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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국가비상사태'…여야충돌로 34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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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국가비상사태'…여야충돌로 34명 사망

반정부시위대, 여권에 의해 원천봉쇄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에서 12일 여야당 지지자들 간의 총격전과 차량 방화 등 유혈충돌로 최소 34명이 죽고 115명이 다친 것으로 <BBC>가 전했다.

지난 3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이 이프티카르 모하메드 초드리 대법원장을 직무 정지시킨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여야 간의 갈등이 총격전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여야 지지자, 시내서 1시간 여 총격전

이날 파키스탄 인민당(PPP)를 비롯한 야당 세력은 카라치로 초드리 대법원장을 초청해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었다.

지난 3월 9일 무샤라프 대통령은 직권남용 등을 이유로 초드리 대법원장의 사임을 압박했지만 초드리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했고 무샤라프 대통령은 즉각 대법원장에게 직무정치 처분을 내렸다. (관련기사: 무샤라프 '재선 욕심', 미국에도 '팽' 당할라)
▲ 12일 카라치 시내에서 발생한 총격전으로 최소 34명이 사망했다. 총을 맞아 숨진 채 차에서 내려진 시체 3구. ⓒ로이터=뉴시스

파키스탄 변호사 협회는 이를 '사법 폭거'로 규정하고 재판을 거부하는 등 격렬한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여기에 1999년 무샤라프 대통령의 무혈 쿠데타 이후 국외로 추방됐던 야당 지도자들이 합세하면서 시위의 성격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로 발전했고 이날 예정된 시위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카라치를 주 기반으로 하는 여당 성향 정당 무타히다 민족운동(MQM)이 초드리 대법원장의 카라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 일부를 봉쇄하면서 유혈 충돌이 시작됐다.

PPP 측은 "MQM 관계자들이 초드리를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총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초드리 전 대법원장은 집회 참석을 포기하고 이슬라마바드로 돌아갔지만 PPP와 MQM 진영 간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무장을 한 채 거리로 나선 이들은 시내 주택가와 아파트 단지에서 1시간이 넘도록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파키스탄 민영 <아즈 TV>는 AK-47 소총을 든 남자들이 차 뒤에서 총을 발사하고 버스 안에서 이 총을 맞은 남자가 울부짖는 모습, 또 그 옆에서 피에 흥건히 젖어 숨을 헐떡이는 다른 남자의 모습 등을 중계했다.

"무샤라프 정권 타도" 요구 더욱 거세질 듯

최악의 정치세력간 유혈 충돌에 무샤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여야 각 진영의 진정을 촉구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또 "카라치 방문을 연기해 달라는 지방 정부의 요청을 무시해 대형 충돌 사태를 촉발했다"며 초드리 대법원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PPP 측은 오히려 카라치 지방 정부와 파키스탄 연방 정부가 이번 유혈충돌을 방치했다며 "정부 지원 하에 저질러진 테러"라고 비난하고 있다. 카라치엔 1만5000명 규모의 방위군이 배치돼 있지만 총격전 진화에 나서지 않았던 점에 미뤄 정부 사주 아래 MQM가 야당 진영을 공격한 것이란 게 PPP 측의 주장이다.

이에 야당 진영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시위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두 달 간 이미 파키스탄 각지에서는 "무샤라프 정권 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수시로 열려 왔다. 3월 말 펀자프에서 열린 시위에는 1만여 명이 참여해 10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반정부시위 열기가 사그라들 조짐을 보이지 않자 파키스탄을 '테러와의 전쟁'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무샤라프 정권을 전폭 지원해 왔던 부시 미 행정부도 '무샤라프 이후'를 고려할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원칙주의자 초드리 대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인사를 대법원장에 앉히려 했던 무샤라프 대통령의 욕심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 재선은커녕 있던 자리에서조차 쫓겨 날 위기로 스스로를 내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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