백으로 처리된다. 드러나지 않는 주변부에 놓인 이들이기에 더더욱 폭력의 대상으로 지목되기 쉽다.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그들이 겪는 폭력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포스터. 이들은 지난달 20일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내놔라!'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가졌다. |
학생인권조례, 소수성과 주변성의 산물
이처럼 '사회적 인권 감수성'은 '소수성과 주변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0개월이 됐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배경내 활동가는 공저한 책 <가장 인권적인, 가장 교육적인>(교육공동체 벗 펴냄)에서 "학생인권은 바로 다수의 '순종적인 학생'들의 말문을 틔우고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열어주고자 하는 기획"(66쪽)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행정가와 교사에 비해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소수성과 주변성을 이해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는 2010년 10월 5일 공포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참여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우리 교육은 학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배경내 활동가는 "학생 세 명 중 한 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한다"며 "그 이유가 성적비관(45%)과 생활지도에 대한 불만(37.1%) 때문"이라고 말했다.(지난 7월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중학생 1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3%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는 '생활지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학생이 약 40%라는 것은 교사와 학생 간 언어적 또는 물리적 폭력이 동반된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생활지도 시 빈번하게 발생하는 모욕과 같은 언어폭력이 학교에 일상화되어 있다"고 지적하며, "모욕이 일상화되어 있는데 어떻게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이 발현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셈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든 '공손한 태도'로 '건의'하라고 요구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들어서야 할 자리에 '학생다움'만 부각돼 버리는 것이다. (중략) "학생인권이 학생을 망친다", "인권이네 뭐네 하는 바람에 교사들이 생활지도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다"라고 목청을 높이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학생, 아니 사람에 대한 깊은 불신을 마주하게 된다."(위의 책, 63쪽)
교사와 학생, 힘에 따른 차이가 감정의 차이로
배경내 활동가는 "현재 학교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한 학교의 경고문을 예로 들었다. 교사 화장실을 쓰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한 경고문에는 "교사 화장실을 쓰다 걸리면 7분간 산소호흡 중단함"이라고 쓰여 있다. '이용 금지' 보다는 완곡한 표현일 수 있지만, '산소호흡 중단'이라는 경고에는 협박성이 짙게 배어 있다.
▲ 배경내 활동가는 "화장실을 보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보인다"고 말했다. |
교사와 학생의 차이는 이런 경우에서도 잘 드러난다. "선생님이 너 상담실로 오래!"라고 하면 학생 대부분의 반응은 "너 뭐 잘못 했냐?"라는 식이다. 교사가 대화하기 위해 학생을 불러도 학생들은 '내가 뭘 잘못했나?' 의아해하며 꾸중 들으러 간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감정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배경내 활동가는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호관계가 이런 정서적 반응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정말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소통의 기본 조건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학생을 상대로 한 꾸중이 먼저인 학교 문화에 대해 "이런 고민 없이 교사에게 털어놓지 않았다며 학생만 꾸중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폭력 사건이 눈에 띄자마자 "야, 네가 잘못했다"라며 교사가 잘못한 사람이 누군지 지정해준다. "사과해, 사과 안 해? 그럼, 너 잘못했어. 벌점!" 아니면, "너 잘못했으니 맞아야 되겠구나"라며 (친구를) 때렸다고 (교사가 학생을) 때린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교육이 진행됐다."(지난 6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 중)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면 죽을 만큼 맞는다?
중학교에 다니는 형우(가명)는 친구에게 빌려준 필통을 받으러 옆 반에 갔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A가 "너, 왜 다른 반에 와서 분위기 흐리냐?"면서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는 주변이 지켜보는 가운데 형우의 성기를 건드리며 비아냥거렸다. 화가 난 형우가 자를 집어 들고 "그러지 말라"고 하다가 A의 눈 밑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격분한 A는 형우를 교실 밖으로 끌어내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이어서는 60cm 정도 길이의 자물쇠절단기를 가져와 형우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A를 말려 자물쇠절단기를 내려놓게 만들었지만, A는 형우의 머리채를 잡고 캐비닛에 머리를 여러 차례 부딪히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형우는 저녁부터 구토를 시작했고 이튿날 뇌출혈로 수술을 받았다.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A는 과연 누구일까. 배경내 활동가는 "지난 4월 5일 대구의 한 중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며 "가해자 A는 교사"라고 말했다.
이 교사는 왜 이렇게 격분했을까. 그는 "눈 밑에 난 상처가 학생이 자신을 방어하다가 생긴 것으로 보지 않고, 학생이 교사의 권위에 도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자물쇠절단기가 등장한 공간은 교무실이다. 따라서 주변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교사들이었다. 그는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더 생긴다"며 "교사들은 왜 가만히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주변 교사들은 학교에서 벌어진 폭력 상황인데도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사다움'을 상실한, 폭력만이 존재하는 '폭력학교'의 모습이다.
배경내 활동가는 또 "왜 이 교사가 학생의 성기를 만지면서 비아냥거렸을까도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사가 학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한 것인데, 이는 약자를 여성화해 자신보다 낮은 위치로 끌어내리는 행위이다. 사람 대 사람으로의 존중이 아니라, 강자 대 약자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본전제를 만드는 방식이다.
'대상의 여성화'는 2012년 EBS 다큐멘터리 개막작이었던 <불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불리>는 미국 내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 기사 "'계집애 같다' 놀림받던 아이가 자살한 이유?")
"우리가 폭력을 특별한 괴물들이 저지르는 범죄 행위라고 생각하면 우리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차별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괴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한, 문화에 대한 성찰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쟤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수군거림, '튀는 애는 모두에게 불편을 줄 뿐'이라는 비난에 나도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폭력은 계속 묵인된다. "
"양은 양, 민주주의를 통해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자"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다. 방법도 여러 가지가 제시됐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이분법과 처벌만 있을 뿐,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화 <밀양>에서 아이를 유괴범에게 잃은 이신애(전도연 역)는 종교의 도움으로 유괴범 면회를 간다. 그런데 유괴범이 '저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말하자, 이신애는 미친듯한 반응을 보인다. 유괴범을 처벌한 것은 국가였고, 그 유괴범을 구원한 것은 신이었다. 이신애의 자리는 없었다. 유괴범을 용서할지 말지를 결정할 기회조차 빼앗긴 셈이다."
배경내 활동가는 "학교폭력에 대해 말하는 방식, 벌주는 방식도 이런 것 아닐까"라며 영화 <밀양>을 언급했다. 그는 "'누구에게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피해자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피해자는 생존자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고병권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우리가 여전히 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 민주주의가 직접 실행될 때 내가 내 삶에 대해서 요구하고 발언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하고, 설명이 되지 않을 때는 설명을 요구해야만 민주주의가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야 폭력으로부터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폭력을 근절시키지는 못하더라도 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설령 피해를 입었어도 그 피해가 치명적이지 않을 만큼 나의 발언력이 지속가능한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배경내 활동가는 "학교폭력 대응 담론에서도 이 같은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어떤 경험이 민주주의를 떠올리지 못하게 했나'를 고민해야 한다"며 "'말대꾸 하지 마', '너희와 상관없어. 내일 모레 중간고사야', '이런 노래 뭐 하러 듣니. 공부하는 데 방해만 된다'와 같은 것들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에 문제제기를 했을 때 '이런 것은 장기적 절차와 논의를 거쳐 해결해야 한다. 비판적 사고방식, 부정적 사고방식 필요 없다. 여러분 인생에 도움 안 된다. 여러분을 위해 교사들이 노력한다'처럼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학교폭력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연 후 진행된 일문일답이다. 질문 1. 학교폭력 문제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의 축소이기도 한데, 집에 와서도 폭력에 휘둘리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학교에서 해결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주변의 민주주의가 안 되면 해결 불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작은 단위가 가정인데,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묻고 싶다. 배경내 : 아이들은 가정을 통해 '사회가, 또는 어른이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라고 배운다. 아이들이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에 대한 존중감을 가질 수 있으려면 가까운 곳에 그런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의 양육 태도의 변화가 중요하다. 부모가 없더라도 폭력을 당할 뻔한 상황에서 낯선 존재지만 나를 지지해주는 응원과 목소리를 경험해야 자기 목소리를 내고 키워갈 수 있다. 어려서부터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왜 이러세요?", "그만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싸가지(?)가 있어야 할 때와 없어도 될 때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게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또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도 "이 아이 이야기가 맞네요"라고 맞장구 쳐주는 사회적 분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런 것이 부모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을 하려면 부모도 불편함을 겪는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아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는 부모 입장에서도 피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 잘 듣는 아이를 기를 것인가', '질문하는 아이를 기를 것인가', 그리고 '내가 아이를 기른다고 할 것인가', '아이가 자란다고 볼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질문 2. 학생들이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마음을 열고 말할 수 있게 할 수 있나. 배경내 : 거리 청소년을 만나 이야기 하는 수업을 하고 있는데, 보호를 제공하는 '쉼터'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반응이 굉장히 다르다. 흔히 밥을 미끼로 청소년들에게 '언제 나왔니?', '어디서 자니?'라며 자꾸 캐내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접근하면 청소년들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 밥만 먹으면 그만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쉼터는 청소년과 상담사 간에 일 대 일로 대화를 하거나, '저 아이를 꼭 잡아야 한다'라는 게 없다. 상담사들은 그저 준비된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 책자만 나눠준다. 청소년들도 부담 없이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금새 친해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캐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 문제없는 사람과 문제투성이인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공간 안의 테이블을 마주한 관계'인 것이다. 청소년들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꺼내놓을 만한 곳'이라는 신뢰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한다. 그 역할을 잘하는 상담사들을 보면, 실수를 하거나 우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낸다. 교사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마음을 열고 청소년들을 대하다 보니,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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