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베를린장벽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장벽'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베를린장벽은 사라졌으나 새로운 '장벽'이...

'사람은 묶고 자본은 자유롭게'...세계화의 역설

멕시코의 티후아나와 이라크 바그다드, 그리고 예루살렘의 공통점은?

바로 '장벽이 세워진 도시'라는 것.

<로이터>는 30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철의 장막'도 사라지는 등 국가와 국가 간을 가로막고 있던 유·무형의 벽들이 허물어지는 것이 세계화의 대세인 양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멕시코와 이라크, 심지어 유럽에서까지도 장벽들이 우후죽순으로 세워지고 있으며 그 길이가 수천 마일에 달한다고 전했다.

"베를린 장벽 허물라"던 레이건 정신은 어디로…

신축 장벽의 형태는 다양하다. 진짜 벽인 곳도 있고, 철제 펜스가 설치된 곳도 있으며 울타리나 축성으로 가로막아 둔 곳도 있다. 이들 중 일부에는 동작 감지기나, 열 센서 카메라, 엑스레이 시스템, 야간 투시경, 헬리콥터, 원격 비행체, 소형 비행선 등 철통 경비를 위한 첨단 기구가 설치돼 있기도 하다.

장벽이 세워진 목적도 다양하다. 일자리를 찾으러 혹은 배가 고파서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벽을 쌓는 경우부터 테러리스트의 유입을 통제하기 위해서나 분쟁이 잦은 민족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철망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목적의 장벽들이 세워지는 데 대해 <로이터>는 "물자와 자본은 자유로이 이전되지만 이민자들에겐 자유로운 이동이 허용되지 않는 세계화의 역설적 단면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철거에 앞장섰던 미국이 지금은 장벽 건설계의 '챔피언'이 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로 꼽혔다.

중동에 우후죽순, '아파르트헤이트 벽'
▲ 아다미야 주변에 세워진 바그다드 분리장벽.ⓒ로이터=뉴시스

가장 근래에 장벽 공사를 시작한 곳은 이라크의 바그다드 인근 수니파 마을인 아다미야 지역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 병사들은 높이 3.7미터, 무게 6톤가량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붙여 만든 4.5Km 길이의 장벽을 세워 주변 시아파 거주지에서 아다미야를 분리해 두고 있다.

"시아파의 위협으로부터 아다미야를 보호한다"는 것이 미군 측의 주장이지만 출입이 통제되는 아다미야 주민들은 물론 시아파 주민들도 이 분리장벽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무크타다 알 사드르는 성명을 통해 이를 "인종차별주의 정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다미야 장벽은 2002년부터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건설 중인 장벽을 본 딴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자살폭탄테러대가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서안지구를 따라 장벽을 세웠다.

서안지구를 둘러친 장벽과 담장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이스라엘 국경 둘레의 두 배에 가깝다고 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이스라엘의 장벽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장벽을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의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 벽"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스라엘 장벽 정책에 날을 세워온 아랍 국가들도 장벽 세우기에 열을 올리기는 매일반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소리 소문 없이 이라크 국경을 봉쇄하기 위한 885Km 길이의 최첨단 담장을 신축 중이다. 이 담장에는 센서, 야간투시경, 안면 인식 장비, 철조망 등 경비에 필요한 첨단 장비들이 설치돼 있다.

쿠웨이트도 이라크 국경에 217Km 길이의 전기 펜스와 2m 깊이의 참호를 파 놓았다.

모두 미국의 침공과 종파 간 분쟁으로 살 곳을 잃은 이라크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긴 장벽은 서부 사하라 지역의 모로코 고립 영토에 있다. 모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전인 1970년대에 스페인 정부는 35만 명의 모로코인들을 이 지역에 이주시켰고 원주민 단체 '폴리사리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높이 3m, 길이 2736Km의 석재 장벽을 쌓았다.

이 장벽은 주위에는 수천 명의 모로코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을 뿐 아니라 지뢰도 묻혀 있는데 그 개수를 두고는 최소 20만개에서 최대 수백만 개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스페인은 모로코 내에 있는 스페인 고립영토인 세우타와 멜리야 주변에도 3미터 높이에 레이저가 달린 이중 펜스를 세우고 있다. 모로코 주민들이 스페인 영토로 넘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다.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섬 인근에는 밀입국하는 아프리카인들을 막기 위한 순찰대가 경비를 맡고 있다. 덕분에 위험을 무릅쓰고 섬으로 건너가던 아프리카인 수백 명이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멕시코 국경엔 "이민자 차단하라"
▲ 멕시코 티후아나를 둘러싼 철제 장벽.ⓒ로이터=뉴시스

미국 서부와 멕시코 접경 도시인 티후아나는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국경도시다. 이 도시를 통해 연간 1700만 대의 차량과 5000만 명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티후아나 동쪽으로는 남미로부터의 밀입국자를 막기 위한 전기철망 등 담장이 국경을 따라 세워져 있다.

미국 쪽 담장은 월경을 막기 위해 좀 더 날카로운 철망을 세우고 울퉁불퉁한 부분을 깎아서 담을 탈 수 없도록 만들었다.

샌디에이고와의 국경을 따라 22.5Km 가량 뻗어 있는 티후아나 장벽과는 별도로 지난해부터는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 일대 국경 1127㎞에 걸쳐서도 이중 장벽이 추진되고 있다.

티후아나 장벽은 "원치 않는 이민자들을 막아내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옹호론자들의 논리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결과를 내놓고 있다. 티후아나의 장벽으로 멕시코 인들의 주요 밀입국 경로였던 '반자이 런(만세로)'이 봉쇄되자 한해 50만 명에 이르렀던 불법 이민 체포자 수가 작년엔 13만 명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에 9·11 이후 불법이민자들이 안보의 위협으로 여겨지는 미국 내 분위기는 이중 장벽 설치를 가능토록 한 법안이 작년 의회를 통과하는 데에도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장벽 때문에 생긴 부작용도 적지 않다. 최근 멕시코 국경 지대에는 장벽 아래를 관통하는 땅굴 굴착이 유행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서는 길이 800미터나 되는 땅굴이 발견되기도 했다. 출입국 허가증 위조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봉쇄된 국경을 돌아 애리조나 사막을 통해 밀입국을 하려다가 사막에서 죽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 일주일에 평균 9명 정도가 애리조나 사막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정치인들은 미국 국경 주위에 쌓이는 장벽을 "남미인 전체를 '잠재적 불법이민자'로 치부하는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의 행태는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고르바초프를 향해 "이 장벽을 허물라"고 연설했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철학과도 배치되는 것이라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주의 유입을 막기 위한 소련의 '철의 장막'도 걷혔다.

'철의 장막'이 건재했던 시절에도 공산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땅굴을 뚫거나 사다리를 걸어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많았고 당시에 이들은 자유를 찾아온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최근 신축되는 장벽을 넘는 사람은 '위협'이나 '짐'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