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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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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278>

중국 산서(山西)성을 다녀와서

며칠 시간을 내어 중국 내륙의 산서 지방 일대를 다녀왔다. 여행한 곳 중에서 인상에 남는 곳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북경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도착한 산서성의 성도(省都)인 태원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태원(太原), 너른 벌판이란 뜻으로서 황토고원지대이다.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이며 여전히 가장 중국적인 곳, 또 과거 당(唐)나라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요즘 드라마 '연개소문'에 나오는 당 태종 이세민이가 아버지 이연을 도와 병사를 일으킨 곳이다.

이연은 북방민족의 남침을 막는 군사요충을 맡았던 군벌로서 힘을 키우다가 수 양제가 고구려 정벌 실패 등 실정을 거듭하자 궐기하고 나섰던 것이다.

산서성의 인상은 벌판과 먼 산이었다. 그리고 태원의 첫 인상은 석탄이었다.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가 많아서 어디를 가나 석탄가루와 재가 날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하늘이 푸르고 맑아서인지 그리 싫지 않았다.

태원에서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려서 간 곳은 평요(平遙)라는 곳에 있는 옛 성이었다. 평요란 말 자체가 '요원한 평야'라는 뜻이니 무연히 너른 벌판에 우람한 성채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지금의 성곽은 명나라를 일으킨 주원장이가 1370년에 옛터를 살려 새로 쌓은 성이라고 한다. 몽고족의 침입을 무던히도 겁냈으니 단단히 쌓았을 법도 하다.

최근 중국에서는 핑야오(평요의 중국식 발음)가 한창 뜨고 있다고 한다. 국내의 경우 유홍준 씨가 책을 쓴 이래 각광받는 고적지가 많듯이, 핑야오도 여추우란 문화평론가가 열나게 침 튀기며 칭찬하는 바람에 완전히 떴다고 한다.

성 안에는 청나라 당시의 마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주민들도 몇 만 명이 살고 있다. 재미난 곳도 정말 많다. 무협지에 나오는 표국(票局) 박물관도 있고 관헌이나 무술박물관 등등 눈요기 감이 많다. 가짜 골동품과 공예품 가게가 길가에 널려있어 정말 재미나는 곳이었다.

금년 초 케이블 채널인 중화TV에서 방영하는 '거상 치아오쯔융'이란 프로그램을 재미나게 봤었는데, 바로 그 사람의 활동무대였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 산서상인의 대명사인 치아오쯔융의 커다란 집은 그대로 고건축박물관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다음 날 새벽같이 호텔을 나서서 그 유명한 오대산을 향해 길을 재촉했다. 중국 불교의 한 성지(聖地)인 오대산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도량으로 유명하다.

오대산이란 명칭은 연꽃처럼 높은 봉우리들이 사면에서 에워싸고 가운데에 봉우리가 솟아있어 합치면 다섯 봉우리가 되니 오대(五臺)라 해서 오대산이다. 올라가보니 정말 그러했다.

마침 중국은 노동절 연휴라 어딜 가나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지만 볼 것이 많아 땀 뻘뻘 흘리며 열심히 구경했다.

수 십 개의 큰 절들이 산 안에 가득했지만, 가이드 아가씨가 처음 안내한 절은 보살정(菩薩頂), 문수보살의 정수리라는 뜻의 라마교 절이었다. 정통 불교 절이 아니라 웬 라마교 절이냐 싶었다. 그래서 길가에서 오대산 가이드북을 사서 읽어보니 금방 이해가 갔다. (자랑 좀 하자면 필자는 중국책을 읽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청나라를 일으킨 사람들은 우리와 사촌간인 여진족인데 그들은 또 몽고족과 친했던 까닭에 몽고가 믿던 라마교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결국 잘 꾸며진 '보살정'은 청 황실의 절이었던 것이다. 돈을 열심히 발랐던 흔적이 역력했는데, 청의 강희제가 여러 번 들러서 묵어갔다 하니 수긍이 갔다.

오대산을 상징하는 것은 역시 수 십 미터 높이의 희고 거대한 백탑이다. 탑에 가니 티벳 라싸의 절처럼 '옴마니반메훔'이 범어로 새겨진 종들이 탑 주위에 가득했다. 탑돌이를 하는 것인데, 종을 돌리면 복을 받는다 하니 중국인들을 포함해서 모두들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얘기 나온 김에 옴마니반메훔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Ohm mani padme hum 인데 ohm은 영탄사 '아!'이고 mani 는 영어의 many 또는 much로서 크다는 뜻이다. padme 는 연꽃 즉 padma의 소유격이고 hum 은 영롱한 이슬 내지는 보석이란 뜻이다.

그러니 번역하면 '오 위대하도다, 연꽃 속에 맺힌 이슬(보석)이여'라는 의미이다. 마음의 청정(淸淨)한 경지를 의미하는 밀교(密敎)의 진언(眞言)이다.

그것을 무지몽매하게 종을 쳐 돌린다고 해서 얻어질 리 만무할 것 같지만, 어쩌면 그 무지몽매한 마음이야말로 청정한 마음의 경계일 수도 있다 싶어 힐난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신앙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불교의 아주머니 보살들이 신앙심에 많이 올 법한 곳이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화장실이 살벌하다는 점, 호흡을 중단하고 눈을 감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

중국을 무수히 다녀 본 필자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이니, 오대산에 살롱형 화장실을 하나 지어 비싸게 사용료를 받으면 떼돈 버는 것 시간문제가 아닌가 싶다.

오대산 구경을 마친 필자 일행은 다시 3000 미터가 넘는 오대산 능선을 가슴 졸이면서 넘었다. 그랬더니 또 다시 큰 산이 길을 막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라보았더니 중국의 다섯 산 중에 하나인 북악(北岳) 항산(恒山)이었다. 항산의 여러 능선들을 넘어야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와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항산파 무술의 본산지이니 말이다.

면리금침(綿裏金針), 부드러운 솜 속에 숨은 날카로운 침이라는 말이다. 부드럽지만 결정타가 있다는 것으로서 항산파 무술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이다.

소오강호에서 항산파 여승은 주인공 영호충을 향해 애절한 짝사랑을 보낸다. 굽이굽이 넘는 항산 저 어딘가에 그 아리따운 여승의 한이 서려있을 것 같아 기도해주었다.

항산을 내려갈 즈음에 길 왼쪽으로 그 유명한 허공에 매달린 절, 현공사(懸空寺)가 보였는데 시간이 없어 들러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대동(大同)으로 향했다.

대동은 중국말로 '따통'이다. 북방 이민족과 중국 한족이 사이좋게 살라는 뜻으로 대동이란 명칭을 붙인 것이다. 대동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운강석굴이 있다. 중국의 3대 석굴 중에 하나인 그 운강석굴 말이다.

운강(雲岡)이라 하기에 구름이 서린 산인 줄 알았더니 웬 걸 석굴 반대편에는 석탄을 캐는 채탄장이 있어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석굴로 가니 역시 인파로 인해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는 요령이 있다. 일단 상점에서 운강석굴을 설명하는 칼러 사진이 가득한 책을 한 권 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등 떠밀리면서 대충 들러본 후에 돌아와서 책을 보면 되는 것이다.

두 시간 여 들러본 후 드디어 서울로 가기 위해 북경으로 방향을 잡았다.

6시간 정도 걸리는 버스 길 양편은 전부 황토 벌판, 필자가 보기에 95 % 정도로 사막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은 완전히 말라있었고 한 때 밭이었던 들판은 심은 작물이 없으며, 억지로 심은 포플러가 건조한 얼굴을 한 채 바람에 나부꼈으며 먼 산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사실상의 사막이 수백 킬로미터 이어지고 있었다.

재작년에 갔던 실크로드의 사막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북경 근처의 저수지를 지나면서부터야 그래도 나무가 제법 푸른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할 뿐이었다. 이대로 가면 북경 역시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사막의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닌지, 미국의 라스베가스나 LA처럼 먼 곳에서 물을 끌어오지 않으면 방법이 없구나 싶었다.

북경은 내년 8월의 올림픽을 기해서 6월에는 지하철을 개통한다고 한다. 그것도 한꺼번에 무려 열 개 노선을 개통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열 개 노선을 서울 방식처럼 하면 시내 전체가 난장판이 되니 아예 지하로만 뚫고 있다는 얘기를 가이드가 해주었다.

북경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한국식 불고기 파티였다. 양념갈비와 등심, 안심 등등 맛있는 고기였는데 성인 남자 다섯 명이 실컷 배터지게 먹고 남을 정도로 먹고도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1만 8천원 정도였다. 서울이라면 30 만원은 충분히 나왔을 텐데, 부담이 전혀 없으니 얼마나 즐겁게 먹었겠는가.

다음 날 아침 서울 들어오는 비행기. 비행기는 언제나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이륙할 때에는. 출발 직전 좌석에 기대어 제발 무사하게 집에 가게 해 달라고, '이번에도 봐 주실 거죠' 라고 떼를 쓰면서 부처님, 관세음보살, 성모 마리아, 예수님 모조리 동원해가며 빌었다.

그 결과 서울에 왔고 지금 이 기행문을 쓰고 있다. 당분간은 땅을 밟고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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