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6일 미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조승희 총격사건의 후폭풍은 곧 가라앉았다. 미 정치권에서 총기규제를 강화할 기세인가 했더니 이내 수그러드는 모습이다. 1971년 창립된 미국총기협회(NRA)의 총력 로비, 이에 덧붙여 인기가 없는 총기규제 움직임으로 유권자 표를 잃지 않겠다는 정치권의 공범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조승희 사건은 21세기 패권국가 미국이 총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새삼 말해준다.
실상을 따져보면, 미국에서의 총격사건은 전에도 일어났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구조적 성격을 지녔다. 미국인들이 소지하고 있는 총기는 2억 정에서 2억5000만 정쯤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3억 인구이니, 거의 1인당 1정 꼴이다. 총기관련 범죄는 학교라고 무풍지대가 아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총기사건도 잊을 만하면 벌어진다. 학교 정문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될 정도다.
미국, 소형무기 수출규제에 딴죽 걸어
문제는 미국에서 생산된 총기류들이 지구촌으로 흘러들어가 유혈분쟁을 격화시키는 데 한 몫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소형무기 생산국이자 최대 수출국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대학원연구소가 진행해 온 소형무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소형무기는 3억3700만 개가 생산됐고, 그 가운데 절반쯤이 미국산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더불어 3대 소형무기 생산국이다.
유엔과 각종 비정부기구(NGO)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그동안 소형무기의 마구잡이 유통을 규제하는 데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 2001년 유엔에서 소형무기 불법거래 규제회의를 연 것도 기념비적인 노력의 하나다. 그런 움직임에 딴죽을 걸어 온 국가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
2006년12월 유엔총회에서는 투명한 무기거래를 위해 '국제무기교역협약'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를 검토하는 '전문가 집단'의 설치 결의안이 표결에 붙여졌다. 그 결과는 찬성 153 대 반대 1. 미국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국가였다. 각종 소형무기들로 말미암아 유혈의 악순환을 거듭해 온 아프리카의 33개 국가들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사상자의 90%가 소형무기 탓
21세기 들어 아프리카에는 약 10만 명의 소년병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것도 가벼운 소형무기 덕이다. 일반적으로 소형무기라 일컫지만, 보다 정확히는 소형무기와 경무기로 나눌 수 있다. '소형무기'는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소총, 기관총을 일컫고, '경무기'는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 휴대용 미사일을 가리킨다.
스위스 제네바의 국제대학원연구소가 진행해 온 소형무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서 유통되고 있는 소형무기는 5억5000만 개. 소형무기는 값이 상대적으로 낮아 전체 재래식 무기거래액의 10%쯤이다. 군사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소형무기는 핵폭탄이나 미사일, 생화학무기처럼 대량살상무기(WMD)는 아니다. 그렇지만 실제 무장투쟁에서 일어나는 사상자의 90%는 바로 이 소형무기 때문에 죽고 다치는 것으로 집계된다.
"소형무기가 곧 대량살상무기다"
아프리카의 유혈투쟁에서는 대포나 미사일처럼 살상력과 파괴력이 높은 무기들은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다. 2006년 연말 에티오피아 군대가 소말리아 모가디슈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소말리아를 침공했을 때는 대포와 탱크를 동원했지만, 아프리카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미 국방정보센터(CDI)의 선임연구원 레이첼 스톨이 올해 4월에 발표한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의 소형무기들: 피해는 이어진다' 보고서는 검은 대륙에서 벌어져 온 거의 모든 유혈투쟁이 소형무기와 경무기로 이뤄져 왔음을 지적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내전이 끝나고도 소형무기를 회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언제라도 다시 유혈투쟁이 벌어지지 마련이다. 1990년대 서부 아프리카를 피로 물들였던 시에라리온 내전과 라이베리아 내전에서도 그랬다.
무기 팔아 돈 벌고 '인도주의'로 원조?
제네바의 국제대학원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는 약 3000만 정의 소형무기가 있다고 추산된다. 문제는 아프리카로 끊임없이 소형무기를 팔아넘겨 제 뱃속을 채우려는 '죽음의 상인들'이다. 아프리카에서 소형무기를 만드는 회사는 적어도 38개. 이들 무기제조사들이 아프리카의 무기수요를 충당하지는 못한다. 2005년도의 경우 2500만 달러어치의 소형무기들이 아프리카로 수입됐다. 이는 어디까지나 드러난 것들이고, 밀수로 들여오는 무기류의 총액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심각한 문제는 불법 무기류 수입량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중국 등이다. 수출국들은 "무기 수입국의 국가안보와 안정을 위해 무기를 수출하는 것이지, 유혈투쟁을 조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주장한다.
투명한 경로를 거쳐 아프리카로 들여온 무기들이라도 결국은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피로 적시는 데 쓰이기 마련이다. 무기 팔아 돈 벌고 그 가운데 일부를 '인도주의' 이름으로 잘 포장된 원조 보따리로 되돌려주는 것이 이른바 선진 강대국들의 행태가 아닐까.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최근호에 실린 필자의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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