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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꺾이다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道'] 제12장 반정공신들의 몰락<63>

조광조가 성거산 서산사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겨울이 오기 전에 성균관으로 돌아가려고 하산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천마산과 성거산에서 여름만 보낸다는 것이 어느새 초가을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박영문은 갈지자걸음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반정의 동지였던 신윤무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늦은 오후였지만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으므로 행인들의 발길은 뜸했다. 도롱이를 걸친 박영문은 하인을 앞세우지 않고 혼자서 바삐 걸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자 박영문은 걸음을 멈칫거리며 중얼거렸다.
"가을비에 천둥 번개라. 제기랄, 흔치 않는 일이야."
산천이 바짝 말라가는 가을에 느닷없이 쳐대는 천둥 번개였던 것이다. 박영문의 뒤틀린 심사로 보아 투덜댈 만도 했다. 대간들의 논박으로 공조판서에서 물러난 그는 분하고 침통하여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위안 삼아 또 다시 신윤무 집으로 가는 길에 가을비에 천둥 번개까지 쳐대니 하늘이 원망스럽기조차 하였다.
신윤무 집에는 의정부의 하인 정막개가 와 있었다. 정막개는 술값께나 받으면서 의정부의 자잘한 첩보들을 신윤무에게 알려주곤 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신분은 의정부의 종이면서도 신윤무를 섬기는 첩자인 셈이었다. 그러나 간사함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첩자는 대개는 이쪽과 저쪽에 붙어먹는 습성으로 이중첩자가 되기 일쑤였다.
"나으리, 어인 일로 신 대감 댁을 오셨사옵니까."
"의정부에 있어야 할 자네가 왜 여기 있는가."
"신 대감께서 가끔 쇤네를 부르시어 심부름을 시키곤 했사옵니다."
"그런 사이였던가."
"나으리, 요즘 얼마나 심려가 크시옵니까."
"음, 분통이 터져 참을 수가 없네. 그래도 과거에 반정공신이자 동지였던 신 대감을 만나면 위로가 되지."
정막개는 내심 귀를 기울였다.
"말 많은 대간 놈들을 확 쓸어버려야 나라가 바로 설 것이야. 지난 반정 때 임금을 내 손으로 바꾸어봐서 알지만 힘 있는 동지 몇 명이 의기투합하면 못할 것도 없지."
"동지란 누굴 두고 하는 말이옵니까."
"신 대감 같은 사람이 열 명만 모이면 족해. 천하를 얻을 수 있단 말이네."
"그동안 대감을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하옵니다."
"괜찮네. 내가 시달리다 보니 자네를 챙길 여유가 없었어. 대신해서 신 대감이 자네를 보살펴 주고 있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
예전에는 정막개가 박영문의 집도 드나들었는데, 최근에는 신윤무 집으로만 발길이 잦았던 것이다. 교활한 정막개가 보기에도 박영문의 권세가 지는 석양처럼 급하게 기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윤무는 박영문의 잦은 방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박 대감, 또 무슨 일이오."
"이보시오, 신 대감. 화병이 날 것 같아 또 왔소이다."
"어허, 또 그 이야기입니까. 이제껏 영화를 누렸으니 여생을 즐기며 삽시다 그려. 판서 자리가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입니까."
"신 대감, 내가 판서 자리에서 쫓겨나 이러는 줄 아시오."
"그럼, 무엇이 그리 한스럽단 말이오."
"나라꼴이 이게 뭡니까. 우리가 지난날에 이런 나라 만들자고 목숨을 걸었습니까. 그런 것은 아니잖습니까."
"박 대감, 그래도 그때와 지금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폐주 연산군이 패악질을 할 때는 어디 숨이라도 크게 쉴 수 있었습니까. 허나 지금은 전하께서 성군의 도를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 때가 아닙니까."
▲ 죽수서원 제사 모습 ⓒ프레시안

"손발에 물도 묻혀 보지 않는 대간 놈들이 전하의 눈과 귀를 흐리게 하고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대사간 박열과 대사헌 성세정이 나를 논박한 일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신 대감은 내가 뇌물을 먹고 공신 장사를 했다고 보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도적을 잡은 포도대장 유세웅의 벼슬을 높여 준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대궐의 과녁을 궐 밖으로 내와 사용했기로서니 그게 그리 큰 잘못입니까. 그것은 평성군도 그리하지 않았습니까."
"또 그 이야기입니까."
"억울해서 그럽니다. 다 이게 대간 놈들이 우리의 세력을 꺾기 위해 모함을 하는 것입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내가 요직에서 물러나 한직으로 가면 그 다음에는 신 대감, 그리고 바로 평성군이 차례차례 치욕을 당할 것입니다."
술상이 들어오자, 신윤무는 박영문의 화를 누그러뜨리고자 농을 걸었다.
"난 박 대감의 결백을 믿소만 그래도 반정공신을 정할 때 떡고물은 챙겼지 않습니까. 나도 마찬가지고. 하하하."
"그야 우리만 그랬습니까. 반정의 3대장은 더했지요. 그들에 비하면 우리들은 겨우 이삭이나 주운 셈이지요."
"그러니 박 대감이나 나나 허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똥 밟은 듯이 가만히 있자는 것입니다. 움직일수록 냄새가 더 진동하니까 말입니다. 소나기가 내릴 때는 그칠 때까지 가만히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포도대장 유세웅의 벼슬을 올린 것도 죄가 된단 말입니까."
"포도대장의 일이 무엇입니까. 도적을 잡으라고 포도대장을 시켜준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대간들이 자기 사람 봐준다고 반발할 만도 한 것입니다."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한 일을 두고 떠들어대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대궐의 과녁을 좀 사용한 것을 가지고 걸고넘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구나 평성군은 자주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찌하겠습니까. 재수가 없으려니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신 대감, 그렇게 웃고만 있을 일이 아닙니다. 내가 넘어지면 그 다음은 신 대감에게 화살이 날아갈 것입니다."
"그걸 모르는 바보가 아닙니다. 당연히 나를 쓰러뜨리려 모함하겠지요."
"그때는 어찌하겠소."
"내게 묘책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하겠습니까. 몸도 예전같지 않고 그러니 여생이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지요."
신윤무는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반정할 당시에는 역사(力士)들을 이끌고 연산군의 측근들을 척살할 정도로 패기만만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였다. 나이가 들어 병고에 시달려 온 데다가 마음까지 약해지고 편안함에 길들어져 목숨을 거는 모험 같은 것에는 발을 들여놓기가 두려웠다.
"신 대감, 무부 같지 않은 말만 하는구려."
"칼을 놓은 지가 오래 되어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거세당한 내시 같은 기분이 드니 말입니다."
박영문은 술을 빠르게 마셔댔다. 권력의 끄나풀을 잡고 발버둥치는 것 같은 신윤무가 초라해 보여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권력으로부터 밀려나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자신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박영문은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천참(泉站)에 있었는데 마음이 심란했소. 거기서 사냥을 하는데 수하의 군졸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더이다."
장수들은 군졸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전투를 연상하는 법이었다. 박영문은 어영군의 군졸들을 보면서 지난날 반정할 때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사냥에 동원된 어영군의 군졸들은 박영문의 심란한 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
"대신들도 함께 갔습니까."
"내가 군졸들을 이끄는 대장이었고, 신용개와 이장곤이 함께 따라갔지요."
신용개와 이장곤이 간 것은 중종이 사냥 나갈 때를 대비해서 사전 답사하는 형식이었고, 군졸들을 거느리게 된 박영문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가을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자마자 바로 철수하는 길에 박영문은 이장곤과 시를 주고받았다. 이장곤이 먼저 '사람의 일백년에 떨어지는 해를 보도다(人事百年 看落日)' 하고 박영문의 운명을 조롱하는 듯한 시를 읊자, 박영문은 '산하도 만고에는 다만 티끌로 움직이도다(山河萬古 只行塵)' 하고 맞받았다. 그러나 박영문은 그들과 헤어진 후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자격지심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나를 가지고 놉니다. 그놈들이."
"그 자들이 박 대감을 두고 지는 해라 하다니 나도 기가 막힙니다."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니 지는 해가 어디 있고 뜨는 해가 어디 있겠소."
"신 대감,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날 우리는 평성군(박원종)의 집에서 함께 죽기로 맹세한 동지가 아닙니까."
그러나 신윤무가 무언가 대답을 하려다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방문 밖에서 발자국 같은 소리가 났던 것이다.
"박 대감,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까."
"가을비에 낙숫물 소립니다. 무얼 그리 과민하십니까."
"아닙니다. 분명 방문 밖에서 우리의 얘기를 누군가가 엿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말입니까. 막개가 있습디다만 그 자는 신 대감이 의정부에 심어놓은 첩자가 아닙니까."
"막개라면 안심이 됩니다. 하도 어수선한 세상이라서 걸핏하면 역모로 몰리는 세상이 아닙니까."
박영문과 신윤무는 정막개가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단정했다. 이윽고 신윤무가 좀 전에 하지 못한 얘기를 마저 했다.
"박 대감 말처럼 지난 날 반정 때 우리는 평성군의 집에서 맹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어찌 박 대감을 배반하겠소. 마땅히 나는 박 대감의 뒤를 따를 것이오. 그것이 무부의 의리가 아니겠소."
"신 대감, 고맙소. 헌데 평성군은 예전 같지 않아요. 내가 조정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도 방관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소이다."
"그건, 박 대감이 잘못 생각한 것이오."
"아니오. 전하 앞에서 겉으로만 변호해줄 뿐 실제로는 방관하고 있소. 요즘의 평성군은 나를 피하는 것도 같소. 그래도 신 대감이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니 자꾸 이리 오는 것 아니겠소."
"무부로서 의리를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동지를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오."
박영문은 술기운을 빌어 큰소리로 분통을 터뜨렸다.
"평성군도 우리가 처치할 대상인지 모르겠소이다."
"나도 반정 후 평성군에게 배반감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소. 목숨을 걸고 반정을 도왔는데도 부귀영화는 모두 평성군에게만 돌아갔으니 말이오."
그때였다. 박영문이 문을 박차고 나가 소리쳤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의 동작은 비호처럼 빨랐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칼집에서 나온 칼이 쥐어져 있었다.
"누구냐!"
"막개이옵니다."
박영문은 문 밖에서 어른거렸던 사람이 정막개임을 알고는 싱겁게 칼을 다시 칼집에 꽂으며 말했다.
"오늘은 신 대감과 대취하도록 마실 것이니 너는 여기 있지 말고 돌아가거라."
"신 대감님께서 곁을 떠나지 말라 하였사옵니다."
"허허, 이놈 봐라. 내 말이 곧 신 대감의 말이니라. 어서 돌아가거라."
정막개는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아도 신윤무 집을 떠나 박영문의 난언(亂言)을 의정부에 고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정도의 난언을 고변한다면 자신은 집과 재물을 하사받고 종의 신분을 벗어나 높은 벼슬을 제수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정막개는 박영문과 신윤무가 나누었던 난언을 바로 고변하지 못했다. 그들을 배신하는 데도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정막개는 며칠이 지난 뒤에야 간밤의 꿈을 스스로 해몽하며 작심했다.
그가 꾼 꿈이란 이러했다. 꿈에서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수레에 실려 형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수레가 군기감 앞에 이르자, 갑자기 자신의 신분이 바뀌어버렸다. 자신은 준마를 타고 있었고, 호위하는 무리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 죽수서원 훼손 당시 세워진 비석 ⓒ프레시안

꿈에서 깨어난 정막개는 상서로운 징조라고 여겼다.
"이 꿈은 필시 내게 부귀영화가 내려질 징조로다."
정막개는 그제야 의정부로 달려가 자신이 들었던 내용에다 거짓말까지 보태어 말했다. 국문은 바로 박영문과 신윤무를 잡아들여 사정전(思政殿) 월랑(月廊)에서 중종의 명에 따라 이루어졌고, 정막개가 고한 얘기를 증거 삼아 자복케 했다.
추관이 박영문을 먼저 심문했다.
"10월 16일에 신윤무 집을 찾아간 적이 있는가."
"있소이다."
"신윤무 집에서 반란을 모의한 적이 있는가."
"없소이다."
그러자 가차 없이 굵은 곤장인 추삭장(麤削杖)이 박영문의 다리에 내리꽂혔다. 무거운 추삭장이 십여 차례씩 두 번이나 가해지자 박영문의 다리에서는 피가 흘렀다. 추삭장을 휘두르는 나졸도 어깨와 손이 아픈지 곤장을 높이 치켜들지 못했다.
그런 다음에는 불에 달군 쇠로 당근질을 가했다. 그러자 무부 출신의 박영문은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버린 듯 흐물흐물 변하더니 곧 혼절해버렸다. 나졸들이 박영문에게 찬물을 부어 댔지만 그는 반사적으로 고무락거릴 뿐 고개를 쳐들지 못했다.
이번에는 신윤무를 불러내 신문했다. 신윤무는 몇 년 전부터 병을 앓아 오던 터였으므로 몸이 약했던지 추삭장을 견디지 못했다. 비명을 내지르면서 추관이 묻는 말에 숨김없이 자복했다.
"영문과 그대의 집에서 반역을 모의한 일이 있는가."
"그렇소."
"영문이 말하고 그대는 듣기만 했다는데 사실인가."
"그렇소."
"영문의 흉한 꾀를 알고도 왜 고변하지 않았는가."
"영문이 반정의 의리를 내세워 따랐을 뿐입니다."
"반역을 하자는데 의리를 따라야 한단 말이오."
"본심이라기보다는 마음이 약해져 그리했던 것이오."
신윤무는 추삭장을 맞은 후 첫 번째의 심문에서 모두 자복해버렸다. 그러했으므로 생살이 타는 당근질의 고통은 면했다. 신윤무는 그런 자신이 원망스러워 비통하게 흐느꼈다. 평생 무부로 살아 온 그로서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을 뿐이었다.
박영문은 가까스로 깨어나서도 자복하지 않다가 추관들도 지쳐갈 무렵인 사경(四更)에 이르러서야 중종에게 순순히 자복했다.
"전하, 신은 고약한 생각을 해 오다 그것을 윤무에게 말로 표현 바가 있사옵니다."
"고약한 생각이라는 것이 반역을 꾀했다는 것이냐."
"전하, 신을 용서하소서."
"반정의 공신으로서 어찌 반역을 꾀한단 말이냐. 과인은 반역한 너를 대역(大逆)으로 다스릴 것이니라."
박영문이 죄상을 자백함으로써 국문은 밤늦게 끝이 났다. 다음날 박영문과 신윤무는 군기감에 임시로 설치된 형장으로 끌려갔다. 박영문은 이미 체념하여 극형 받기를 각오하고 있었지만 신윤무는 울면서 집의(執義) 김협(金協)을 불러댔다.
"김협아, 김협아. 국가에서 간인(奸人)의 말을 들어 조그만 죄를 가지고 가벼이 대신을 죽이는데, 그대는 어찌 힘써 구하지 않는가."
그러나 김협은 신윤무의 귀신같은 몰골을 바로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서도 죽은 신윤무가 귀신이 되어 나올까 의심하여 그날 밤 촛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은 채 종들을 시켜 떠들게 했다.
중종은 옥사를 가혹하게 처리했다. 박영문과 신윤무를 극형으로 단죄했고, 그들의 아들들을 모두 목 졸라 죽였으며 신윤무의 재산은 추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박영문의 집과 재산은 정막개에게 하사했다. 정막개에게는 당상관 상호군(上護軍)을 제수했으며, 은띠와 의장(儀章), 안마(鞍馬)를 주었고, 옥사를 일사천리로 처리한 관리들에게도 품계를 올려주었다. 승지 이사균(李思鈞)과 김극복(金克福)에게는 가선의 품계를 더하였고, 문사관(問事官)인 윤희인(尹希仁), 유운(柳雲)은 당상관에 오르게 했다.
이로써 반정으로 영화를 누리던 무부 출신들의 날개는 모두 꺾이고 만 셈이었다. 무부의 주군인 박원종이 아직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는 이미 노쇠하여 대간들에게 더 이상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무부들의 우두머리인 박원종마저 중종 9년 갑술년에 병사하자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이 조정 안팎으로 하나 둘 등장했다. 아직은 유생 신분인 조광조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는데, 중종은 구악(舊惡)을 일소하자는 그들을 울타리 삼아 왕권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그런 의미에서 중종은 세상에 갓 나선 그들보다 더 현실적이었고 노련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 화순군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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