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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의 불안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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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의 불안한 동거

한반도브리핑 <50> 북미 양자협상의 함정

'최대치의 요구'와 '최대치의 실천' 사이의 괴리

2.13합의로 북핵문제에 가닥이 잡힌 후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 북미관계가 방코델타아시아(BDA) 해결 과정의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일정 자체가 지연되고 있다. 2.13 합의는 합의 후 30일 이내에 5개 워킹그룹 회의를 개최하고 미국이 BDA 제재를 해제하면 북한은 60일 이내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사찰을 허용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초기 한 달 동안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뉴욕 방문 등 눈부신 진전을 보이다가 BDA 해결이 완료되지 못하면서 전체 일정이 순연되고 있다.

사실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BDA 문제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으로 해결되었지만 기술적으로 완료되지 않은 기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북미가 정치적으로 타결했지만 실제 해결과정에서 실무적인 문제가 발생해 해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해석인 것이다. 중간 경유 은행의 북한 자금 입금 거부 사태는 본질적으로 금융시스템의 신용 우선 및 시장 논리에 따른 것인 만큼, 북한이 원하는 타 은행과의 자유로운 송금과 이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한편 미국 역시 시장을 압박할 만한 더 이상의 해결노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은 미국도 성의를 보일 만큼 보였고, 북한 역시 미국 정부도 손 쓸 수 없는 금융시장의 자체 논리를 체득하게 되었으므로 이 정도 선에서 상호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일견 타당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당연히 BDA 제재 이후 강화된 국제금융시장과의 정상적 거래 복귀를 원하고 있는 만큼 2500만 달러 출금이 문제가 아니라 제3의 은행과 자유로운 금융거래가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이를 공식 보장하기는 힘들다는 현실을 이번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을지 모른다. 미국 역시 북한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성의를 다해 노력했지만 북한이 원하는 자유로운 이체 송금까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입장이다.

물론 아쉬운 대목이 없지는 않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타 은행이 북한자금의 이체 송금을 거절하는 이유가 BDA 은행을 '자금세탁기관'으로 규정한 미국의 '단죄'에 근거하므로 이를 풀어줘야 사실상 북한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미국이 18개월 동안 조사한 결과를 스스로 부인하게 됨으로써 미국이 택하기엔 너무도 모순적인 방향이 된다.

북한 역시 좀 더 유연한 대응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송금과 이체가 자유롭게 정상화되지 않는 것은 미국이 BDA를 자금세탁은행으로 규정한 탓도 있지만 미국으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북한으로선 돈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상적 금융거래 복원이므로 이를 끝까지 고집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향후라도 국제금융 시스템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치적 결단이 아니라 불법활동과 관련한 의혹 해소에 실제로 나서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다.

결국 북한의 '최대치의 요구'와 미국의 '최대치의 실천' 사이에 현실적 괴리가 발생하면서 BDA 문제가 한 달 이상 교착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으로 접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쉽게 생각한 북한도, 정작 BDA 은행에 대한 단죄를 포기할 수는 없는 미국도 지금의 BDA 지연과정을 보면서 답답함과 함께 현실의 교훈을 나름대로 느끼고 있으리라 여겨진다.
▲ BDA 문제 해결 과정은 북미 양자협상에도 한계가 있음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북미 양자협상의 함정

최근의 BDA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우선은 북미 양자협상의 함정이다. 최근 2.13 프로세스를 주도하는 동력이 북미 양자협상임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핵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양자가 직접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이치다. 2006년까지 북핵문제가 답보상태를 면치 못했음도 사실은 북미간 양자협상을 부시 미국 행정부가 끝까지 거부했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6자회담 참가국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대북 직접협상을 요구하고 종용했다.

급기야 2007년 1월 베를린 직접협상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2.13합의가 도출되었다. 이후 김계관 부상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뉴욕회담이 이루어졌고 그 동력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정작 BDA 해결에 북미가 합의한 이후 실제적 해결과정이 지연되고 정체되면서 6자회담과 북핵문제는 아무 하는 일 없이 한 달 반 가까이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사실상 BDA 해결과정에서 북한과 미국 이외의 행위자나 6자회담 자체가 기여한 바는 커 보이지 않는다. 이는 북미간 직접 양자협상이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안을 양자에게만 맡겨 놓을 경우 양자간 불신과 갈등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문제 해결을 위한 촉진자나 중개자의 역할이 제한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실제로 BDA 해결은 6자가 합의하고 서명한 2.13 문서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북미간 베를린 회담에서 양해가 되고 2.13 이후 30일 이내에 해결하기로 양자간의 합의만 이루어진 셈이다. 따라서 양측의 꽉 막힌 교착국면을 중국이나 한국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풀 수 있는 역할과 범위가 제한되어 버린 셈이다.

이번 BDA 사태를 보면서 북미 양자의 주도 국면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오히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3자의 역할이 봉쇄된다는 점에서 양자틀과 함께 다자틀도 함께 병행되어야 함을 하나의 교훈으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북-미 양자틀만 아니라 미-중, 북-중, 남-북 간의 동시적인 양자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도 사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완충판 역할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BDA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보이지 않는 '섭섭함' 혹은 '불만'이 미국과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축소하게 만들었고,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와 연동시켜 '반 발짝 뒤따라 간다'는 한국의 소극적인 대북정책 역시 적극적 역할을 제약하게 만든 요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결국 향후 북핵문제 해결에도 적지 않은 난관들이 예상되므로, 앞으로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는 북미 양자협상 외에도 6자회담의 생산적 논의과정 및 미중관계, 남북관계, 북중관계 등의 다차원적인 동시 병행 구도가 균형있게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와 '북한문제'의 동거

또한 이번 BDA 사태의 시사점은 이른바 '북핵문제와 북한문제가 동거'하는 한,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2006년 초 필자는 본 '한반도브리핑'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른바 한반도에 조성된 '미묘한 변화'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한 바 있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2005년 9.19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북미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의 '체제전환용 대북 압박'과 북한의 '대미 대결 3년 버티기' 입장이 강 대 강으로 맞부딪히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결국은 '북핵문제'가 이른바 '북한문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진단한 바 있다. 즉 북핵문제의 표면상 핵심은 핵무기를 가지려는 북한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사이의 비확산 문제이지만 사실은 북핵을 넘어 체제의 변화와 관련된 북한문제로 확대되었고 이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영 다르기 때문에 항상 갈등과 반목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 2기 들어 폭정종식과 민주확산에 따른 '변환외교'를 내세우면서 북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체제전환의 관점으로 대북 압박에 나서게 되었다. 반면 북한은 이에 맞서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인정과 안전담보를 확보하고 결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북한식의 변화에 착수하려는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즉 북한과 미국은 서로 다른 북한변화 전략에 입각해서 북핵문제를 활용했던 바, 미국은 북한붕괴와 체제변환이라는 관점에서 북한문제에 접근하는 반면 북한은 체제인정과 안전보장 후 개혁개방이라는 방식으로 북한문제를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에서는 상대방을 붕괴시키거나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자신을 지키고 유지한 연후에 변화에 나서려는 이상 북한과 미국의 이른바 '북한문제'는 전혀 다른 구상과 셈법을 갖는 것이고 따라서 합의 불가능한 대립의 지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6년 말부터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기존의 '북한문제 우선' 정책에서 '북핵문제 우선 해결'로 바뀌게 되었다. 중간선거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고, 대북강경 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상황악화를 가져왔을 뿐 별다른 대응책이 마땅치 않음을 인정해야 했던 부시로서는 결국 북한붕괴를 노린 대북 압박보다는 대북 협상을 통한 북핵해결에 나서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상황관리 방안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대북 체제전환을 위한 북한문제 접근법에서 벗어나 핵상황 악화 방지와 북핵폐기에 집중하기 위한 '북핵문제'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의 원칙, 즉 '양자협상 절대 불가'와 '악행에 대한 보상 금지'마저 수정한 채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에 나섰고 급기야 2.13합의를 이끌어내게 된 것이었다.
▲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리자오싱 전 중국 외교부장 ⓒ연합뉴스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2006년 북한문제에서 2007년 북핵문제로 수정된 것이 최근의 북미 협상과 뒤이은 진전을 가져왔지만 여전히 다른 측면에서는 북한과 미국 모두 북한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미련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최근 BDA 사태에서 확인되듯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저변의 원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북한은 아직도 핵문제를 대하는 입장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를 관철시키는 것에 더욱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핵카드를 통해 북한의 체제인정과 안전보장을 확보하는 것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 이해관계인 것이다. 이번 BDA사태에서도 미국의 최대한의 성의 표시를 보면서도 자유로운 금융거래에의 복귀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BDA 문제해결을 '대북 적대정책의 사실상 철회'로 연결하고 있다.

사실 BDA 문제는 냉정하게 보면 정부간 공식회담인 6자회담의 아젠다가 될 수 없다. 다분히 민간의 영역이고 민간금융 문제이며 시장의 원리가 개입된 의제인데도 이를 굳이 정부간 회담인 6자회담의 핵심 쟁점으로 끌어들인 것 자체가 북한의 과도한 정치적 접근의 결과물이었다.

북핵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에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상징으로 BDA 문제를 끌어들였고 그 결과 6자회담은 북핵문제와 더불어 북한문제까지로 외연이 확대되고 말았다. 이제 미국이 2006년과 달리 체제전환을 위한 북한문제에서 벗어나 북핵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북한도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나 체제안전 일변도에서 탈피해 핵문제 자체의 진전에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북한이 자신들의 '북한문제' 접근법, 즉 핵을 통해 체제안전과 개혁개방의 우호적 환경을 마련하는 일에만 집착한다면 또 다시 미국의 대북 접근법이 북핵에서 북한체제 전환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해 우리가 겪었던 최악의 북미 대결을 가져올 뿐이다.

최근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상당한 성의를 보이고 있는 미국도 북한체제를 전환하겠다는 유혹을 완전히 떨쳐 버린 건 아니다. 당장은 핵문제 악화를 막아야 하고 북핵외교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할 필요성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려는 미국의 욕심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BDA에 자금세탁기관 지정을 고수하고 이로 인해 국제금융 시스템에서의 북한의 제약이 남아 있음은 역으로 미국의 대북 제재 수단이나 압박 카드가 유효함을 의미한다. 북핵을 넘어 북한문제 접근을 위한 미국의 유용한 카드가 아직은 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이 북핵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의 북한문제 접근법을 고수한다면 어느 순간 미국이 기존의 북한문제 우선의 대북 체제전환으로 회귀할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의 국면이 지난 해 북미간 '북한문제'를 둘러싼 근본적 대립을 접고 북미간 '북핵문제'에 집중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 모두 북한문제에의 집착을 여전히 포기할 수 없고 아직도 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다면 문제해결을 무조건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임이 분명하다.

북한문제로 회귀하려는 북한을 설득하고 또 이를 참지 못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결국은 북미 양자 외에 중국과 한국의 적극적 사태 진전 노력이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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