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0여 년 전, 친구한테 이야기했던 게 생각난다. 내용은 내가 만약 교회를 세운다면, 뾰족탑에 십자가도 없애고, 우리 정서에 맞는 오두막 같은 집을 짓겠다. 물론 집안 넓이는 사람이 쉰 명에서 백 명쯤 앉을 수 있는 크기는 되어야겠지. 정면에 보이는 강단 같은 거추장스런 것도 없이 그냥 맨마루 바닥이면 되고, 여럿이 둘러앉아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는 예배면 된다.
00교회라는 간판도 안 붙이고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하다면 `까치네집'이라든가 `심청이네 집'이라든가 `망이네 집'같은 걸로 하면 되겠지. 함께 모여 세상살이 이야기도 하고 성경책 이야기도 하고 가끔씩은 가까운 절간의 스님을 모셔다가 부처님 말씀도 듣고, 점쟁이 할머니도 모셔 와서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마을 서당 훈장님 같은 분께 공자님 맹자님 말씀도 듣고, 단오 날이나 풋 굿 같은 날엔 돼지도 잡고 막걸리도 담그고 해서 함께 춤추고 놀기도 하고, 그래서 어려운 일, 궂은 일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그런 교회를 갖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괜히 혼자서 가슴을 설레어도 봤지만 그냥 생각만으로 그치고 말았다."
2007년 5월 17일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의 "우리들의 하나님"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오늘의 교회가 이 이야기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한 그는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귀국한 이후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교회 종지기 등 어려운 생활을 했고 1955년 이래 결핵으로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지금까지 지내 왔다. 강아지 똥이 민들레가 되는 비밀을 밝힌 권정생 선생님의 책은 이미 널리 읽혀진 바 있으나 미국에 오래 살다 온 나로서는 뒤늦게 알게 되어 그의 면모를 접하면서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얼마 전 지인들과 무주를 다녀오는 중에 그곳에 계신 목사, 미장이, 농부로 지내는 허병섭 선생님 댁을 들렸다 온 바 있는데, 그 여파인 탓인지 권정생 선생님의 부음에 충격이 크다. 녹색운동에서 미래를 보고 흙과 물과 하늘에 뜻을 둔 이들의 삶은 실로 아름답다. 이를 제대로 따르지 못함이 단지 송구스러울 뿐이다. 살아 생전 꼭 뵙고 싶었는데 그리 하지 못해 안타깝고 이런 분이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그의 글과 말이 어떤 경우에는 직격탄과 같은 거셈이 있지만, 그의 삶 자체가 워낙 올바르니 달리 반박할 방도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발적인 가난과 생명에 대한 끈질긴 존중, 그리고 더불어 함께 사는 인정을 귀히 여긴 권정생 선생님의 모습이 그의 글 마디마디마다 박혀 먹물이 들어 뻐기는 머리를 후려친다.
잘 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세상의 못남에 대해, 못난이들이라고 업신여김을 받는 이들의 가슴에 숨쉬고 있는 똑 부러진 새 세상에 대해 그 이처럼 호소력 있게 증언할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간디가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일을 아무리 서툴게라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서구 자본주의에 사육되어가는 인도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자존감과 생태적 삶에 대한 간디의 가르침은 위대하다.
이 땅에 권정생 선생님 역시 그에 못지않게 기름진 욕망에 사로잡힌 이 세대를 깨우친 스승이다. 인생 70이면 요즈음은 너무 짧은 생애다. 그래도 그의 삶은 빛난다. 겉보기에 남루한 듯 하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님의 영전에 꽃 한 송이 바친다. 권.정.생, 이 석자 이름이 우리에게 있어 잘못 길을 들어도 다시 옳은 길을 찾을 수 있을 듯 하여 진정으로 감사하다. 아직 우리는 절망하기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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