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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 숨지 말고 손을 내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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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 숨지 말고 손을 내밀자"

버지니아공대 하동삼 교수, 한인 학생들에게 이메일 호소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입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말고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성숙함을 보여줍시다"

최악의 총격 참사로 충격에 빠진 버지니아공대의 한인학생회 하동삼 지도교수가 한인 학생들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 이번 사건으로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당당하게 나서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을 건네자고 호소해 화제가 되고 있다.

버지니아텍 한인학생회의 하동삼(55) 지도교수는 20일 163명의 이 대학 한인 대학원생 전원에게 보낸 '우리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온 세상이 비극적 사건에 애도를 표하고 있고, 특히 우리는 친구와 동료를 잃어 참으로 슬프지만 우리 모두는 '호키(Hokie:버지니아공대 상징인 칠면조 모양의 상상의 새)'"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 대학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로 21년째 재직 중인 하 교수는 이어 "나는 캠퍼스의 추도 장소를 찾아가 그 곳에 놓인 33개의 희생자 추모석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며 흐느낄 수밖에 없었고, 너무나 소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과 이제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5명의 희생자 교수들을 생각했다"고 썼다.

하 교수는 특히 자택 바로 두 집 건너에 살았던 이웃집 동료 로가나탄 교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를 듣고 유족들을 찾아가 고인의 초상 앞에 머리 숙여 한국식으로 조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하 교수는 '아직도 그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는 로가나탄 교수 부인의 슬픔어린 말을 전하며 "고인의 두 딸을 마주하는 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비통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이날 블랙스버그 교회에서 거행된 케빈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에도 아내와 함께 참석해 유족들과 슬픔을 나눴다며 "영결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어떠한 폭력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사건의 범인이 비록 한국인이었다 해도 한국인들에게 책임이 있는건 아니라면서 "범인은 우연히 한국인이었을 뿐이고, 나와 대화를 나눈 모든 교수나 미국 사람들도 이 일은 한국 사람들과는 무관하다는 내 생각을 재확인해줬다"고 썼다.

하 교수는 따라서 이번 사건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조금도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버지니아텍 전체 공동체에 한국인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학생들을 독려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이 사건으로 한국인이 보복이나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을 털어버려야 한다"며 "오히려 우리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을 이번 사건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내밀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희생자 영결예식에 참석하고 꽃과 카드,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슬픔에 빠진 희생자 가족에게 건네주자고 그는 권유했다.

"어떤 해를 입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 자녀를 아파트에 가둬서는 안되며, 그렇게 해서는 어떠한 (올바른) 메시지도 우리 자녀에게 줄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히려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슬픔을 공유하도록 자녀를 격려하고,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sympathy)을 갖도록 가르치면 그것이 자녀를 더 강하고 성숙하고 용기있는 좋은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해줄 것이라고 하 교수는 주장했다.

끝으로 그는 "많은 재학생들에게 이번 사태가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바르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존경할 것이고, 비겁하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그에 걸맞게 대할 것"이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다음은 20일 저녁과 21일 오전 두차례 만나 하 교수의 얘기를 듣고 정리한 것이다.
--총격참사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제(20일)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캐빈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에 처와 함께 다녀왔고, 오늘(21일)은 로가나탄 교수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저녁에는 한인 학생들과 만나 희생자 기금 마련 방안 등을 논의할 것이다.

--희생자의 장례식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유족들과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다. 범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범인은 우연히 한국사람이었을 뿐이다. 다른 나라 사람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참담한 사건이 대학 공동체 내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그런 추모행사에 참가해 가족들을 위로할 뿐이다.

--한국인으로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

▲친하게 지내는 이곳 교수들에게 물어봤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그 일은 한국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게 공통된 답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인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이유는

▲어려운 시기인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위축되지 말고 추모행사에 참여해 성숙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생각을 몇 자 적어 보낸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버지니아텍 공동체의 일원이다. 이 때문에 희생자 가족의 슬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학생들은 각자의 친구들을 만나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사과할 필요는 없다.

-- 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했는데,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가.

▲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불과 50년만에 세계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한 한국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1979년 미국에 와 28년째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과 한국인임이 늘 자랑스러웠다.

--캠퍼스 중앙 잔디밭인 드릴 필드에 놓인 희생자 추모석들 중에는 범인인 조승희씨의 것도 있는데...

▲미국의 시민사회가 성숙했다는 반증이다. 나도 처음에 추모석이 32개만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조승희씨도 이 사건의 궁극적 희생자라고 보는 것 같다. 그도 불쌍한 학생아니냐.

--버지니아공대 교수로 재직한 지는 얼마나 됐나

▲1986년에 교수로 왔으니 21년째 됐다. 한인 학생회 지도교수를 맡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한인 학생회는 주로 한국에서 유학온 석ㆍ박사과정 대학원생 163명으로 구성돼 있다. 학부 한인학생회 지도교수도 맡고 있지만 학부생들은 별 활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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