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는 핸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먼저 제안한 것을 유럽이 받아들인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미국이 사실상 세계은행 총재 교체 수순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울포위츠 문제서 발 빼는 백악관
<뉴욕타임스>는 8일 유럽 주요국들은 울포위츠가 물러나기만 한다면 후임 총재 인선을 미국에 일임하겠다는 의향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이번 주 말경으로 예정된 세계은행 이사회에서 울포위츠 총재 거취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기 전에 미국이 손을 써 달라는 것이 유럽 국가들의 요구다. 사실 이사회에서 울포위츠에게 징계 결정을 내리면 할 수 없이 물러나야 할 테지만 그 전에 스스로 물러나는 '좋은 그림'을 만들자는 것이다.
세계은행 내부 분위기도 이미 울포위츠가 자리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울포위츠와 관련된 논란을 내사하기 위해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7일 울포위츠가 애인 샤하 알 리자의 승진과 봉급 인상과 관련해 인사 담당자에게 이를 직접 지시, 세계은행의 윤리규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특별위원회는 또 울포위츠가 해당 직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측근을 고위직에 임용되도록 힘썼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울포위츠가 국방부 부장관으로 재임하던 2002년부터 그의 보좌관으로 일해 온 케빈 켈럼스도 "지금과 같은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는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보좌관 자리를 내놓았다.
사퇴를 알리는 성명에서 켈럼스는 세계은행 임원진에 대해서는 "존경과 경의를 금치 못한다"며 찬사를 보냈지만 5년 간 '모셔 온' 울포위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유럽의 입장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폴슨 장관이 먼저 '울포위츠가 퇴임하는 대신 후임을 미국이 정하게 해 달라'는 제안을 해 왔다는 유럽 관료들의 말로 미뤄볼 때 세계은행 총재의 교체는 시기문제만 남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일부 언론은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 이스라엘 은행 총재와 조버트 졸릭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등을 후임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미국 정부와 세계은행 간의 문제가 아니라 울포위츠와 세계은행 간의 일이며 자체적으로 문제가 해결 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혀 이번 논란에서 발을 빼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세계은행 안 건드릴 테니 IMF도 상관 말라?
미국이 유럽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울포위츠의 거취 문제가 정리될 경우, 이번 논란을 계기로 미국이 세계은행 총재를 낙점해 온 전통을 깨 보려던 유럽의 그 동안의 시도는 무위에 그치게 된다.
유럽은 지난 2005년 울포위츠가 총재로 취임하던 시절부터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미국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권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울포위츠의 부적절한 행동은 1940년 세계은행 창설 이래 줄곧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총재를 지명함으로써 세계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정책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세계은행을 운영해 온 미국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유럽은 미국을 도발하지 않고 선처를 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유럽이 쥐고 있는 의결권만으로도 이사회에서 울포위츠 총재에 대한 징계를 확정할 수 있었지만 후임 지명권을 내놓으면서까지 미국에 사퇴 종용을 부탁한 것이다.
유럽의 한 고위 관료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미국을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란 얘길 동료들로부터 들었다"며 "우리는 세계은행 문제로 미국과 유럽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유럽이 세계은행 총재 지명권을 문제 삼고 나온 것 역시 최근 부시 행정부가 '유럽의 몫'으로 여겨진 IMF 총재 선출을 문제 삼은 데 대한 '견제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유럽과 미국이 서로의 '밥그릇'을 지켜주는 선에서 논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평가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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