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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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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 13장 화광동진(和光同塵)<64>

갖바치는 길을 가다 정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자 마루에서는 학당의 어린 교생 대여섯 명이 시회(詩會)를 하고 있었다. 한 교생이 누군가를 비웃는 시 두 구절을 외고 나자 모두들 배를 잡고 웃었다.
  
  일부라도 소학을 열심히 읽소
  사지의 공명이 절로 온다네.
  一部小學須勤讀
  司紙功名自然來
  
  갖바치는 삿갓을 쓴 채 교생들이 무엇 때문에 배를 움켜잡고 웃는지 헤아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단 옷차림에 구슬을 단 허리띠로 보아 교생들은 세도께나 부리는 자녀들이 분명해 보였다. 어린 교생들이 어른 흉내를 내듯 술잔을 돌리다 말고 갖바치에게 말을 걸었다.
  "뉘시오."
  "지나가는 객입니다."
  "이 자리에서 술값은 시 한 수이니 이 잔을 받으시겠소."
  "시를 모르는 사람이 어찌 공짜로 술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과객도 <소학>이나 열심히 읽어야겠소. 그게 가장 벼슬 하기 쉬운 길이라오. 하하하."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까."
  "있다마다요. 유생 조광조라는 사람이 <소학>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더니 마침내 벼슬을 했지 뭡니까. 이제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갖바치는 급하게 그 자리를 물러섰다. 그 바람에 짚신이 한 짝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러자 정자 마루에서 갖바치를 지켜보던 교생들이 다시 큰소리로 웃었다.
  <소학>은 김굉필의 제자들이 스승이 했던 대로 사숙하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교생들이 비아냥댄 것처럼 시 속의 인물은 조광조가 틀림없었다. 종이를 만드는 관청인 조지서(造紙署)의 책임자로서 조광조가 종 6품의 벼슬인 사지(司紙)에 오르자, 조광조를 조롱하기 위해 누군가가 지어 퍼뜨린 시가 분명했다.
  갖바치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동시에 유생 김식과 박훈도 함께 벼슬을 받았는데, 유독 조광조를 비웃는 시만 떠도는 것은 누군가의 치밀한 모략이 계산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정암을 시기하는 사람이 벌써 나타나다니, 이거야말로 불길한 징조가 아닌가.'
  갖바치는 금강산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급히 한천의 집으로 돌렸다. 역관이 된 한천은 지금도 조광조와 갖바치를 오가며 심부름을 했고, 지난달 중국에서 돌아온 뒤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한천은 갖바치의 상좌이기도 하지만 조광조의 제자이기도 했다.
  한천이 역과를 급제하여 벼슬한 데에는 조광조의 조언이 컸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한천은 갖바치의 상좌 노릇을 하고 있을 터였다.
  "큰스님, 어인 일이십니까."
  한천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중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갖바치에게 입국인사를 드리기 위해 낙산으로 갔을 때, 갖바치는 자신이 금강산으로 들어가니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저는 큰스님께서 금강산으로 가신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문안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 불도들은 마음이 오고가면 그만이지 반드시 발걸음을 분주하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 오늘 여기 온 것은."
  갖바치가 말을 하다 말자 한천이 재촉하여 물었다.
  "무엇이옵니까."
  "정암을 비방하는 시가 나돌고 있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천은 갖바치로부터 그 시의 내용을 듣고 나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누가 퍼뜨리고 있는지 알아보면 금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짐작되는 사람이 있단 말이냐."
  "필시 반정의 공신들 편에 섰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구업(口業)을 짓지 말거라. 입으로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더냐. 더구나 너는 나라의 녹을 먹고 있으니 더욱 입조심을 해야 할 것이야."
  "큰스님, 알겠사옵니다. 하오나 반정의 공신들에게 덕을 입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암 선생님 같은 깨끗한 인물이 등장하게 되면 자신들의 처지가 위태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한천은 자신의 스승이 조롱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관에 나아가 보니 공신 자제들의 횡포가 극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차였다. 힘없는 관리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었다. 그들의 하인들까지 주인의 위세를 믿고 쌍소리를 하거나 심지어는 주먹을 휘둘렀다. 한천도 버릇없이 구는 이행(李荇)의 종을 나무랐다가 멱살을 잡혔던 것이다.
  이행이 사간원의 우두머리인 대사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박원종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행은 박원종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행이 퍼뜨렸을 것입니다."
  "어허, 구업을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 자는 박원종이 죽었을 때 뭐라고 칭송한 인물인지 아십니까. 중국의 이윤(李尹)과 곽광(霍光)에 비견할 인물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연산주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던 이행이 부패한 박원종의 사람이 된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연산주가 일으킨 갑자사화 때 응교로 있다가 장형과 유배형을 받아 충주로 귀양 갔고, 다시 박은의 일에 연좌되어 모진 장형을 받았고, 다시 응교 때의 일로 혹독한 고문을 받은 후 사형을 받았으나 감형되어 함안으로 가 관청의 종이 되었고, 또 귀양지에서 불려와 옥에 갇히었다가 거제도로 귀양을 갔던, 연산주에게 가장 박해를 받았던 벼슬아치 중 한 사람이 이행이었던 것이다.
  "박원종이 죽기 전에 이행을 대사간에 올린 것도 자신의 사후를 대비해서 그랬을 것이옵니다. 생전의 허물을 들추어 탄핵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행이 새 사람의 등장을 두려워 한다는 말이구나. 네 말이 옳다 하더라도 어디 한두 사람뿐이겠느냐."
  "그렇습니다. 이장곤도 그렇고, 남곤도 그렇고, 심정도 그렇고, 홍경주도 그렇고 박원종의 덕을 본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다 새 사람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여길 것입니다."
  "모두가 정암이 극복해야 할 사람이구나."
  "정암 선생님을 조롱하는 시가 나왔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해주는 징조입니다."
  "허나 내 생각은 다르다."
  "큰스님의 생각은 무엇이옵니까."
  "시비를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 허나 더 중요한 것은 시비를 아우르는 것이다. 바다를 보아라.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섞여 있느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큰 벼슬아치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야 하느니라."
  "정암 선생님이 한직인 사지에 오른 것만 가지고도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는데, 마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시비는 시비를 낳는 법이다. 흑과 백을 가르는 대쪽 같은 정암의 성정으로 보아 나는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큰스님의 말씀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비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야 아우르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시비의 근원을 알아야 시비를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네 말이 옳다. 누가 시중에 시를 퍼뜨렸는지를 알 수 있다면 시비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가 은밀하게 조사하여 정암 선생님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허나 조심해야 한다."
  "큰스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냐."
  "정암 선생님을 만난 뒤 입산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정암에게 할 말을 이미 네게 다 했다. 헌데 왜 만나라고 하는 것이냐."
  "큰스님의 말씀을 제가 전할 수도 있으나 이 일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하오니 큰스님께서 정암 선생님에게 한 말씀을 하고 가시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알겠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정암을 모시고 오늘 밤에 내 낙산 처소로 오너라."
  
  그날 밤.
  한천은 조광조를 데리고 낙산의 갖바치를 찾았다. 조광조는 의외로 차분했다. 용인 집안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벌였지만, 조광조 자신은 종이를 만드는 조지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므로 사직서를 품에 넣고 다녔던 것이다. 갖바치는 조광조의 방문을 받고 축하의 말부터 먼저 했다.
  "정암, 감축하오. 첫 벼슬이 종 6품이라니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조판서 안당(安瑭)이 천거하여 주어진 벼슬입니다만 마음은 내키지 않습니다. 세상에 이름이 드러나게 되어 부끄럽기도 합니다."
  "천거한 인물이 누구인지도 자못 중요한 일입니다. 헌데 안당이 천거했다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안당의 성품은 장중하고 말과 웃음이 적고 옳은 바를 지키는 직무를 행함에 과단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일찍이 호서관찰사로 나갈 때 지은 시도 그의 성품을 잘 나타내 주고 있었다.
  
  말고삐를 잡으면서 천하를 맑히겠다는 옛 사람의 일을 내가 어찌 감당하랴.
  다만 충과 의를 가질 뿐 내 한 몸을 꾀하지 않으리라.
  攬轡澄淸吾豈敢 只將忠義爾謀身
  
  김식과 박훈을 천거한 사람도 안당이었으니 그는 조광조 동지들과 의기투합할 수 있는 조정의 유일한 대신이 된 셈이었다. 더구나 안당의 청백하고 검소한 태도는 분명 호의호식하던 반정공신들의 그것과 선명하게 달랐다. 부인의 상사 때 경비가 없어 남에게 꾸고 빌려서 상례를 치를 정도로 가난하였으니 안당의 청빈함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탄복했던 사실이었다.
  "대사님, 저는 영달을 마음에 두고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판서의 천거로 벼슬을 받은 것은 뜻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감축 드리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벌써 세상에서 나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알고 있었습니까."
  "누가 퍼뜨렸는지는 모르지만 나를 시기하는 시가 저잣거리에 떠돌고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시비 때문에 빈도가 정암을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일이라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벼슬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당당하게 과거 급제하여 세상에 도를 행할 계제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받은 벼슬을 사임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번의 벼슬은 실상이 없는 헛된 명예입니다. 헛된 명예가 세상에 드러나고 말았으니 부끄러운 마음뿐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정암이 다시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갖바치가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조광조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대사님께서 저를 다시 보았다면 이전의 정암은 어떠했습니까."
  "이제까지 정암의 거죽만 보았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비로소 정암의 골수를 본 것 같습니다. 하하하."
  갖바치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나 한천은 벼슬자리를 내팽개치는 조광조가 야속했다. 중종이 신임하는 이조판서 안당이 천거했다면 앞으로 승승장구할 텐데 굳이 어렵고 먼 길을 가겠다고 하니 답답하기조차 했다. 그러나 한천은 두 스승이 대화하는 데 감히 끼어들 수는 없었다.
  조광조가 조심스럽게 세상에 발을 디디려 하는 것은 숙부 조원기의 간곡한 편지도 한 몫을 했다. 타협을 모르고 요지부동 밀어붙이는 조카의 고지식한 태도를 잘 알고 있기에 자못 충고를 해주고 싶어 근신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효직(孝直; 조광조의 자)이 이번에 천거를 받았다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구나. 이름이 크게 나는 곳에 실상이 그대로 부응하기 어렵고, 영예가 있으면 헐뜯음이 있는 것은 고금을 통한 근심이니라. 조심하여 앞에서 신중하게 걸어가더라도 어려운데 만약 얼굴과 말에 교만한 빛이 있다면 몸을 망치게 됨을 경계해야 하느니라. 그러나 물론 이러한 말은 네게 당치않은 주의인 줄 알며, 나의 우려하는 바도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대저 사람으로서 천지간에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데 있어 중뿔나게 높이 날거나 멀리 달릴 수 없는 것이니 반드시 세속과 동화되고 많은 사람들의 미움은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형님(조광조의 부친)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너희들 3형제(榮祖, 光祖, 崇祖)가 모두 유자(儒者)로서의 학업을 하고 있다마는 아직은 학문이 다 성취되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옛적에 성인들이 벼슬살이를 시퍼런 칼날 위에서 춤추는 것에 비유하였으니 이번의 천거는 기쁨이 아니라 근심이다. 주위로부터 미움이 없고 칭찬도 없다면 이야말로 몸을 보호하는 길이니 명심하여라.
  
  한천은 아쉬운 듯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선생님을 시기한 자를 밝혀내고야 말겠습니다."
  "지금 벼슬길에 나갈 생각이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갖바치도 한천의 당돌한 말에 주의를 주었다.
  "정암은 아예 시비의 근원을 씻은 것이나 다름없다. 방편 중에 가장 수승한 방편이다. 헌데 네가 무슨 심사로 비방한 자를 밝혀내겠다는 것이냐."
  "그 자는 앞으로도 정암 선생님을 험담하고 선생님의 앞길에 재를 뿌릴 것입니다. 그러니 유비무환이라는 말처럼 그런 자를 알고 있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않겠습니까."
  "네가 중이 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없어진 시비도 다시 만들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광조는 한천의 말을 농으로 받아주었다.
  "네 마음에 집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냐. 마치 나와 수수께끼 놀음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낮에 큰스님께 말씀 드렸습니다만 선생님 동지들이 조정에 나가는 것을 시기하는 세력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허허, 그 자가 누구란 말이냐."
  "저는 심정이나 남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간 조광조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 선배들이라고."
  "선생님의 동지인 박경을 역모로 고변하여 죽인 자가 심정과 남곤입니다. 더구나 그때 선생님의 집안 형님뻘인 조광보도 죽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들이 선생님과 선생님의 동지들이 벼슬길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역모로 누명을 쓰고 죽은 박경 선배와 조광보 형님의 사건이야 벌써 수 년이 지났지 않느냐. 내게 서운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벌써 지나가버린 사건이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구나."
  "선생님은 잊고 싶을지 모르나 그들은 분명 두려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맞은 자는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지만 때린 자는 다리를 오므리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천의 말이 맞소. 가볍든 무겁든 업보를 피해 갈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지요.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갖바치가 손에 든 굵은 염주를 굴리며 조용히 말했다. 한천이 얘기하고 있는 요지는 시비의 근원을 알아야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으로 전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어느새 조광조는 한천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또 누가 의심되느냐."
  "박경과는 다른 경우가 되겠습니다만 이행이나 홍경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반정공신들과 한패로 놀아난 사람들이니까요."
  "한천아, 홍경주는 몰라도 이행은 아닐 것이다."
  갖바치의 견해에 조광조도 동조했다.
  "반정공신들의 세상이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눈치를 본 사람도 많다. 이장곤 같은 사람도 마음까지 반정공신들 편이었겠느냐."
  "허나 그들은 이미 권력의 때가 묻은 자들입니다. 그들을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신의 말석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벼슬아치들이 얼마나 간사하고 썩었는지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를 정도였습니다."
  "그래, 네 말을 잊지 않겠다."
  조광조는 우울했다. 세상에 나간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조지서의 사지에 오른 것만 가지고도 자신을 비웃는 시가 시중에 나돌 정도이니 앞으로 헤쳐 갈 길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조광조는 자세를 가다듬듯 앉은 채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가시덤불이 겹겹이 쳐져 있다 해도 물러서거나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천거 받은 조지서의 벼슬을 버리는 대신 초가을에 실시하는 알성시(謁聖試)에 급제하여 당당하게 벼슬을 얻으리라고 작심했다. 알성시란, 성균관의 문묘에서 임금이 집전하는 석전제(釋奠祭)를 지내는 달에 실시하는 과거의 한 방식이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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