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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빼앗긴 자들의 사랑과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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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빼앗긴 자들의 사랑과 싸움

팔레스타인과의 대화 <30> 신경림 시인의 답가

20 여 년 전 박태순이 번역한 '팔레스티나 민족시집'(실천문학사)을 읽은 일이 있다. 그 책에서 마흐무드 다르위쉬의 시를 읽고 감명받았던 일이 생각나, 가까스로 책을 찾아내어 다시 읽어 보았다. 그의 시들이 여전히 감동적으로 읽혔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역사적 체험을 공유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가령 '나의 아버지'는 "달을 쳐다보던 시선을 돌리면서/ 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두손으로 흙먼지를 퍼 담는다/ 비 한 방울 보내지 않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더니/ 나더러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로 시작하여, "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나라를 잃어버린 자는/ 온 천하에 제 무덤도 못 가진다/ 그리고 나더러 떠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로 끝을 맺는다.
  
  실제로 두 손으로 흙먼지를 퍼 담으면서 떠나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 것은 지난 시절 우리들의 아버지들의 초상화이기도 했다. 이 시를 읽으며 나는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하고 통곡한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연상했다. 두 시가 다 같이 자기가 나서 자란 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상상력의 동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팔레스티나에서 온 연인'에는 다음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대가 속삭이는 말들은/ 내가 부르고 싶어 하였으나/ 휘감겨 드는 고뇌 때문에 청춘의 입술이 막혀/ 부르지 못하였던 노래였다/ 그대가 속삭이는 말들은/ 우리 집 처마둥지로부터 떠나간 제비처럼/ 날개를 달아 날아가 버리고/ 나는 그대를 쫓아 사랑이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서/ 가을의 문지방을 떠났다/ 우리의 거울은 산산이 부수어지고/ 나의 슬픔은 일천 배가 깊게 자랐으나/ 우리는 조각난 소리의 파편들을 서로 주웠다/ 그리고 우리는 조국의 비가를/ 노래할 수밖에 없었구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이 하나가 되면서 사랑의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절창이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극적인 조국의 운명 속에서 젊음을 보낸 이가 아니고는 얻어낼 수 없는 표현이다. 사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의 합일이라는 개념은 시에 관한 한 우리에게 그리 낯선 것이 아니다. 만해의 님-조국-부처의 그것이 그러했고, 소월의 님과 조국의 관계가 또한 그러했다. 비슷한 경험을 통과하면서 비슷한 정서가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팔레스타인과 우리의 지난날이 너무나도 비슷했다는 것은 다르위쉬의 경력을 보면서 더 확실해진다. 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짧은 연보를 구성해 보면 이렇다.
  
  --다르위쉬는 팔레스티나의 아크레의 동쪽 마을 알 바르와에서 출생, 그러나 이 마을은 7살이 되던 해 이스라엘 군의 침입으로 지상에서 말살되어, 주민들은 난민이 되고 만다. 레바논의 난민촌에서 1년을 보낸 뒤 일가는 몰래 국경을 넘어 갈릴리로 돌아왔으나 그의 아버지에게 허락된 일은 이스라엘이 그들로부터 빼앗은 땅 위에 세운 시설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것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조부는 비탄 속에서 작고한다. 13살 때 그는 조부의 사망과 빼앗긴 땅을 주제로 '토지'라는 시를 쓰는데, 이 시가 발표되자 그는 잡혀가 매를 맞고 아버지는 직장에서 쫓아내겠다는 협박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이로써 시가 중요한 저항의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당지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로 줄곧 PLO(팔레스티나 해방기구)에서 일하면서 십 수 차례 투옥되었으며 한때는 2년간 야간통행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시는 심화되고 세련되었으며, 조국과 여성의 두 이미지를 불가분의 한 이미지로 직조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아랍 시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제3세계의 노벨문학상이라 일컬어지는 로터스 상의 첫 수상자(1967)가 되기도 한다. 김지하 시인은 1975년 그 특별상을 받은 바 있다.
  
  자카리아 모함마드 씨의 '열 번째 날의 호랑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다르위쉬의 시들을 다시금 읽으면서, 팔레스타인은 적에 대한 증오심만으로가 아니고, 땅과 가족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록 멀리 떨어져서나마 그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일이야말로 동시대를 사는 시인의 사명이요 자부심일 터이다.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www.palbridge.org)'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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