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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도, 마지막 순간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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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도, 마지막 순간도 볼 수 없었다"

조승희의 마지막 총격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진술

콜린 가더드(21)는 범인의 총알이 다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경찰을 향해 쏘기 위해 강의실 안에서 몸을 숨기고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더드는 자기가 마지막 희생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버지니아공대 학생인 가더드는 지난 21일 캐릴리언 뉴 리버 밸리 병원에서 있었던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침상 인터뷰에서 "(조승희는) 내가 총을 맞은 후에는 더 이상 쏘지 않았다"라며 "총질을 멈췄을 때 사방은 고요해졌다"고 말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노리스홀 211호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211호에 있던 18명 중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조슬린 쿠처-노왁 교수를 비롯해 12명이 사망했고, 가더드 등 5명이 부상했다.

가더드는 그러나 총에 맞는다는 것이 상상한 것 이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보다 덜 다쳤다"며 "(총을 맞으니) 공중에 강하게 밀쳐지고 무엇인가에 쏘인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가더드의 대퇴골을 지지하기 위해 사고 이틀 뒤 왼쪽 다리에 부목을 댔다. 그는 22일(현지시간)이면 퇴원이 가능하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6주 후에는 목발 없이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후 그는 프랑스어 실력을 쌓기 위해 올 여름 마다가스카르에서 참여하기로 한 인턴십 프로그램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더드의 상처가 곧 낫는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상처가 낫는 데는 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사고가 난 노리스홀을 경찰들이 통제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초록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 차림의 조승희

사건이 나던 16일, 가더드는 아침 8시 40분에 일어났다. 9시 5분에 시작하는 프랑스어 수업에 지각하게 된 것이다.

버지니아 비엔나에 있는 친구 크리스티나 히거를 데리고 가더드는 쿠처-노왁 교수의 강의에 5분 늦게 들어갔다. 한 여학생이 9시 30분 경에야 강의실에 들어오면서 기숙사에서 총격이 일어나 늦었다고 했을 때, 학생들은 무슨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로부터 15분 후 가더드와 학생들은 "탕, 탕, 탕" 하는 소리를 들었다. M16 소총을 쏴 본적이 있다는 한 학군단(ROTC) 출신 학생은 소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교수도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가더드는 "근처 건설 현장에서 나오는 소음을 거의 한 학기동안 들었다"며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교수님에게 쇠망치 소리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쿠처-노왁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쪽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았고 갑자기 쾅 닫았다. 가더드는 "문쪽으로 간 교수님은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며 "그리고 갑자기 우리에게 911에 전화를 하고 책상 밑으로 내려가 숨으라고 말했다. 그게 내가 본 교수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가더드는 강의실 뒤쪽 문 옆에 앉아 있었다. 거기서 그는 911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911 상황실에서는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사고가 난 곳이 어디냐는 질문만 계속 반복했다. 그때 강의실의 나무문이 총알 세례를 받아 쪼개지기 시작했다. 몇 초 후에 조승희가 들어왔다.

가더드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911 상황실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말했다. 조승희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서였다.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가더드는 조승희의 팔과 다리를 보았다. 초록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군화를 신고 있었으며 양 손에는 권총을 들었다. 그러나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어깨까지만 보고 시선을 거뒀다.

조승희는 아무 말 없이 문쪽에서 창문쪽으로 걸어가더니 교실의 앞뒤를 걸어다니기 시작했고 마치 처형을 하듯 총을 쏴댔다. 가더드에게 쏜 총알은 무릎으로 들어가 허벅지 위쪽으로 나왔다. 그리고 조승희는 교실을 나가버렸다.

교실 안에서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액체가 흘러나오는 소리도 들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 조승희

총잡이는 10분 후 다시 왔다. 그리고 창문 쪽으로 간 뒤 "교실을 계속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번 총을 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총을 쏴댔고 총알이 떨어지면 빠른 손놀림으로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 교실에서만 수차례 탄창을 갈아 끼웠다"고 가더드는 기억했다.

조승희의 군화가 가더드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더드는 죽은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총알 두 발을 더 맞았다. 하나는 오른쪽 겨드랑이로 들어가 어깨로 빠져 나갔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 엉덩이에 가서 박혔다.

가더드는 한 두 발의 총성을 더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조용했다. 몇 분이 지나갔다.

크리스티나를 찾았다. 등에 총을 맞은 그녀는 일어나 보려고 발버둥쳤다. 가더드는 물었다. "아직도 있어? 누군지 봤어?" 크리스티나는 "못 봤어"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강의실 밖에 나타난 경찰은 누군가가 문을 막고 있어서 들어오지 못했다. 가더드는 그게 조승희였는지 아니면 또 다른 희생자인지 아직도 모른다. 총에 맞지 않은 유일한 학생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경찰이 들어오고 '범인이 죽었다! 범인이 죽었다!'라고 외친 후에야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알았다.

경찰은 211호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식별표를 붙였다. 범인과 12명의 사망자들에게는 검정색, 중상자들에게는 붉은색, 가더드 같은 일반 부상자에게는 노란색 표를 붙였다. 가더드는 "심한 총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책상이 자신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건물 밖 잔디밭으로 일단 옮겨졌다. 차갑고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응급 치료 요원이 그의 옷을 찢어 총알이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로 나갔는지를 살폈다. 구급차에 실릴 때까지 5개의 총알이 발견됐고 가더드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닷새 후,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가더드는 피곤하긴 하지만 "통증은 하루하루 덜해지고 있다. 근육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매일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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