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부 장관은 20일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북핵폐기 과정에서 "협상의 결렬 요소로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이날 오후 시내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초기이행조치'에서 플루토늄과 HEU 문제를 '논의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 등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개성공단 방문을 위해 지난 19일 입국한 페리 전 장관은 또 '2.13 합의'와 관련, "합의가 도출됐다는 것 자체는 매우 기쁜 일"이라고 평가하고 그 이유로 "한국, 미국, 북한 등 당사국들이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합의가 "무척이나 긴 여행인 '비핵화'를 향한 아주 작은 한 걸음"이라면서 "아직 미완인 상태이며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북한의 핵포기 의사에 '진정성'이 있는지에 달려 있는데 이는 아직 진실의 시험대에 오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유념할 것은 아직 실제 이행단계로 접어든 것이 없다는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60일동안 원자로의 동결,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재개, 플루토늄과 핵무기를 포기하는 등 북한 핵프로그램의 해체를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활동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또 "앞으로 더 어려운 과제들이 놓여 있다"면서 "북한이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특히 한.미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13 합의'가 도출될 수 있었던 배경과 관련, 그는 "대부분 미국 내 기류 변화만을 원인으로 꼽는데 그 것 만큼이나 중요했던 요소는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의 '연대'"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연대를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했다는 성취감에 자만해버리는 바람에 역으로 이 연대 자체가 증발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2.13 합의'에 대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행 의지를 묻는 질문에 페리 전 장관은 "합의 타결 직후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그의 의지는 매우 긍정적이고도 강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서명할 가능성에 대해 "그것이 6자회담의 목표지만 거기에 도달하려면 매우 매우 긴 여행이 될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가 다시 강경노선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앞으로 60일동안 어떤 진전이 이뤄지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리 보고서'의 유효성과 관련, 그는 "그때 내놓았던 제언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본다"면서 "최근의 '2.13 합의'가 바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보고서의 핵심은 미국은 북한의 모든 면을 좋아할 수 없지만 어쨌든 북한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쉬턴 카터 전 국방부 차관보와 공동 기고문에서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대포동 2호의 연료를 빼내고 격납고에 도로 집어넣기를 거부할 경우 이를 선제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페리 전 장관은 "그 기고문의 목적은 모든 회담 당사국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에는 대북 압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에는 '위험한 모험을 그만하라'고 경고하고 미국 정부를 향해서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 일행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주요 대권주자를 모두 면담, 최근의 6자회담 결과와 한미동맹 전반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며 22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곧바로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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