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유생들도 피서에 나섰다. 지난해보다 일찍 휴강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조광조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준을 데리고 개성의 천마산과 성거산(聖居山)으로 책 보따리를 싸들고 입산했다. 개성의 명산 하면 천마산과 성거산을 빼놓을 수 없는데, 천마산은 기이한 바위와 봉우리가 장관이었고 성거산은 그윽한 골짜기와 울창한 숲이 가관이었다. 특히 천마산과 성거산은 개성의 서북쪽에 우뚝 치솟은 산들인데 산 정상에 오르면 멀리 달려가는 유장한 준봉들이 푸른 파도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였다.
천마산과 성거산의 골짜기 계곡물이 합수하여 만들어놓은 물기둥이 바로 그 유명한 박연폭포였다. 두 명산이 장엄하게 연출한 박연폭포는 사철 내내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잦았다. 조광조와 기준은 두 산을 오가며 절과 암자에 머물렀다.
"저것이 박연폭포라네. 저 폭포의 맑은 물이 흘러가면서 깊은 용소(龍沼)와 못에 이르고, 마침내는 임진강으로 달려가 합류하지."
"이제 어디로 갈 것입니까."
"서산사(棲山寺)로 가세."
아침 일찍 지족암을 나온 그들은 책 보따리를 등에 메고 길을 나서고 있었다.
"그 절은 성거산에 있지 않습니까."
"천마산 쪽 절이나 암자들이 내 성정에는 좋으나 삼사일 지나면 미안해. 화상들도 식량이 부족해 저녁은 굶지 않던가."
"허나 우리가 먹을 식량은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화상들이 굶는데 우리만 먹을 수 있겠는가. 우리도 저녁에는 굶어주어야지. 아니 그런가."
"갑자기 서산사는 왜 가시려고 합니까."
"자네는 알지 모르겠네만 서경덕이라고 <역경>에 달통한 처사가 서산사에 와 있다고 들었네. 이번 기회에 한번 만나보고 싶네."
"점을 보시겠습니까."
"심심할 때는 나도 주역점을 보네만 서경덕의 실력이 어떤지 궁금해."
"저도 서경덕의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서경덕은 천마산과 성거산에 은거해 있는데도 서울의 유생들에게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자네보다 서너 살 위일 걸세."
"저보다 세 살 위이고 호는 화담(花潭)이지요."
서경덕(徐敬德).
자는 가구(可久)이고 아버지 대에는 풍덕에 살았으나 개성으로 장가들어 개성 화담에서 주로 살았는데, 어려서 총명하였으나 글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14세가 되어서야 <서경>을 배우다가 수학적 계산인 일(日), 월(月)의 운행의 도수(度數)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해득하였다고 소문이 났다. 또한 18세 때 <대학>의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 조를 읽다가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밝힘)을 하지 않으면 글을 읽어서 어디에 쓰리오'라고 탄식하고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여 두고 날마다 벽을 쳐다보며 궁구하기에 힘썼다.
그러니까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먼저 궁리하는 것이 서경덕의 공부 방법이었다. 이는 도학과 자못 상통하였으므로 조광조도 크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화담이 공부하는 방법은 이러했다네. 하늘의 이치를 알고 싶으면 천(天) 자를 벽에 써 놓고 연구하다가 궁리한 뒤에는 다시 딴 글자를 써서 연구하였으니 깊이 생각하고 힘써 구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었다네. 이렇게 하기를 여러 해가 되자 모든 이치에 황연(恍然)히 밝아졌다네."
사실 서경덕의 학문은 글 읽는 것을 일삼지 않고 오로지 이치를 찾는 것을 위주로 했으며 이치를 터득한 뒤에 글을 읽어서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그가 항상 말하기를 '나는 스승을 얻지 못했기에 몹시 힘들었지만 뒷사람들은 내 말대로 하면 나처럼 수고롭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화담의 학문은 정통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화담은 성리(性理)의 학문임을 자임하였으나 사실은 정자(程子), 주자(朱子)와는 조금 다르지. 허나 그를 내가 만나려고 하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라네."
"그의 태도가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항상 만족해하고 기뻐해 하니 세간의 득실(得失)과 시비와 영욕이 모두 그의 가슴 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산길을 가는데 어디선가 바위가 쪼개지듯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가던 기준이 놀라 뒤돌아보며 말했다.
"바위산이 무너지는 소리 같습니다."
"이 사람아,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들리지 않습니까. 저 소리가."
"어허. 자네는 박연폭포를 아는가, 모르는가."
"저 소리가 물줄기가 곤두박질치는 소리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니까."
산모퉁이 하나를 돌자, 갑자기 수십 개의 물기둥이 절벽 밑을 향해서 떨어지는 소리가 그랬다. 며칠 동안 내린 폭우가 골짜기를 타고 한꺼번에 밀려와 물기둥들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굉음을 내고 있었다. 마치 바위덩어리가 구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산이 갈라지면서 나는 흙더미 무너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서자 물보라가 흰 장막처럼 달려들었고, 귀가 떨어질 듯 먹먹해졌지만 물기둥 중간에는 신기하게 무지개가 걸려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런데 물보라 저편에 무엇이 꼬무락거리고 있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사람이 아닌가."
폭포 아래쪽에서 무언가 나타났다가 물보라의 장막이 쳐지면 눈앞에서 사라지곤 했다.
"사내입니까, 여인네입니까."
"더 내려 가봐야 알겠네."
폭포를 지나가는 또 한 사람이 있다니 기분이 야릇했다.
"설마 귀신은 아니겠지요."
"하하하."
"어쩐지 머리끝이 쭈뼛거립니다."
"폭포소리에 혼이 나가버린 모양이네. 정신 똑바로 차리시게. 여긴 천길 벼랑이니 잘못 하면 황천행이네."
산길은 폭포가 가까워지면서 절벽을 타고 나 있었다. 절벽을 내려서면 바로 폭포이고, 산위로 들어서면 바로 서산사 가는 길이었다.
"사내입니다."
"그쪽을 보지 말고 발밑을 잘 보라니까. 헛딛게 되면 자네와 나는 사별이네."
"거문고를 뜯고 있습니다."
조광조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물보라 저편의 사내를 보았다. 과연 사내는 다소곳이 앉아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
"누굴까."
"대낮에 폭포 아래서 거문고를 뜯고 있다니 놀라운 일 아닙니까."
"자네는 아직도 저 사내가 귀신으로 보이는가."
"귀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이 폭포의 물소리에 무슨 곡인들 귀에 들어오겠습니까. 저 자는 분명 누구에게 곡을 들려주기 위해 거문고를 뜯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폭포를 위해서 거문고를 뜯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래서 머리끝이 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폭포 밑으로 내려 가보니 사내는 늙었으나 남장한 여자처럼 얼굴이 고운 화상이었다. 그는 물보라를 피해 고깔을 쓰고서 거문고를 뜯고 있었다. 고깔은 물보라에 젖어 곧 찢어질 듯했지만 그는 자신의 몸이 물방울에 젖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음률삼매에 빠져 있었다.
"이 노래는 화담의 시가 아닙니까."
"그렇군."
귀를 기울이니 천둥소리 같은 폭포 소리 속에서도 거문고의 선율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작은 소리이나 놀랍게도 폭포의 소리를 이기고 있었다.
화담의 한 칸 초가
시선집인 양 소쇄하다
창 열면 산들 모여들고
베개 맡에는 샘물의 노래
골 깊으니 바람이 맑고
땅이 외지니 나무도 활개 훨훨
그 어름에 어슬렁 거니는 이 있으니
맑은 아침 글 읽기를 좋아한다네.
花潭一草廬 瀟灑類僊居
山簇開軒面 泉絃咽枕虛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疎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화상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거문고를 발밑으로 밀치고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러자 조광조가 다가가 말했다.
"어느 절의 화상인데 한가하게 거문고를 뜯고 있는 것이오."
"천마산 지족암 중이외다."
"우리는 지금 지족암에서 오는 길이오. 헌데 우리는 그대를 지족암에서 본 적이 없소. 어찌 된 일이오."
"허허. 소승은 지족암에서 10년 면벽을 했소. 그러고 나서 지리산으로 만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길이니 만나지 못했던 것이오."
"10년 면벽이라니, 그 말이 무엇이오."
"화두를 들고 벽만 쳐다본다 이거지요."
"벽만 쳐다본다 함은 무엇을 말함이오."
"유도와 불도는 차이가 있소. 유도는 격물을 얻고자 하지만 불도는 그 반대이지요. 격물을 버리고자 수도를 하지요."
"그런 궤변이 어디 있소."
기준이 나서 화상을 나무랐다. 그러나 화상은 맞서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격물은 공(空)한 것인데 그 공마저 끝없이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나와 세상의 경계가 허물어져버리지요. 바로 그러한 허공 같은 경계를 얻기 위해 면벽을 한 것입니다."
조광조는 갖바치 대사에게 비슷한 법문을 들어본 바 있으나 화상의 얘기는 또 사뭇 달랐으므로 흥미를 느꼈다. 화상의 공부하는 방식은 도학과 어느 정도 흡사했던 것이다.
"천둥소리를 내는 폭포 밑에서 아무렇지 않게 거문고를 뜯고 있는 것을 보니 스스로 얻는 즐거움이 큰 것 같소."
"나와 폭포의 경계가 허물어졌으니 한데 어울려 한가함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좀 전의 시는 서화담의 노래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서화담 선생은 소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면벽을 할 줄 압니다. 허나 방금 말씀드렸던 것처럼 면벽의 벽관(壁觀)은 같으나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은 정반대입니다."
이에 기준이 말했다.
"화담은 벽을 보며 이치를 궁구하고, 그대는 이치에서 벗어나려고 벽을 본다는 것이니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소."
실제로 서경덕이 지족암의 화상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모르나 그의 공부 방법은 화상이 화두를 들고 있는 모습과 흡사한 것이었다. 벽관을 하는 화상처럼 서경덕도 벽에 사물의 이름을 써놓고 하루 종일 궁리하곤 했는데, 밥을 먹을 때나 변소에 가 있을 때나 오로지 벽에 써놓은 사물의 이름만 궁리하며 공부했던 것이다.
어떤 날은 화상이 몇날 며칠이고 방바닥에 눕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것처럼 서경덕도 밤낮으로 침식을 잊고 빈 방에서 단정히 앉아 몰두했던 것이다. 기준은 여전히 화상에게 거만한 언사로 대했다.
"화상이 정말 화담에게 가르침을 주었단 말이오."
"가르침을 주고받는 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한때는 소승이 가르침을 주었으나 이제는 화담 선생이 소승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화담 선생은 보기 드문 상근기의 선비십니다. 소승은 면벽한 지 10년 만에 깨달음의 문턱에 도달했으나 화담 선생은 3년 만에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셨으니 그렇지 않습니까."
"화담 선생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단정하는 것이오."
"움직이거나 쉬거나 모두 편안하고 아름다운 산수를 만나면 문득 일어나 춤추고 용모가 쾌해졌으며 항상 두 눈이 새벽별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조광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보다 어린 화담이 도를 얻었구나. 도를 얻었어.'
기준이 물었다.
"그대의 법명은 무엇이오."
"지족(知足)이라 하오."
"우리는 지금 화담을 만나러 서산사로 가는 길이오."
"서산사에 화담 선생이 와 있다는 말을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지족암에서 젊은 중이 그리 얘기했으니 있겠지요."
"이 산길로 올라가면 서산사가 나옵니까."
"눈앞이 길이 있습니다. 눈앞을 잘 살피시면 서산사에 이를 것입니다."
지족은 곧 거문고를 어깨에 메고 폭포 저쪽으로 사라졌다. 사라졌다기보다 폭포가 만들어낸 물보라에 묻혀 그의 그림자가 지워져버렸다. 그제야 조광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 말마따나 귀신에 홀린 것 같아."
"산중에서 거문고를 들고 유유자적하는 화상을 만나다니 말이네."
"더구나 지족암의 지족이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오늘 아침까지 머물렀던 곳이 지족암이 아니었습니까. 헌데 그곳 젊은 중에게 저 지족화상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스스로 지족암 중이라니 도대체 헛갈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안평대군께서 꿈에 가보았다는 무릉도원에 와 있는 것 같으니 말이네."
그러나 그들은 서산사에 도착하여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과연 서산사에는 서경덕이 법당에 좀 떨어진 요사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마침 두 손을 크게 휘저으며 마당가를 거닐고 있다가 조광조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했다.
"엊그제 주역점을 보았더니 귀한 손님이 올 것이라는 궤가 나왔는데 그대들이 귀인인 모양입니다. 혹시 지족화상을 보았습니까."
"박연폭포 아래서 지족화상을 우연히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서경덕의 용모는 밝았다. 가난한 절에 기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형편이 곤궁할 터인데, 얼굴이 달덩이처럼 환하고 머리카락은 윤기가 흘렀으며 두 눈에서는 빛이 났다. 궁기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곧 서경덕의 방으로 들어가 맞절을 했다.
"조광조라고 합니다."
"서경덕이라고 합니다."
조광조보다 7세나 어리다고는 하지만 서경덕의 밝은 용모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정암께서는 어찌 이곳을 오셨습니까."
"화담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스승 없이 공부하여 바탕이 튼튼치 못합니다. 다만 공부하는 방식은 지족화상의 벽관을 따랐을 뿐입니다."
"성취가 컸습니까."
"이치가 툭 트이니 삿된 것들이 제 가슴으로 들어오지 못할 정도는 됐습니다."
"화담이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족화상이 뜯는 거문고 소리이거나 산하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흥이 나면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그렇다고 서경덕이 조정의 일에 전혀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다. 밤이 되자 서울의 소식을 물었다. 기준은 조광조와 서경덕이 도담(道談)을 나눌 때는 물러나 있다가도 그런 얘기에는 끼어들었다.
"조만간에 반정공신들이 조정에서 모두 물러갈 것입니다. 희소식이 아닙니까."
"희소식입니다."
"그때는 화담께서도 개성에서 서울로 거처를 옮기셔야 합니다."
"진사에 합격했으면 그만이지 공연히 몸만 바빠지는 벼슬을 왜 하겠습니까."
"혼자서 어렵게 터득한 공부를 후학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공부하는 태도는 화상들이 진짜입니다. 학문은 글을 읽어 지식을 불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치를 체험하여 깨닫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사는 게 선비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화담의 생각은 나와 조금도 다르지 않소. 우리는 도학의 도반입니다. 그러니 나는 언젠가 화담을 부를 것입니다."
"나의 고집을 꺾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암이 나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기꺼이 서울로 가겠지만 벼슬을 권유한다면 나는 정암을 멀리할 것입니다."
조광조는 서경덕을 만나 그날 밤을 새고 말았다. 기준은 피곤한지 잠에 골아 떨어졌지만 두 사람은 오랜 지기였던 것처럼 밤을 새며 얘기를 나누었다.<계속>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는 화순군 홈페이지와 동시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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