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간 미국이 핵능력을 키워 온 이란에 전방위 압박을 가해 왔다는 점, 그리고 이날 외교사무소를 급습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이라크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이란 침공의 신호탄'으로 풀이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시 "이라크 지원하는 이란 네트워크 파괴" 공언
이날 새벽 3시 30분 경 고요한 아르빌 한 주택가에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어 장갑차의 호위를 받은 미군이 이라크 주재 이란인들에게 사증이나 의료보험을 발급해 오던 이란 정부 소속 사무실을 급습해 이란인 6명을 체포하고 사무실 내 문서 자료들과 컴퓨터 등 일부 장비를 압수해 갔다. 이 과정에서 미군 블랙호크와 아르빌을 관할하는 쿠르드 민병대가 잠시 대치하기도 했으나 총격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군 측은 이날 체포된 이란인들이 이라크와 연합군을 표적으로 군사행동을 계획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 중 한 명은 석방됐고 나머지는 아직 구류 중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이란인을 체포한 것은 몇 주 전에도 일어났던 일이다. 12월 하순 경 이란 외교관 두 명과 이란 군 관계자 두 명을 포함한 이란인 여러 명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수사 후 외교관 두 명은 풀려났지만 나머지는 추방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상황은 부시 대통령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이라크 내의 우리의 적들에게 최신형 무기와 훈련법을 제공하는 네트워크를 찾아내 파괴하겠다"고 공언한 직후 벌어졌기에 그 의도에 국제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2월 사건이 이란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몽니에 가까웠다면 이번 사건은 구체적인 침공계획을 수반한 도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때마침 미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걸프만을 향해 발진했다는 미 국방부의 이날 발표도 이란에 대한 무력시위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우리의 적인 이라크의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것을 한가하게 앉아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공격 가능성의 여지를 열어뒀다.
"라이스의 중동방문 예의 주시" 미국-이란 관계 전문가인 알리 안사리 박사는 이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미국 간의 '냉전(cold war)'이 드디어 '열전(hot war)'으로 비화되는 국면"이라고 단정했다. "대중의 관심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등의 분쟁에 쏠려 있는 동안 부시 행정부는 언제라도 이란에 대한 공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안사리 박사는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 아랍 국가 대부분이 반대했던 데 반해 이란을 공격할 경우는 수니파 아랍 국가들의 지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에 자신감을 실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아파인 이란이 핵실험과 이라크 내 시아파 지원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는 것을 경계해 온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이 미국의 이란 침공에 동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사리 박사는 특히 라이스 장관이 다음 주 중 이 수니파 국가들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을 "이란 침공을 위한 협조 요청"으로 풀이했다. 중동 전체 군사전략을 관리하는 중부군 사령관에 해군출신 윌리엄 팰런을 임명한 것 역시 항공모함을 이용한 이란 공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봤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아무리 '전쟁광'이라고 한 들, 이라크 전쟁 실패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에 이어 네 번째 전쟁을 감행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이란 공격을 선택하기에는 큰 부담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
이란 "이라크와의 분열 획책하는 '유치한 도발'"
이란 정부는 이날 미군의 급습사건을 "명백히 국제법과 규정을 위반한 도발"이라고 규정하고 이라크와 스위스 대사를 불러 체포된 이란인들에 대한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무하마드 알리 호세이니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의도와 관련해서는 "이란에 대한 압력을 계속 행사하는 동시에 이라크의 주변국 간 긴장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역시 "이번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중재하고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를 두고 이라크 정부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고 전했다. 요컨대 미국이 같은 시아파 소속인 이라크 정부와 이란 정부 간의 분열을 획책하기 위해 이라크가 풀기 어려운 문제를 저질렀다는 풀이다.
이에 호세이니 대변인은 "그러나 미국의 유치한 도발로 이라크와의 우호관계가 훼손되지는 않는다"고 단정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이번 사건이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확대되지나 않을까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조지프 바이든 상원 국제관계위원장은 이날 라이스 장관이 참석한 이라크전쟁 관련 청문회에서 "부시가 이란과 시리아의 군사 네트워크를 차단하기 위해 그 두 나라를 침공해야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의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이라크 침공을 허락받았다고 해서 이란과 시리아까지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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